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와인 명산지 이탈리아 프리울리
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긴 이름의 지방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이하 프리울리)는 동으로는 슬로베니아, 북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인접해 있는 지방이다. 북은 알프스이기에 넘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동쪽의 슬로베니아는 걸어서 쉽게 다닐 수 있다. 국경을 그냥 쉽게 넘는 기분이란 참 묘하다. 우리는 북한과만 유일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특히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프리울리는 북으로는 알프스, 남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어 지형적으로 고립된 곳으로 여길지 몰라도 사실 다문화가 녹아 있는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베네치아 제국이 다스리던 적도 있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다스리던 적도 있다. 슬로베니아와 맞닿아 있는 도시 고리치아에 가면 이국적인 건축물이 많이 보인다.와인은 문화가 꽃 피어 탄생한 것이니 당연히 프리울리 와인은 여러 문화가 합쳐져 다양한 종류가 잉태된다. 다른 지방보다 훨씬 많은 수의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이 중에서 소비뇽 블랑과 유사하지만 이보다 훨씬 질감이 풍부한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라는 청포도가 유명하다. 토카이는 헝가리에 있는 토카이 지방과 같은 이름이어서 더 이상 국제적으로 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정신이 자유로운 이탈리아 내부에서는 그리 쉽게 전통을 버리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양조장들이 여전히 그렇게 쓰고 있다. 수출용 와인이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하여튼 2007년 빈티지부터는 ‘프리울라노’라고만 표시해야 한다. 알자스에서 피노그리를 토카이 알자스라고 부르던 전통 역시 더 이상 토카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프리울리의 알프스는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라서 양조장은 모두 알프스 이남에 위치한다. 그래서 깎아지른 절벽의 포도밭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프스의 이미지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달리 프리울리의 포도밭은 대체로 평탄하다. 평원에 대규모로 조성된 포도밭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콜리오(Collio)는 다르다. 고리치아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슬로베니아와 접경을 이루는 일정 구역을 부르는 원산지 명칭으로 여기서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유럽연합의 규정 덕분에 일부 양조장은 슬로베니아 땅에서 재배한 포도에도 콜리오라는 원산지 명칭을 달 수 있게 됐다.칼슘 성분이 많은 콜리오 토양은 화이트 와인의 특성을 강화한다. 이곳에서 개성 있는 와인을 양조하는 곳으로 브레산(Bressan)이 있다. 젊은 시절 푸주한을 하기도 했던 네레오 브레산(Nereo Bressan)은 노동의 대가를 모아 포도밭을 장만했다. 동네의 다른 생산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와인을 목표로 삼은 그는 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포도즙의 양을 극도로 제한했다. 모두들 한 나무에서 2병 이상을 만들 때 그는 아낌없이 가지치기하고 열매를 솎아내어 반 병도 채 거두지 않았다. 많은 대가가 따랐지만 결국 소비자는 그의 와인을 애호하게 됐다. 집념 있는 그는 원산지 규정이 현실적으로 많은 맹점이 있다고 주장하며 콜리오라는 명칭을 버렸다. 그의 와인은 그저 지방 와인일 뿐이다. 그는 원산지 표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스럽고도 자연스럽게 와인을 만든다. 그의 와인은 힘차고 집중적이며 여운도 길어 가벼운 화이트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다.또 하나의 개성 강한 와인은 특이한 양조법을 통해 나온다. 그 중심에는 오크통을 완전히 배제한 양조장 퓨아티(Piuatti)가 있다. 그의 집안은 키안티에서 프리울리로 이주해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조반니 퓨아티(Giovanni Piuatti)는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양조법을 설득하려 든다. 라벨에는 예외 없이 ‘Save a tree, Drink Piuatti!(나무를 구하려면 퓨아티를 마셔라)’라는 문구가 있다. 오크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와인을 마시라는 뜻이다. 정말 나무의 그림자를 찾기 힘들다. 발효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한다. 숙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퓨아티 와인의 숙성력은 어떨까. 1990년 소비뇽 블랑은 산미가 여전히 건재했고 특유의 상큼하게 톡 쏘는 맛도 살아 있었다. 레드는 의심이 들지 모르겠지만 1991년 카베르네 소비뇽은 같이 자리했던 디너의 참가자들에게 깜짝 이벤트가 될 정도로 맛과 향의 전형성이 유지되고 있었다. 볼게리 솔라야에서 가져온 묘목으로 키웠다.1. 적극적인 제스처를 쓰며 호쾌하게 말하는 네레오 브레산.2. 퓨아티의 1997 샤르도네, 역시 오크통에서 숙성하지 않고 만들었다.3. 소도시 치비달레의 일요일 아침에 전통 음식(폴렌타와 살라미)을 준비하고 있는 가게.조정용 아트옥션 대표©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