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conomy
월 25일이면 이명박 정부(이하 MB 정부)가 출범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으레 기대감을 갖게 마련이지만 역대 여느 정부보다 MB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 같다. 아마도 국민들 사이에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아울러 참여 정부가 시행했던 규제 위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도 이런 기대감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지난 10년 동안 이념과 형평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돼 각종 위기론이 거론될 만큼 악화돼 있다. 특히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다고 한다.요즘 거론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위기론은 ‘5대 함정’으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 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 함정(policy trap)’에 빠져 있다. 금리 정책도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경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수익성, 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restructure trap)’에 빠져 있다. 어떤 나라든 이런 상황에 놓이면 불확실성이 증대된다. 그 결과 예측 기관들은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MB 정부는 경제 정책에 있어 ‘대변혁’이라 불릴 만큼 큰 수정을 꾀하고 있다. ‘MB 노믹스’로 표현되는 새 정부의 경제 정책 가운데 큰 줄기만 들여다보면 경제 운영 원리로 시장경제를, 거시경제 정책 기조로 분배보다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또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 효율성이 높은 기업과 계층을 중시하되 경제 활동의 주역인 민간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도록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이 요체다. 일종의 야경 국가에 해당되는 경제 운영 방침이다.또 소외된 계층과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는 복지형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처럼 경쟁이 심한 시대에 있어서는 이들 계층과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도와주지 못할 경우에는 소득 불균형이 더 심화돼 경제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인 국민 화합이 바탕이 된 안정된 경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일단 MB 노믹스가 지향하는 경제 운용 방침은 21세기에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와 비교할 때 잘 잡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브릭스, 친디아, 넥스트 일레븐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들은 거시 정책 기조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국가다. 또 경제 운영 원리로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고 경제 주체들의 창의와 경쟁을 최대한 북돋는 국가라는 점에서 MB 노믹스와 비슷하기 때문이다.21세기 들어서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한국은 이번에 어려운 경제 여건을 극복하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인 ‘하면 된다(can do)’ 정신의 상징 인물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제 사회에서는 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빠른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최대 원동력으로 ‘하면 된다’는 정신을 꼽아 왔다.출범 이전부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역대 여느 정부보다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뉴욕 월가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한국 증시는 큰 장(big rally)이 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등 여느 분야보다 증시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 때문에 새 대통령 집권 기간에 코스피지수가 5000에 도달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시차가 있다. 이론적으로 정책이 입안돼서 확정되기까지의 내부(행정) 시차와 확정된 정책이 추진돼서 효과를 보기까지의 외부(집행) 시차로 구분된다. 정책 수명은 대체로 2년 정도로 본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의도했던 효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외부 시차도 초기에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J’ 커브 효과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리더라도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더 악화되다가 일정한 기간이 경과된 뒤에나 개선된다. 환율 정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정책에는 ‘J’ 커브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더욱이 지난 10년 동안 이념과 분배가 강조되는 과정에서 싫든 좋든 간에 그에 맞게 경제 주체들의 가치관과 경제 시스템이 굳어졌다. 이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새 정부가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초기 단계에는 정체성 혼란 등으로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 경기와 주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가 겪고 있는 증세와 비슷한 영국병을 치유하려던 대처리즘을 들 수 있다. 1979년에 집권한 대처 총리는 대대적인 공공부문 축소와 규제 완화, 성장 우선의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했지만 초기 2년 동안은 오히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등 부작용을 심하게 치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대책에도 불구, 미국 주가가 하락하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J’ 커브 효과의 또 다른 예다.이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경제 주체들이 과도하게 기대감을 갖는 것은 좋지 않다.만약 새 정부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처럼 성장 잠재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기 부양책을 추진할 경우 물가 앙등과 같은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 체감 경기와 투자 심리가 더 위축되는 우(愚)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처럼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새 정부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1년 이후까지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지층이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 이전 정부도 이런 저항에 시달리면서 그 후 급속한 레임덕 현상으로 경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정책이란 훌륭한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신호(signal)를 보낸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인 국민들이 어떤 반응(response)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좌우된다. 실제로 정부에 대한 지지도 혹은 정책의 호응도와 주가와의 상관관계를 구해 보면 지지도와 호응도가 10%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코스피지수는 1000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온다.따라서 경제를 우선하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의 장단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책 당국자들은 진심으로 정책 수용층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만약 새 정부도 이전 정부가 보여준 바와 같이 상황에 따라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누구누구 탓’만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위기의 싹이 돋아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다행히 올 하반기 이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이 장기 추세선인 3%대로 복귀하고 달러 가치도 회복될 것으로 주요 예측 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달러 가치와 강한 대체 관계를 보이고 있는 유가 등이 안정돼 증시의 또 다른 복병인 인플레 압력이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때쯤이면 MB정부가 추진했던 일부 속효성 정책을 중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시점이다.결국 경기와 증시로 본다면 올 1분기나 2분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를 잘 견디고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다 보면 올 하반기 이후 언젠가는 세 가지 호재가 겹치는 ‘트리플 크라운’ 증시가 연출되면서 의외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비상임 논설위원sch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