트남 주가가 올 들어 60% 가까이 떨어지며 베트남 투자 펀드를 보유한 국내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다른 이머징 펀드들이 4∼5월 짧은 회복세나마 보인 것과 달리 베트남 펀드는 계속 손실 폭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전문가들은 베트남 펀드가 4년 이상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이 많아 당장 ‘펀드 런’이 일어날 우려가 거의 없고 장기적으로는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베트남 펀드 수익률은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6년 6월 말 설정된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혼합1’의 경우 지난해 10월 최고점인 64%를 찍은 뒤 줄곧 하락세를 이어가 올해 6월 13일 현재 13%의 손실을 내고 있다. 베트남 펀드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41.54%로 부진하다.현재 국내에 팔리고 있는 베트남 펀드 8개 중 5개는 만기 전에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이다. 한국투신운용의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혼합1·2’와 동양투신운용의 ‘동양베트남민영화혼합’,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GB블루오션베트남주식혼합1’ 등은 가입 후 5년간 환매가 아예 금지돼 있다. 따라서 이들 펀드 투자자는 수익률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대응책이 없는 상태다.나머지 3개 펀드는 만기 전 환매가 가능하다. 이 경우 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환매 수수료로 내도록 조건이 달려 있지만, 모두 설정 이후 손실을 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환매 부담이 없다.이재만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베트남 증시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장성을 고려하면 가격 메리트가 높은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사자’를 이어가고 있어 추가 하락 위험은 크지 않아 장기 보유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안정균 SK증권 연구원은 “신규 가입은 자제하고 적립식 펀드의 경우 입금 시기를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이미 거치식으로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무리하게 환매하는 것보다는 장기 투자로 보유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베트남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진입할 가능성은 적고 향후에도 7∼8%대의 고도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에 회복 추이를 봐가며 추가 매수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전체 6500억 원 규모의 베트남 펀드를 국내 판매해 온 한국투자증권. 국증권은 최근 본사 및 계열사의 고경영자(CEO)가 번갈아 베트남 현지를 방문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달 말 한국투신운용 정찬형 사장이 국제통화기금(IMF) 베트남 사무소장을 만나 현지 분위기를 살피고 왔으며 이달 초에는 유상호 한국증권 사장이 현지에서 베트남 재무부 장관, 증권감독위원장, 투자청장 등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나 현지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왔다.한국증권 계열 CEO들의 잇따른 방문은 베트남 증시는 물론 베트남 경제에 대한 펀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베트남 비나(VN)지수는 지난해 10월 1100선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 이달 초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400선마저 무너진 상태다. 상대적으로 낙폭이 컸던 중국 증시의 경우 비슷한 시기 급락세를 시작한 뒤 지난 4월 이후 몇 차례 반등세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베트남 정부는 증시 안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를 못보고 있다. 증시 하루 등락 폭을 하노이 거래소는 ±10%에서 ±3%로, 호찌민은 ±5%에서 ±2%로 각각 줄였지만 주가 하락세는 작년 말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시장이 하락세를 거듭하자 거래량도 급감하는 등 무기력증에 빠졌다. 작년 10월 기준 일평균 거래량이 하노이는 3000만 달러, 호찌민은 5200만 달러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300만 달러와 800만 달러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하노이는 작년의 10%, 호찌민은 15% 수준으로 각각 거래량이 감소한 것이다.현지에 증권사 설립을 추진 중인 골든브릿지증권 변원섭 법인장은 “증권사들이 장 좋을 때 자기 매매를 워낙 많이 해 증시가 빠지면서 왕창 깨졌다”며 “다른 수익원을 찾아야 하지만 기업공개(IPO)도 죽었고 거래량도 미미해 중개 수수료도 벌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액면가 3∼5배의 가격에도 팔지 않겠다던 증권사들의 매물이 이젠 거의 액면가 수준으로 수두룩이 나왔다”고 전했다.현지 전문가들은 베트남 경제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선 증시 안정화도 당분간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변 법인장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부가 금리 인상을 계속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주식시장은 힘들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베네딕트 빙햄 IMF 베트남 사무소장도 “베트남의 경제 상황이 지난 몇 년 동안 분명히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약화하는 와중에도 과열 양상을 보였다”며 “과열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재정과 통화 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송범진 한국증권 베트남 사무소장은 “시장 규모에 비해 투자가 과했던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펀드로 돈 한 번 벌고 철수하려던 게 아닌 만큼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하노이(베트남)=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