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이들 투자자들과 만나는 것도 1년에 한 번 정도 점심식사가 전부다. 이 대표는 “처음 가치 투자를 해보겠다고 할 때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지난 10년 동안 자산이 평균 10배 이상 늘어 원금을 모두 회수하고 차익만으로 운용 중”이라며 “시장이 아무리 요동쳐도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믿어 주는 고객들이 고맙다”고 말했다.유리자산운용 주식본부장 시절 ‘미다스의 손’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대표는 국내 가치 투자 1세대로 꼽힌다. 2004년 8월 그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소형주 특화 펀드인 ‘유리스몰뷰티’는 1년 6개월여 만에 200%이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달성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근엔 신영증권이 초보 펀드매니저들을 위해 마련한 ‘가치 투자 세미나’ 강사로 나서 가치 투자 전도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의 가치 투자 원칙은 확고하면서도 단순하다. ‘잘 아는 기업을 쌀 때 사서 묻어 두면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원칙이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업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 가능한 얘기다. 이 대표는 평소 400개 주요 상장사 재무제표를 외우다시피하고 있다. 그는 요즘도 퇴근 후 집에서 1시간 반 이상을 데일리 리포트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평소 복리 효과를 강조하는 이 대표는 워런 버핏 같은 가치 투자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이자율 5~10%의 복리표부터 암기하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잘나가던 주식운용본부장에서 투자자문사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이 대표로부터 국내외 증시 전망과 가치 투자 전략 등을 들어봤다.“미국이라는 세계 경제의 ‘펌프’가 붕괴된 만큼 대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급락도 없을 것이다. 올해 증시는 시장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철저하게 펀더멘털이 튼튼한 기업을 중심으로 바텀 업(Bottom-up) 방식으로 분할 매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거시 지표 중 하나인 국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는데 소비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현상이므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의 올해 잉여 현금흐름은 양호할 전망이다.”“그동안 증시 불안의 핵심 변수가 됐던 서브프라임을 단순히 주가와의 상관관계로 접근하기보다는 원인부터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자산 버블로 이어졌고, 특히 부동산에서 선순환이 꼬이면서 부작용을 낳았다. 그런 면에서 서브프라임은 유동성 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나 미국이 유동성 재확대(저금리) 전략을 단기 처방으로 택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근본적 국내총생산(GDP) 성장 잠재력이 과거에 비해 한 단계 낮아질(1~2%대)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단맛을 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브릭스(BRICs)의 지속적 성장이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과 미국의 증시 동조화 현상도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현재 국내 주가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1700선에서 매수한다면 연평균 15%의 수익률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연평균 성장률 15%를 감안하면 앞으로 5년 뒤 쯤에는 3000선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일부에서 1~2년 내 3000까지 간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시가총액과 GDP 비율을 감안할 때 이는 난센스다.”“주식 평가를 채권 투자와 동일한 수익률로 환산하는 게 가치 투자의 기본이다. 15~20년짜리 채권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데 이때 가장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잉여 현금흐름 (Free Cash Flow: 영업이익+감가상각-경상 투자) 수익률이다. 만약 현재 금리가 연 5%인데 FCF 수익률이 15%라면 채권 투자 대비 3배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연간 5%씩 성장하는 기업이라면 채권 대비 5배 이상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이런 종목으로 돈을 옮겨 놓고 기다리는 게 가치 투자의 핵심이다.”“호황기는 물론 불황기를 두루 거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투자에 실패할 확률이 낮다. 특정 제품에 치우진 프로젝트성 기업은 피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도 일상생활에서 좋은 가치주를 발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신세계가 공격적으로 이마트를 확장할 당시 장을 보러 다니면서 신세계 주가에 대해 고민을 해본 투자자라면 가치 투자의 기본 자질을 갖춘 셈이다.”“가치 투자는 수많은 투자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주식을 산 후 장기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종목을 들고 기다리는 어설픈 가치 투자 역시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가치 투자를 할 때는 복리 효과를 명심하고 가능하다면 10% 이내 복리표를 외워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난 30년간 자산이 111배가 급증한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이 17%였다는 점에서도 복리 마술의 힘을 알 수 있다. 주식 투자를 제로섬(Zero-sum)이 아닌 플러스 섬(Plus sum)으로 생각하고 즐기면서 하면 굉장히 훌륭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투자 금액 가운데 차익을 증권저축 등을 통해 한 종목을 꾸준히 사보거나 5개 정도의 가치주를 골라 20만 원씩 매달 넣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웬만한 펀드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이다.”“사모M&A펀드 1호를 통해 세신 경영권을 인수해 업종을 전환할 계획이었는데 가격이 단기에 급등해 포기했다. 평균 단가 1700원선에 매입했는데 단기간에 3000원선까지 뛰는 오버슈팅으로 추가 지분 인수 비용이 당초보다 크게 늘어나게 됐다.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1호 펀드를 해산했는데 11개월 수익률 50%를 기록했다. 앞으로 추가 M&A 사모 펀드를 조성해 장하성 펀드처럼 대주주의 문제로 가치가 부각되지 않은 기업을 적극 공략할 생각이다. M&A 대상이 될 만한 종목들도 선정해 놓았다.”이택환TSI투자자문 대표성균관대 경제학과, 동대학원유리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와이즈에셋자산운용 운용본부장신영투자신탁운용 운용팀장① 채권을 이기는 기업= 최소 채권 수익률 대비 2배 이상의 수익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② 이익 변동성이 적은 기업= 일명 ‘프로젝트 기업’으로 특정 사업 또는 특정인에 의해 이익이 좌우되는 기업은 피하라.③ FCF(잉여 현금흐름)가 좋은 기업= 가치주 선택의 핵심이며 기업의 최종 목표인 순현금흐름이 양호한 기업을 찾아라.④ 숨은 가치가 있는 기업= 대차대조표 이면의 보이지 않는 지분 및 브랜드 가치가 있는 기업을 발굴하라.⑤ 프랜차이즈 밸류가 있는 기업= 매출 안정성에 기여도가 높은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는 기업을 골라라.⑥ 시간의 흐름이 내 편인 기업= 최소 3년 이내에 가치주로서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