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누르는 몇 가지 방법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분노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우리 생존에 위협이 느껴질 때 공격성을 일으키는 중요한 감정 신호다. 그러나 과도한 분노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상하게 하고, 가족을 포함한 사회적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분노 조절을 위해 우리가 주로 쓰는 방법은 ‘억압’, 즉 찍어 누르는 것이다. 분노라는 감정도 일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나가는 것을 막으면 내 마음 어느 곳에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 대표적인 분노 조절 전략으로는 먼저 ‘이완요법’을 들 수 있다.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몸의 생물학적 공격 반응을 이완하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한다거나, 조용히 산책을 하며 즉각적인 분노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 감정을 그냥 찍어 누르는 것보다는 좋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화를 불러일으킨 내용 자체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인지의 재구성’이라는 방법도 있다. 저 사람이 꼭 나쁜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내가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분노 감정을 일으킨 사고의 흐름과 인지 과정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같은 단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기에 분노 반응을 객관화해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화가 나지만 일단 참은 뒤, 하루 지나 보니 상대방이 이해되는 경험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 해결 전략’도 있다. 실제 분노를 일으킨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노 반응 대신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원인이 없어지면 화를 더 낼 일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나 자신을 위해 ‘용서’를 결정하자

‘나를 위한 용서’라는 분노 조절 방법도 있다. 보통 용서는 타인을 향한 것인데,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용서하자는 것이다. 타인 때문에 분노하면 결국 망가지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이다. 그러면서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너무 밉기 때문이다. 생각을 전환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진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용서를 결정해버리자는 이야기다.

용서의 의학적 유익성을 연구한 러스킨 박사의 ‘용서의 9단계’를 소개한다. 첫 단계는 분노에 대한 이해다. 분노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느낌을 이해하고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용서를 수용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과 몸을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용서라는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결심을 꼭 주변인이 알게 할 필요는 없다. 세 번째는 용서에 대한 이해다. 용서한다고 해서 나를 상처 입힌 그 사람과 반드시 화해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해야 할 일, 용서는 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네 번째는 현재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 반응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나 고통이 느껴지면 곧바로 스트레스 이완을 위한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긍정적인 사람이나 행복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색하며 걷기나 요가, 명상도 도움이 된다. 이완요법을 통해 분노로 인한 스트레스 반응을 막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심리를 줄이는 것이다. 당신의 건강, 사랑, 우정, 사회적 성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 나를 위해 움직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곧 삶의 고통을 일으킨다. 일곱 번째는 상처받은 경험만 끊임없이 생각하는 대신 긍정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에너지를 과거 회상이 아닌 긍정적인 현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상처에 대한 가장 멋진 복수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분노할수록 그 분노감은 더 커져만 가고 내 삶의 긍정성을 상하게 해 인생을 후퇴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다. 원망, 넋두리가 아닌 용서라는 대담한 결정을 내린 멋진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토리를 말이다.

용서의 9단계에 대해 들어보니 어떤가. 행복을 ‘느낌’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결국 행복을 이끌어가는 것은 ‘삶의 가치’다. 내 감정과 상관없이 삶의 소중한 가치를 향해 한 발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