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유산균, 프리바이오틱스, 그리고 프로바이오틱스. 바야흐로 입에 털어 넣기만 했던 유익균들을 우리들의 피부에도 바르는 시대가 왔다.
피부에 균을 바른다고? 끔찍한 생체실험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뷰티업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이야기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미생물을 뜻하는 마이크로브(microbe)와 생태계를 의미하는 바이옴(biome)을 합친 말로, 사람의 몸과 동식물 및 모든 환경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그 유전 정보를 일컫는다. 혹은 사람의 몸에서 공생하는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생물의 유전 정보를 뜻하는 게놈(genome)의 합성어라고도 한다.
어찌됐건, 지금부터 언급할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의 몸에 서식하는 수많은 미생물을 일컫는다. 사람은 DNA처럼 저마다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을 갖는다. 인체의 마이크로바이옴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는 물론 소화기, 호흡기, 생식기 등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그 수는 순수한 인체의 세포 수보다 2배 이상 많고, 유전자 수는 100배 이상 많다. 이들은 몸속에서 생체대사를 조절하고 소화 능력이나 각종 질병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염과 아토피와 같은 알레르기 반응과 비만, 면역질환, 심지어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식품과 치료제 등이 주목받고 있는 중.
역시나 뷰티 분야도 빠질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는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 랑콤을 시작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화장품이 지속적으로 출시돼 왔으나, 건강 관련 키워드가 부상하면서 그 관심도가 높아졌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건강과 면역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마스크로 인한 피부 트러블이 지속되면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열기에 박차를 가했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효과
엄밀히 말해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을 바른다고 해서 피부에 직접적으로 균을 도포하는 것은 아니다. 김홍석 와인피부과 원장은 국내에서 세균 번식 등의 이유로 살아 있는 균이나 미생물을 화장품의 원료로 쓸 수 없다고 설명한다. "법적 규제를 떠나 환경 변화에 예민한 생균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여러 가공 단계를 거치며 이 균이 온전히 생존할 확률은 현저히 낮아지죠. 화장품에는 죽어 있는 균을 사용하는데, 유산균 중 하나인 락토바실러스람노서스, 유익균을 발효한 비피다발효용해물, 락토코쿠스발효용해물 등이 대표적입니다."
죽은 균이든, 살아 있는 균이든 피부에 미생물을 바른다는 것이 조금 꺼림칙할 수 있다. 물론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부작용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 원장은 아직까지 큰 부작용의 사례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언급한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에 사용되는 미생물은 피부 친화적인 균에서 추출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몸에 있던 균이고, 또한 이에 대한 면역 반응이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기 때문에 피부에서도 면역 반응이 쉽게 형성됩니다. 이러한 반응으로도 피부 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에 피부 장벽 개선과 염증 완화, 유해균으로부터 보호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앞서 언급했듯이 유산균을 활용한 화장품은 균을 발효해 만들기 때문에 변질의 우려가 있다. 따라서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 환경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고, 권장 기간 내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김 원장은 조언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은 어떻게 피부를 좋게 하는 것인가. 뷰티 브랜드 AHC를 운영하는 카버코리아의 우정옥 상품개발본부 상품기획4팀 팀장은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이 피부에 유익균을 배양해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전반적인 피부 상태를 개선한다고 설명한다. "화장품에 쓰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이 증식되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단백질, 펩타이드, 효소와 같은 포스트바이오틱스 성분들을 이용해 노화 방지나 장벽 강화 같은 피부 개선 목적으로 처방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피부의 마이크로바이옴 생태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설명한다. "이 유익균들은 피부를 약산성으로 만들어 유해균의 침투를 막아 줍니다. 하지만 자외선이나 미세먼지와 같은 외부적 요인 및 생활습관으로 인해 피부의 마이크로바이옴 균형이 무너지면 아토피나 염증성 병변이 악화됩니다. 이때는 원래 가지고 있던 균도 피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죠.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은 이 균형을 잘 유지해 피부 본연의 보호 기능을 극대화해 건강한 피부로 가꿔 줍니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을 사용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다만, 너무 많은 단계의 세안이나 항균 성분이 있는 세안제를 장기간 사용할 경우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효과를 떨어뜨리거나 유익한 균까지 없앨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물론 전 성분 체크는 필수다. "전 성분을 꼼꼼히 체크하고, 특히 마이크로바이옴 성분 함량이 너무 미비한지, 다른 유해성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25가지 향료나 피부에 자극이 되는 합성계면활성제 및 다른 유해성분이 없는지 알아봐야 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사용하는 것입니다. 피부 표면에 있는 미생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효 성분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죠." 김 원장의 조언이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현주소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산업은 눈에 띄게 성장 중이다. 김 원장은 과거에는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인식이 소화를 돕거나 영양소를 제공하는 장내 미생물의 단순한 기능에 그쳤다고 생각했다면, 현재는 인체의 대사와 영양, 면역 및 피부 상태에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장품에 미생물을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대기업을 비롯한 뷰티 브랜드들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위해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의 제약사와 협업해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먹는 유산균 관련 기술을 보유한 제약사 역시 이를 토대로 바르는 유산균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7년 미생물 연구를 시작해 2008년 아이오페에서 미생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출시한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녹차 유산균 연구센터를 개소하고, 2019년에는 글로벌 업체 지보단과 피부 미생물 공동 연구 협약을 체결하는 등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성분을 기반으로, 다양한 독자 성분을 개발해 시너지 효과를 선사하기도 한다.
헤라의 셀 에센스 바이옴 플러스는 피부 자생력에 도움을 주는 프리바이오틱스와 우리 몸의 생체 수를 모사해 수분과 영양이 황금 비율로 배합된 보습 성분, '셀 바이오 플루이드 싱크2.0'을 조합했다. 아이오페는 마이크로바이옴에 항산화를 접목한 독자적인 '프로바이옴' 기술로 '바이오 리독스 알파' 성분을 개발했는데,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본연의 기능인 피부 정화와 자생력 강화는 물론, 맑고 투명한 피부 결로 가꿔 준다.
LG생활건강은 헤어와 보디 케어에 집중했다. 3가지 프리바이오틱스와 4가지 프리바이오틱스 발효용해물을 함유한 '마이크로바이옴 제네시크7' 라인을 출시한 것. 헤어 전문 브랜드인 닥터그루트와 보디 케어 브랜드인 벨먼에 이 독자적인 기술을 적용해 두피와 몸 피부까지 고려했다.
유산균을 비롯해 미생물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지닌 제약사의 뷰티 브랜드는 두말할 나위 없다. 유산균 제품 '락토핏'으로 유명한 종근당건강의 뷰티 브랜드 클리덤은 유산균이 장 건강뿐만 아니라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수많은 유산균 중 피부 장벽 강화와 진정 케어에 도움을 주는 조합을 찾았다. 생기를 주는 락토바실러스발효용해물, 각질을 정리하는 비피다발효여과물, 진정 효과의 바실러스발효물 등 총 7가지 유산균을 배합한 독자적인 '락토-7 배리어(Lacto-7 Barrier)' 성분을 함유한 클리덤 닥터락토 라인을 론칭했다.
동아제약의 뷰티 브랜드 파티온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아쿠아 바이옴(Aqua Biome)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반열에 올랐다. 포스트바이오틱스인 쿠티박테리움 아비둠발효추출여과물과 피부 접착력을 높인 새로운 히알루론산, 주변의 수분을 끌어들여 수분막을 형성하는 엑토인, 그리고 히알루론산 대비 5배 이상 높은 수분 보유력을 지닌 사크란을 조합했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미래
이뿐만 아니라 국내 뷰티 브랜드들도 독자 성분으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AHC는 20~30대 피부에는 존재하지만 노화가 많이 진행된 50~60대 피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이크로바이옴을 발견해 독자적인 '트웨니스 바이옴'을 개발했다. 인체에서 직접 분리해 원료화했기 때문에 기존 성분들 대비 피부 적합성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닥터자르트는 자사의 마이크로바이옴 성분을 '자르트바이옴'이라 칭하는데 여기에 포스트바이오틱스와 미생물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를 배합한 '자르트바이옴h'는 피부 수분 환경을 개선하도록 특화됐다.
앞으로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높게 평가한다. 닥터자르트의 신지안 상품개발팀 대리는 "최근 1~2년 사이 국내에 유산균 성분이 주목받게 되면서 장내 유산균, 피부 유익균 등 프로바이오틱스 혹은 마이크로바이옴을 핵심 소재로 삼고 있는 브랜드들이 업계와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었다"며 "스킨케어뿐만 아니라 헤어케어와 보디케어 등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카버코리아의 우 팀장 역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시장이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에 비해 현재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은 단순히 성분을 넘어 고함량, 고농도, 효능, 안전성 등에 대한 보다 전문화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이미 글로벌 브랜드와 대기업, 제약사 등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회사에서 앞다투어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도움말 김홍석 와인피부과 대표원장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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