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부작용으로 혈전증?…동맥경화·흡연이 더 위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후 희귀 혈전증에 대한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혈전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AZ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혈전증은 ‘30세 미만 백신 접종 제외’로 일단락이 됐다. 그렇다면 혈전은 왜 생기고,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사실 혈전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보다 동맥경화, 흡연, 피임약 등으로 인해 훨씬 더 잘 생긴다. 혈전은 불시에 혈관을 막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혈류 느려지면 혈액 고이며 혈전 생성
건강한 혈액은 적당한 점성을 띤 채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혈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져도, 저절로 풀어져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혈전은 왜 생기는 것일까.
혈전증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동맥경화가 있어서 혈관내피세포가 망가졌거나 혈류가 느려진 탓이다. 먼저 동맥경화가 있으면 혈관내피세포가 손상되면서 혈액 속 혈소판, 대식세포, 과립구, 섬유세포 등이 달라붙어 혈전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전은 심장, 뇌 등에 있는 동맥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 ‘동맥혈전증’이다.

또한 장기간 입원하거나 비행기에 오래 앉아 있는 등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정맥을 짜서 피를 위로 올려 보내는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혈류가 느려진다. 이때 혈액이 빠르게 돌지 못하고 어느 한 곳에 정체돼 혈전이 잘 생긴다. 이렇게 생긴 혈전은 대부분 종아리, 허벅지 등 정맥에 생긴다. ‘정맥혈전증’이다.

동맥 혈류는 정맥보다 훨씬 빨라서 잘 정체되지 않으므로, 동맥혈전증보다는 정맥혈전증이 훨씬 많다. 흡연이나 미세먼지는 온몸의 염증 반응을 일으켜 혈전증 위험을 높인다. 피임약이나 여성호르몬제도 혈전증 위험을 높인다. 이들 약품에 들어 있는 에스트로겐이 체내에서 혈액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피브리노겐 등)을 증가시키고, 응고 억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은 감소시켜 혈전을 유발할 수 있다. 피임약 등으로 생긴 혈전은 급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피임약 복용 중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동맥혈전증은 ‘응급질환’, 정맥혈전증은 ‘호흡곤란’ 주의
동맥혈전증과 정맥혈전증은 각각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동맥혈전은 뇌경색, 급성심근경색, 급성말초동맥폐쇄증 같은 응급질환을 유발한다. 동맥은 산소와 영양분을 온몸 장기와 세포 등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동맥이 막히면 해당 혈관과 연결된 장기, 세포 등이 괴사하기 시작하므로 즉시 치료해야 하며 팔,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정맥혈전증은 응급질환은 아니지만, 방치하면 불시에 급사를 유발하는 심부정맥혈전증을 야기한다. 심부정맥혈전증은 혈전이 근육에 둘러싸여 있는 심부(深部)정맥을 막아 혈액이 심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서 울혈이 생긴 것이다. 심부정맥혈전증이 있으면 다리가 붓고 통증이 생기며 심하면 피부 색깔이 파랗게 변한다. 심부정맥에 있던 혈전이 떨어져 나와 정맥을 타고 이동하다가 폐 혈관을 막으면 폐색전증이 생긴다. 폐색전증이 오면 호흡곤란, 흉통 등이 나타나며, 여러 폐 혈관 중 큰 혈관이 막히면 급사할 수도 있다. 심부정맥혈전증을 방치하면 환자 중 30%가 폐색전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시간 비행이나 운전을 할 때도 심부정맥혈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장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혈액순환이 잘 안 돼 허리나 발에 통증이 생긴다. 장시간 비행이나 운전을 할 때 꾸준히 체조를 하는 것이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위험군, 검사해보는 게 좋아
동맥혈전증이 뇌경색 등을 유발하면 호흡곤란, 마비, 시야장애, 의식불명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탓에 환자 대부분이 응급실로 실려온다.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30분 이상 극심한 흉통이 나타난다.

정맥혈전증이 있으면 주로 한쪽 종아리 등에 부종, 통증, 열감 등이 느껴진다. 혈관이 튀어나와 보이고, 발을 위쪽으로 젖혔을 때 종아리 근육에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정강이 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뗐을 때 피부가 돌아오지 않고 함몰된 채로 남아 있기도 한다.

오래 걷거나 선 탓에 발목과 발이 붓고 아픈 것과 달리,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다리 통증이나 부종이 생겨서 제대로 걷기 어려울 정도라면 혈전증을 의심해야 한다. 정맥혈전증이 있는데 별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영국외과학회지 연구 등에 따르면 심부정맥혈전증 환자 중 최대 절반은 혈전이 불시에 폐색전증 등을 유발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다.

혈전증 고위험군이라면 증상이 없어도 검사를 한번쯤 받아보는 것이 좋다. 고위험군은 △혈전증 가족력이 있거나 △60세 이상 △암 등 수술을 받은 사람 △비만한 사람
△장기 입원자 등이다.

혈액·초음파 검사 통해 확인
혈전증 검사는 혈관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통해 한다. 동맥혈전증은 심장·뇌 괴사 등의 증상이 확연히 드러나므로 진단이 잘 된다. 하지만 정맥혈전증은 다르다. 정맥혈전증은 증상이 모호하고 가벼운 경우가 많아 다른 질환과 헷갈린다. 초음파 검사 전에 혈액 검사 등을 먼저 권한다. 혈액 검사는 혈전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작은 조각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혈전증이 아닌 환자를 미리 가려낼 수 있어 진단 효율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항응고제·혈전용해제로 치료
뇌경색, 심근경색 등 동맥혈전증은 대부분 응급질환이기 때문에 혈전용해제를 사용하고, 심장혈관의 경우에는 혈전으로 완전히 막혔으면 스텐트 시술을 한다. 치료가 빠를수록 후유증이 덜 남으므로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를 불러 큰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

심부정맥혈전증이 있으면 1차적으로 항응고제를 써야 한다. 항응고제는 우리 몸에서 혈액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비타민K의 기능을 방해해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먹는 약으로는 와파린과 노악(NOAC), 주사제는 헤파린이 있다. 항응고제는 혈전을 녹이지는 못하지만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혈전이 장골정맥, 하대정맥 같은 큰 혈관을 막으면 폐색전증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미 생긴 혈전을 녹이는 혈전용해제를 써야 한다.

정맥 내 관을 집어 넣은 뒤 혈전용해제를 직접 투여, 혈전을 녹인다. 혈전용해제는 병원에 입원해 긴 시간 동안 투여를 해야 하며, 뇌출혈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초음파상에서 혈전이 크게 보이면 정맥에 빨대 같은 관을 꼽아 혈전을 빨아내는 시술인 ‘흡입성 혈전제거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글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