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플라이 박철우 사장

급 속보입니다. 고농축 우라늄을 실은 기차가 우크라이나의 한 기차역에서 한 무장단체에 탈취돼 파키스탄의 우라늄 변환 시설로 이동 중이라는 소식이 긴급 속보로 들어왔습니다. 미국과 서방 소식통들은 고농축 우라늄은 열화우라늄탄을 능가하는 살상 무기 재료로, 이것이 만약 탈레반이나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손에 들어가면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현재 미국 델타포스와 영국 SAS 등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 비밀리에 긴급 투입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들의 주 임무는 운송 열차의 제어실이나 동력 장치를 파괴해 우라늄 수송을 지연, 과격 단체로 이송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해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무슨 황당한 소린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 상황은 아니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만 대한민국 PC방에선 지금도 3차, 4차 세계대전이 계속되고 있다.대한민국 PC방은 FPS(1인칭 슈팅게임)에 이미 접수됐고 선두주자는 게임 개발 업체 드래곤플라이가 만든 스페셜포스다.요즘 대한민국 PC방에선 테란, 프로토스, 저그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만약 누가 ‘최고의 인기 온라인 게임이 뭐냐’는 질문에 블리자드가 만든 ‘스타크래프트’를 연상한다면 그 사람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구세대다.스페셜포스에선 손에 땀을 쥐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부대 간 교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첨단 개인 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선 육해공 입체적인 작전도 벌어진다. 적진을 초토화하기 위해 코브라헬기, 지대공미사일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온라인 FPS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국내 게임 시장에서 FPS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까웠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나 피파, NBA 등 스포츠 게임에 빠져 있던 고객들에게 가상의 적을 사살하며 적진으로 돌격하는 FPS는 너무 난해한 게임이었다.“사실 그 당시 FPS 시장은 척박함 그 자체였죠. 세계 시장에선 1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우리나라엔 이렇다 할 FPS 게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었죠.”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광고기획사 오리콤과 한솔PCS 등에서 근무하다 동생이 차린 드래곤플라이로 자리를 옮긴 박철우(45) 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박 사장이 한솔PCS를 퇴사했던 시기는 1998년 외환위기 때였다. 미 남가주대(USC)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직장 생활에 한창 익숙해진 때였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던 부서가 대폭 인원 감축에 들어가면서 직장 생활을 아쉽게 마감해야 했다.“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봤죠. 그래서 퇴사 이후 인터넷 사업을 준비했습니다.”당시 그가 생각했던 사업은 골프 게임이었다. 그러나 평소 컴퓨터 관련 지식이 부족했던 터라 초기 단계부터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 그가 컴퓨터 게임 개발 사업에 뛰어든 데는 동생 박철승 부사장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평소에서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박 부사장은 이미 1995년 드래곤플라이를 설립해 PC용 패키지 게임인 ‘운명의 길’, ‘날아라 호빵맨’ 등 5 종의 게임을 출시해 관련 업계의 주목받는 기대주였다.“형, 난 게임 개발 말고는 다른 분야는 전혀 자신이 없으니 형이 회사 운영을 맡아줘. 그러면 난 기가 막힌 게임을 만들 테니까.”5년간 곁에서 동생과 드래곤플라이 직원들의 발전을 봐왔던 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도전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두 형제의 고생스러운 광야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부터 두 형제는 역할 구분을 정확히 했다. 박 사장이 재무, 인사, 마케팅 등 경영 전반을 책임진다면 박 부사장은 게임 개발과 관련한 모든 것을 책임진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 20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5억 원은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두 형제가 책임졌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 온라인 FPS 게임으로 기록되는 카르마다. 그는 1997년 PC용 패키지 게임으로 개발된 카르마를 2002년 온라인 버전으로 새롭게 만들어 출시했다.물론 개발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도 컸다. ‘우리나라에서 FPS 게임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소리도 숱하게 들어야 했다. 리니지, 뮤 등 MMORPG 게임이 독주하던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허공에 주먹질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그러나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카르마는 출시와 동시에 업계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깼다. 첫 달에만 3만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고 5개월 만에 회원 수가 9만 명을 넘어섰다. 누적 회원이 350만 명으로 불어났고 동시 접속자 수가 8만 명을 넘어서면서 카르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FPS 게임으로 성장했다. 더군다나 이 게임은 세계 최초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FPS 게임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두 형제는 종종 1980년 세계 최초 RPG 게임 ‘울티마’를 개발한 개리어트 형제와 비교되곤 한다. 동생인 리처드 개리어트가 게임 밖에 모르는 개발자라면 형인 로버트 개리어트는 박 사장과 같은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이다. 개리어트 형제가 RPG 게임 시대를 열었다면 박철우 박철승 형제는 온라인 FPS 시대의 선구자인 셈이다.드래곤플라이의 본격적인 ‘비행’은 스페셜포스에서 시작된다. 국내 FPS의 최대 히트작으로 기록되는 스페셜포스의 탄생 역시 우여곡절이 많다. 시간을 다시 2003년으로 돌려보자.카르마 출시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드래곤플라이는 2003년 2월 전격 유료화를 단행한다. 당시 카르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했지만 그것이 곧장 회사 이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에 박 사장은 동시 접속자 수가 5만 명을 돌파하던 2월 유료화 서비스를 실시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다. 공짜로 게임을 즐기던 사용자들이 갑자기 돈을 낼 리가 만무했다. 매출은 급전직하했고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지경이었다.한 달간 고민하던 박 사장은 박 부사장과 개발진을 소집한 자리에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물론 예상대로 개발진은 반발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박 부사장. 그의 손에는 새로운 게임에 대한 기획서가 들려 있었다.신개념 FPS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는 스페셜포스는 2004년 이렇게 탄생했다.스페셜포스는 여러 면에서 진일보한 FPS 게임이다. 카르마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면 스페셜포스는 현대전에 초점을 맞추고 SAS(영국), GIGN(프랑스), 델타포스(미국), 스페츠나츠(구 소련), GSG-9(독일) 등 각국의 특수부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국의 해병대 특수수색대와 특전사도 있다. 실제 상황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해외 군사 잡지에 등장한 최첨단 무기도 재현해 냈다. 스페셜포스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2007년 말 현재 가입자 수가 12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전군이 60만 명인 걸 감안하면 스페셜포스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군인이 대한민국 군인의 20배가 넘는 셈이다. 2005년 5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79주 간 게임 트릭스 집계 PC방 게임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동시 접속자 수는 5만 명, 하루 평균 30만 명이 스페셜포스를 들락거린다. 게임 점유율도 서든 어택, 월드오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다음이다. FPS 후발 주자인 서든 어택까지 포함해 FPS 시장을 전체 50%대로 키운 것도 스페셜포스의 공이다.팀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이 스페셜포스의 장점이다. 게임에 익숙한 신세대 장병들에게 부대원 간 작전 수행을 교육하기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지난 2002년에는 육군참모총장배 대회를 열기도 했다.해외시장을 통해 들려오는 반응도 열광적이다. 2006년 하반기 대만 태국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스페셜포스는 현재 태국에서 동시 접속자 5만8000명을 기록하며 1위를 기록 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2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스페셜포스 월드 챔피언십’은 5000여 명의 방콕 시민들이 몰려 성황리에 치러졌다.일본은 올 들어 가입자 수 200만 명, 동시 접속자 1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 몰이를 시작 중이다. 2007년 6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은 동시 접속자 수가 5만5000명을 돌파하며 현지 온라인 FPS 게임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다.필리핀과 베트남은 상반기 중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해외시장에서의 이 같은 성공으로 드래곤플라이는 지난해 11월 30일 ‘제44회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300만 달러 수출 탑을 수상했다.지난 2월 23일에는 국내 게임 사상 처음으로 e-스포츠 대회를 북한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에서 남한의 해병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 대회가 열린다는 것에 대해 북한 측 반응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사실 그 점이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호의적이더군요.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관계자는 스페셜포스의 스토리에 깊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좋았습니다.”지난해 말 박 사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세계적인 게임 기업 액티비전 관계자가 걸어온 전화에 그는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다. 둠 시리즈로 유명한 액티비전은 지난해 북미 시장조사 기관인 NPD 조사에서 EA를 제치고 미국 퍼블리셔(게임 중개 서비스 업체) 1위를 기록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액티비전이 개발한 퀘이크 워즈는 ‘FPS의 전설’로 통하는 게임. 그런 액티비전이 퀘이크 워즈를 온라인용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온라인 FPS 게임에 있어서 우리의 노하우를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공식 석상에서 온라인 게임의 메카는 한국이며 수도는 서울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드래곤플라이는 지난 2월 28일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게임 관련 업체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단일 게임 개발 업체가 예비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에 대해 업계에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스닥 시장본부는 드래곤플라이의 해외 수출 실적, 안정적인 매출, FPS 게임 개발 노하우 등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드래곤플라이의 지난해 매출액은 264억 원이며 당기순이익은 125억 원이다. 현재 장외에서 거래되는 이 회사의 주식은 주당 2만9000원선. 전체 주식의 28%인 190만 주를 보유하고 있는 박 사장의 주식 가치는 551억 원에 달한다.올해는 드래곤플라이에 중요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코스닥 상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퍼블리셔로서의 역량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드래곤플라이는 단일 게임으로만 돈을 버는 개발 회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야 잘나가고 있지만 유행에 민감한 사용자들은 언제라도 새로운 게임으로 눈을 돌리는 게 이 시장의 논리다.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기 위해선 독불장군식이 아닌 업계 공생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관련 업계에서는 골드 슬램 등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몇몇 게임이 기대 이하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퍼블리셔로서 드래곤플라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는 박 사장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드래곤플라이가 세상에 본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3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퍼블리셔를 시작한 것도 지난해부터죠. 올 하반기부터 킹덤언더파이어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고, 퀘이크 워즈도 한창 개발 중입니다. 일본 패키지 게임의 전설인 메탈슬러그와 스페셜포스2도 후속작으로 준비 중이기 때문에 지금의 평가에 그렇게 연연하지는 않습니다.”박 사장의 꿈은 드래곤플라이를 이드소프트웨어, 액티비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게임 개발 업체, 퍼플리셔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30~40명의 소수로 운영되고 있지만 1년 매출액이 1조 원이 넘는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월드 오브 크래프트로 연 1조 원의 수익을 거두는 블리자드도 그가 뛰어넘어야 할 산이다. 또 스페셜포스를 통해 e-스포츠 산업의 지금보다 더 키우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박철우드래곤플라이 대표이사 사장서울대 심리학과 남가주대(USC) 경영학석사(MBA)오리콤, 한솔PCS 근무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