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증시 키워드는 ‘SKIRT’…

스피지수는 미국의 신용 위기가 최악의 고비를 넘기면서 3월 중순 이후 반등했다. 7주 연속 상승 행진을 이어오며 1900선까지 넘보자 2분기 2000선 회복 기대감마저 확산됐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글로벌 악재가 복병처럼 등장했다. 국내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우려감에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해 온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은 양호한 편이지만 ‘S 공포’의 덫에 걸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길게 보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견조한 실적을 기반으로 증시도 재차 상승 랠리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한 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경기 부진을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성장이 어느 정도 만회해 줄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다. 또 미국 경기도 연내에는 바닥을 다지고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깔려 있다. 국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하면서 시중 자금이 주식 등 위험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국내 증시 흐름을 좌우할 5대 요인으로 스커트(SKIRT)를 제시한다.S: 신흥시장은 선진국에 비해 경기 둔화 폭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은 올림픽 이후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국내 기업 실적이 호조세를 이어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실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기존 4.2%에서 3.7%로 하향 조정된 가운데 선진국 대비 신흥시장의 성장 기여도는 올해와 내년 크게 확대될 것으로 나오고 있다. 신흥국 증시도 선진국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신용 위기가 확산된 작년 4분기 이후 선진국 대비 신흥시장의 상대 강도를 보면 신흥시장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과거보다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분석부장도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나아가는 제도 및 정책 개선이 지속되고 있고 아시아 공산품의 대 신흥시장 수출 증가가 교역 성장의 주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하지만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소비 위축이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이는 한국 등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K: 주식은 기업의 미래 실적을 반영해 움직인다. 국내외 주요 경제 변수를 따져보는 것도 결국은 기업의 실적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정보기술(IT) 은행 조선 등을 중심으로 하반기 기업이익 모멘텀은 보다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우증권은 최근 분석 대상 기업(유니버스)의 올 실적 전망을 조정하면서 영업이익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6.6%에서 28.6%로 상향했다. 2분기와 3분기, 4분기 전망은 각각 22.9%, 27.3%, 62.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서 기업 이익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부담 요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영진 푸르덴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고 원재료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든데 다 원가 부담마저 높아지면 기업 실적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I·R: 올 하반기 주식시장의 흐름을 결정할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세계 인플레이션의 향배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부담에서 벗어날 경우 증시는 기대 이상의 상승 탄력을 보일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시장의 상승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국제 유가 흐름이나 전 세계 주요 지역 물가 상승률 전망을 보면 인플레이션 부담은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정책 공조를 통해 물가 잡기에 나선 만큼 하반기에는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미 경기도 연착륙에 성공해 내년부터는 회복세를 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재 경제분석부장은 “경기 부양과 신용 경색 완화를 위한 낮은 정책 금리와 재정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미국 기업 역시 이머징 마켓 수요 덕분에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상일 한화증권 연구위원도 “상반기 금리 인하와 경기 부양 정책의 효과에 힘입어 하반기에는 미 경기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물론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하반기 주식시장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인플레이션 위험은 여전히 확산일로에 있으며 이로 인한 신흥 국가의 성장률 둔화 및 관련 업종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T: 코스피지수가 1800선 위아래서 움직일 경우엔 증시로의 자금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가면서 이에 불만을 가진 투자자들이 보다 높은 수익을 찾아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과거 실질금리 0% 근처에서는 증시 자금 유입이 늘고 주가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2003년 3월에 3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0.1%로 떨어진 이후 8월까지 코스피 지수는 220포인트(41.5%) 상승했으며 2004년 8월에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1.2%까지 내려가자 12월까지 92포인트(11.5%) 올랐다.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넘어선 후에는 지난해 6~8월 큰 폭으로 유입된 자금이 소폭 수익을 내면서 일시적인 환매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4분기 이후에는 증시자금 유입은 또다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조윤남 부장은 “주식 자산 선호는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연기금이나 퇴직연금 등 장기적인 수급 안전판도 많다”고 강조했다.하반기 증시 수급은 외국인이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상일 연구위원은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외국인들의 국내 증시 참여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재 쪽에 몰렸던 투기 자금들이 원자재 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주식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하반기 국내 증권사들의 코스피지수 전망 최고치는 대부분 2100선을 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2120, 신영증권과 한화증권은 각각 2150과 2160 정도를 연말 고점으로 보고 있다. 한화증권의 목표 지수는 올 예상 실적에다 신흥시장 역사적 평균 주가수익률(PER) 13배를 적용해 나온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도 2160을 코스피지수 고점으로 보고 있다. 박효진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연초 저점을 확인한 코스피지수의 점진적인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지만 지수 측면에서 기대치를 높이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대우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보다 높은 편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인플레이션 우려감 완화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이익 전망 상향이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며 목표지수로 2250을 제시했다. 대우증권은 코스피지수 고점을 2200, 대신증권은 가장 높은 2300선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반면 푸르덴셜투자증권은 올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이 현재 14%에서 점차 하향 조정될 것으로 보며 목표 지수를 2050까지 낮춰 잡고 있다.관심 업종은 주로 IT와 자동차로 모아진다. 박효진 연구위원은 “아시아 내수 소비 성장과 기업 실적 호조 등을 감안할 때 IT 대형주를 중심으로 한 수출 관련 완성품 업체들에 관심을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또 자동차와 조선, 기계 업종도 유망 업종으로 꼽힌다. 강현철 팀장은 반도체와 IT 하드웨어 자동차 순으로 유망 업종을 추천했다. 2분기 원·달러 환율이 정점에 이른 후 환율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축소될 것이어서 환율 대비 영업이익 민감도가 낮은 업종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이 밖에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따라 내수가 회복세를 보일 수 있어 내수 업종도 추천을 받았다. 정부 지출 및 설비 투자 증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기계와 건설, 소비 지표 개선의 민감도가 높은 소매 내구 소비재 등이 대상이다.서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