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스밸류(Tops Value)주식펀드

초부터 글로벌 증시가 요동을 쳤다. 당초 연간으로 봤을 때 1분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대다수 전문가들이 내다보긴 했지만 조정 폭은 예상을 빗나갈 정도로 컸다. 선진국 증시는 물론이고 주요 이머징 국가 증시도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말았다. 코스피지수도 크게 출렁이는 바람에 특히 성장주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은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반면 조정장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사람들도 있다. 수익 방어력이 좋은 가치주 펀드와 배당주 펀드를 담당하는 매니저들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연초 이후 수익률 최상위권은 가치주와 배당주 위주로 편입한 펀드들이 대부분이다. 자산 가치나 배당률이 높은 종목들은 성장주에 비해 낙폭이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1600선까지 밀리면서 과도하게 하락한 종목들도 많아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에겐 최근 하락장이 ‘바겐세일’ 기회가 됐다.‘탑스 밸류(Tops Value) 주식펀드’는 신한금융지주 계열인 SH자산운용의 대표적인 가치주 펀드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1월 28일 기준으로 이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은 49.43%, 2년 수익률은 54.17%에 달한다. 설정액 50억 원 이상 국내 주식형 펀드 중 1년 수익률로는 전체 5위, 2년 기준으로는 전체 3위에 올라있는 우량 펀드다.이 펀드의 장점은 특정 시점에서 반짝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어느 시점에 가입하더라도 시장 평균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펀드 운용팀의 목표에 따른 것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 분석에 따르면 전체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 순위를 100분위로 나눌 경우 이 펀드는 최근 2년, 1년, 9개월 모두 상위 1%에 들었고 6개월은 3%, 3개월은 7%에 랭크됐다. 2년에 걸친 기간 동안 상위 10% 이내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펀드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안정적인 운용 능력이 돋보이는 상품이다.펀드의 대표 매니저를 맡고 있는 정인기 주식운용2팀장은 가치주 펀드로 유명한 신영투신운용 출신이다.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신영투신운용에서 기업 리서치를 맡았다.하지만 그를 가치주 신봉자로 이끈 것은 신영투신 이전 애널리스트 시절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부터 한화증권에서 인터넷과 정보기술(IT) 부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던 그는 IT 버블의 팽창과 붕괴 과정을 지켜보면서 주식에 대해 새로운 눈을 떴다고 말한다. 정 팀장은 “애널리스트 시절 IT 붐의 주역이었던 새롬기술 등이 버블 붕괴와 함께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서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고 회고했다. 미래 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앞세워 무섭게 질주하는 성장주보다는 주가 하락 위험이 적고 펀더멘털이 탄탄한 가치주의 뚝심을 믿게 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흥미로운 것은 정 팀장이 가치주 신봉자이면서도 일반적인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과는 접근 방식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대개 가치주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들은 중소형 종목을 선호하지만 그는 대형주도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정 팀장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 부도 위험이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된 소형주들이 실적과 자산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5년간 주가 재평가가 꾸준하게 이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제는 기업 크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자산 가치나 배당 여력이 큰 종목이면 모두 가치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실제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탑스밸류주식펀드는 대형주 비중이 64%에 달한다. 수익률 상위권에 있는 경쟁 가치주 펀드들의 대형주 비중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중형주 비중도 35%에 이르고 소형주는 1% 정도만 편입해 놓고 있다. 정 팀장은 “소형주에 치중하는 가치주 펀드에 비해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중소형주 비중이 높은 펀드의 경우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간 수익률 변동성이 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펀드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대형주 비중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지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펀드 운용팀은 가급적 지수 전망을 배제하고 철저히 개별 기업 위주로 종목을 골라낸다. 이익 증가율이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흐름 탓에 소외받고 있는 종목이나 내재 가치는 높지만 수급 상황과 심리적 요인 등으로 단기간 과다하게 하락한 종목 등이 우선 투자 대상이다. 업황이 바닥이어서 투자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있지만 추가 하락 위험이 적고 펀더멘털이 좋은 기업은 가치주 매니저들이 선호하는 종목이다.대표적인 것이 대한해운이다. 탑스밸류주식펀드 운용팀이 2006년 2만 원대에서 매수한 대한해운은 지난해 29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정 팀장은 “당시 해운주가 공급 과잉 우려로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대한해운을 눈여겨보고 매수했다”며 “자산 가치와 실적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 매수하고 기다린 전략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소외된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사업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한 후 반드시 기업을 직접 방문해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그는 강조한다.정 팀장은 “펀드는 지주회사라고 가정하고 지주사 아래 여러 우량 자회사를 편입한다는 생각으로 종목을 골라낸다”며 “주식이 아니라 회사에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주가의 등락보다는 지주회사 관점에서 펀드 전체의 자산을 중장기적으로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는 종목을 편입한다는 것이다.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8.48%) 현대차(5.34%) 한국전력(4.15%) KT&G(4.04%) SK텔레콤(3.89%) 하나금융(3.42%) 등의 순으로 편입해 놓고 있다.정 팀장은 “KT&G는 5년 이상 장기 관점으로 보유하고 있다”며 “올해 자동차 업황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작년부터 현대차 비중도 점진적으로 높였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경우 실적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해외 사업 부문에 대한 불안감이 과도한 수준이어서 제 가치만 찾아가도 주가는 장기간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박해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bono@hankyung.comSH자산운용의 정인기 주식운용2팀장, 김해동 주식운용본부장, 김희준 리서치팀장(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