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007 영화’의 주요 볼거리였던 신기한 첨단 장비도 없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도 기존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근육질의 터프 가이로 재탄생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역을 맡은 ‘카지노 로얄’은 그래서 이안 플레밍의 원작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영화다.폭우가 쏟아지는 아프리카 우간다 음발레 지역의 정글. 이곳에 있는 반군 지휘부에 낯선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들이 진창길을 헤치며 줄지어 도착한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일색의 정장 차림으로 차에서 내리는 한 백인 사업가. 그는 바로 전 세계 테러리스들의 추악한 검은 돈을 맡아 세탁 및 대리 투자해 주는 대가로 막대한 커미션을 챙기는 르 쉬프르다. 수많은 테러 집단의 정보를 갖고 있는 그는 서방국가 정보부들이 군침을 흘리는 타깃이 돼 있었다. 그는 또 천재적인 수학적 재능을 이용해 포커게임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과시하는 도박사이기도 하다.반군 두목은 아직도 르 쉬프르에게 거액의 현찰을 맡기는 게 왠지 꺼림칙하다는 듯이 책상에 군홧발을 올려놓은 채 나직한 목소리로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반군 두목: 르 쉬프르씨, 당신은 종교를 갖고 있소?르 쉬프르: 아니오. 내가 믿는 종교는 바로 적정한 투자 수익률 뿐이오.초면에 상대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원하는 얘기를 들려 줄 수 있다면, 또 상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워하는 것을 당신의 입으로 정확히 말해 줄 수 있다면 그 상대가 고객이든, 직장 상사이든, 연인이든 간에 상관없이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속내를 읽기 위한 현실적 전략은 바로 상대에 대한 짧고 간단한 질문을 던져 상대의 말꼬를 트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상대가 취조당한다는 느낌을 준다거나 혹은 자칫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당혹스러운 질문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담을 나누는 듯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스카이플릿사의 초대형 신형 항공기를 폭파시킴으로써 고의로 주가를 폭락시켜 막대한 채권 차액을 차지할 속셈으로 테러리스트들에게서 받은 자금을 다 쏟아 부은 르 쉬프르. 그러나 제임스 본드의 활약으로 폭파 작전은 실패하고 투자금은 모두 날아가고 만다. 당장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언제 테러리스들에게 보복 살해당해 비명횡사할지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이제 르 쉬프르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단 한 가지. 바로 알프스의 휴양도시 몬테네그로의 스플렌디드 호텔 카지노 로얄에서 열리는 포커 대회에서 이겨 판돈 1억5000만 달러를 거머쥐는 것뿐이다. 영국 정보부의 책임자인 M은 본드에게 유명 도박사로 위장 출전케 해 르 쉬프르를 꺾어 궁지에 몰아넣은 다음 그를 구해주는 체하며 영국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국가의 돈인 포커 대회 참가 판돈 1500만 달러를 관리하는 한편, 본드의 애인으로 가장한 미모의 재무부 직원 베스퍼 린드와 몬테네그로행 기차에서 만나는 본드. 막 소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의 대화가 점점 까칠해진다.본드: 당신의 예쁜 외모가 일에 방해가 될까봐 걱정이오? 남자처럼 차려 입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까칠한 여자라는 인상만 심어줬을 테고 승진은 꿈도 못 꾸지, 게다가 부모 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고아가 틀림없어, 안 그래요?린드: (감정을 억누르며) 말씀 다 하셨죠? 옥스퍼드 출신처럼 차려입고 거드름은 피우고 있으나 부잣집 도련님하곤 거리가 멀고. 보아하니 어렵게 고학생으로 자라신 것 같고. 날 고아로 생각한 건 당신이 고아여서겠죠. 영국을 위해서라면 당신 같이 막가는 사람도 필요할 테죠.시비는 먼저 걸었지만 린드의 가시 돋친, 그러나 정곡을 찌른 자신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망연자실해진 본드. 저녁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뜨는 린드의 뒷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띤다. 겉으로 보기엔 설전을 나누고 따라서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만 남겼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본드와 린드의 밀고 당기는 기 싸움과 재치 대결은 계속된다.그러나 거듭되는 이러한 말다툼은 본드가 린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로 변화됐으며 결국 이 호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이 여인의 사랑을 구하는, 평소의 007로선 상상할 수 없는 지순한 사랑으로 커가게 된다.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특히 우월적 지위나 관계, 가치관, 혹은 취향이나 특성을 공유한 사람들 간에 느끼는 일종의 친밀감, 유대감이란 열쇠는 의외로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명문대를 나온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경쟁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모임이나 공인회계사 모임에서 만나 동문 혹은 동업종 전문인으로서 협조 관계를 맺는 현상이나, 취미나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이 사회적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자리에 모여 흉허물 없이 지내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더 나아가, 경쟁 관계이기도 하면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긍정적 상황의 맞수 간에는 더욱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상대와 내가 공감하고 공유할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호감을 느끼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상대의 경계심이나 적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가급적 사전에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찾아라. 직종, 인맥, 목표, 문제, 걱정, 취미, 운동, 가치관, 경험, 이해타산 등등 무엇이든 가능하며 많을수록 좋다. 밀접하고 복합적인 공감대 형성(Common Ground)은 호감(Good Feeling)을 낳고, 호감은 매력(Attractiveness)으로 거듭나고, 매력은 상대의 경계심을 허무는 최선의 방법임을 명심하라.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푼 후, 본드와 린드는 현지 접선책인 르네 마티스를 노천카페에서 만난다. 마티스는 이곳에선 자신 외엔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음을 일러준다. 그러고 나서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중년의 콧수염 기른 사내를 가리키며 그가 현지 경찰국장이라고 일러준다. 르 쉬프르가 자기보다 선수를 쳐 그를 매수해 버리는 바람에 골치 아프게 됐으나 자신의 계략으로 곧 깨끗하게 제거하겠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 현지 경찰들이 달려와 눈앞에서 경찰국장을 연행해 간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본드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지고 마티스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본드에게 한마디 건넨다.마티스: (느긋한 미소를 띠며) 점점 자네가 이길 확률이 올라가고 있군.당신의 능력이나 역량을 은근히 그러나 확실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생생한 상황이나 자료를 연출하고 제시해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 상대가 신뢰하는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호평이나 찬사를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체험을 가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즉, 당신이야말로 상대가 찾던 바로 그 사람,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야말로 고객이 찾던 바로 그 제품과 서비스임을 각인시켜라.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믿음, 이와 함께 당신에 대한 개인적 신뢰와 호감이 형성되고 나면 고객은 당신을 신뢰하는 단계를 넘어 당신에게 의존(Reliance)하는 단계로 돌입하게 된다.다시 말해, 당신의 제안이나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 성향이 급격하게 반감돼 이전의 적대적(Hostile) 혹은 경쟁적(Competing)인 협상 태도에서 협력적(Collaborative)이며 수용적(Accommodating)인 협상 태도로 전환, 협상의 피로는 줄고(Less fatigue) 결과는 향상되는(Greater Outcome) 최상의 단계를 만끽할 수 있다.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위스콘신대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대학원 협상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