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들은 이처럼 소소하고, 당연한 일들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대개는 기어이 인생의 중요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작은 것들의 위력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깨닫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상속도 마찬가지다. 상속은 인류의 오랜 생존 전략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왔다. 역사학자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는 저서 <상속의 역사>에서 “상속제도에 따라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렸다. 한 가문에서 상속 때문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국제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국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상속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인 셈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상속’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부자들’의 돈문제 혹은 ‘먼 미래에나 일어날 일’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안일한 대처가 훗날 상속세 폭탄, 유류분 전쟁, 가업승계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26%의 2배에 달할 만큼 높다.
상속 플랜에서 70~80%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문제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자칫 준비가 미흡할 경우,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상속재산을 경매 등의 방법으로 처분해야 하는 등 상속인에게 막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이혼 및 재혼의 증가 등 사회구조적 변화도 상속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2021년을 사는 우리가 직면한 상속·증여 실태는 어떤 상황이고, 주의해야 할 함정 및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 한경 머니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로벌리서치의 도움을 받아 지난 5월 10일 하루 동안 김앤장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율촌, 삼정회계법인, 회계·컨설팅법인 EY한영, 법무법인 충정, 법무법인 화우, 법무법인 로고스 등 국내 최고의 상속 관련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상속·증여, 미리 준비할수록 실수 없다
우선, 전문가들은 ‘상속·증여를 위한 적당한 준비 기간은’이란 질문에 75%가 5~10년이 적정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으로 1~3년(10%),1년 이하(10%), 3~5년(5%)을 꼽았다. 또한 ‘상속 플랜을 준비할 적당한 피상속인의 연령대는’이란 질문에는 50대가 42.9%, 60대 33.3%, 40대 14.3%, 30대와 70대 모두 4.8% 순이었다. 즉, 온전한 상속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피상속인들이 최소 50·60대부터 5~10년간 상속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는 셈인데, 이는 현재 우리나라 기대수명(2019년 생명표 기준) 83.3세를 감안한다면 더욱 꼭 맞아떨어지는 수치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한국인들 상당수가 여전히 상속 플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상속·증여 관련 상담인들이 가장 반속해서 하는 실수’에 대해 절반 이상이 ‘미리 상속을 대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상속 과정에서 피상속인의 과거 10~15년 거래가 중요한 만큼 사전 대비가 중요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상속 준비를 하는 것을 불경시하는 시선이 많아 철저한 대비가 이뤄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피상속인들이 상속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사후 상속인들 사이 분쟁 및 세금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며 “특히,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유언장의 경우, 남은 가족들 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상속을 위해서는 재산 규모에 맞게 미리 상속세 납부 세원 마련 및 유언집행자를 지정해 피상속인의 의사가 관철되도록 하고, 상속인들 사이 의견이 통일될 수 있도록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밖에도 상속인들이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 중에는 △부동산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일정한 기간 매매사례가액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상속세 또는 증여세 신고 혹은 수정신고를 해야 하는데,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일단 세금을 납부하고 잊어버리는 경우 △세무상 세 부담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인 거주자·비거주자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하지 않아 유리한 대로 간주해 자산 승계를 이행하는 경우 △해외 소재 재산이 존재하거나 수증인·상속인이 비거주인일 때 해외 현지국의 세 부담 및 세무 사항을 전문가를 통해 검토하지 않은 채 실행하는 경우 등 다양했다.
시대 반영 못한 상속세 ‘난감’
피상속인들이 상속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설문 결과에 따르면 세금문제가 54.5%로 가장 높았고, 가족 간 갈등 31.8%, 경영권문제 9.1%, 상속재산 분할 4.5%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적당하냐’는 질문에 80%(매우 높다 35%, 높다 45%)가 ‘높다’고 입을 모았고, ‘합리적인 상속세율’에 대해서는 50%가 ‘30% 이하’라고 답했으며 그 뒤를 이어 ‘최고 40%’(30%), ‘현행 유지’(15%)로 집계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30억 원 이하 40%, 30억 원 초과 50%의 세율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상속·증여세율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것도 2000년 이후 20년 이상이 지났다. 그동안 자산가격은 급격히 상승했지만, 상속·증여세율은 요지부동이다. 과거 일부 고소득층만이 부담하던 상속세가 이제 수도권의 집 1채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상속세 납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과세대상자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상속세율 인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만약, 상속세를 일률적인 인하하기 어렵다면 세율 구간의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세 부담 조정을 시도해보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 가령, 최저세율인 구간을 1억 원 이하가 아닌, 3억 원 이하 또는 5억 원 이하로 상향하고, 최고세율(현행 30억 초과) 구간을 100억 원 초과 등으로 높이는 방식의 조정을 통해 다수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을 줄이면서, 초고액자산가에 한해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세율 구간의 변경을 고려하는 세율 구간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 응답자는 “상속세의 비과세 범위는 수십 년 전에 설정된 금액인데 그동안 물가 상승 및 자산 가치 변동을 고려해 중위(中位) 수준까지의 재산상속·증여에 대해 비과세할 필요가 있다. 한편 상속세는 이중(二重) 과세적인 측면이 있으므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못 푼 상속, 가족 분쟁 부추긴다
세금보다 상속 과정에서 더 뼈아픈 함정은 ‘가족 분쟁’이라고 한다. ‘등장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가장 가깝고, 내 편일 것 같던 가족이 되레 상속을 거치면서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특히, 나날이 우리 사회의 가족구조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세심히 고려해야 할 상속 경우의 수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유류분 분쟁이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받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법정 상속인 몫으로 유보해 놓는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말한다. 즉, 상속인 또는 근친자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해 일정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다. 현행 민법에서 유류분은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액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류분은 균등한 상속재산 분배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특히, 초고령화로 인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은 과거에 비해 훨씬 늘었고, 황혼이혼이 급증하면서 부부간 재산 분할이나 상속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반환청구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 911건으로 5.8배가 넘게 늘어났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현행 유류분 제도는 바뀌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75%가 바뀌어야 한다(그렇다55%, 매우 그렇다 20%)고 답했다. 물론, 15%는 바뀌지 않아도 된다(그렇지 않다 10%, 매우 그렇지 않다 5%)는 입장이지만 과반수 이상이 유류분 제도 개정 쪽에 힘을 실었다.
유류분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동소이했다. 유류분 제도가 시대적 변화에 뒤떨어지고, 국민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어 가족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한 응답자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처분하든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며 “이것을 제한해 불효자나 부모 같지 않은 부모에게 단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제약이다”라고 각을 세웠다.
또 다른 응답자는 “과거에는 아들 편애 등 자녀 차별 문제로 인해 유류분 제도의 정당성이 널리 인정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부모 봉양 등에 대한 인센티브나 재산 처분의 자유가 좀 더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답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상속 과정에서 가족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가족 간 진솔한 소통과 공평한 분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응답자는 “생전에 자녀들에게 불공평한 자산 분배(증여나 유언 불문)를 할 경우, 피상속인 사망 이후에 자녀들 간에 그 불공평을 시정하기 위한 유류분반환 소송이나 상속재산분할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부모가 생존 중일 때는 불공평한 자산 분배가 있어도 꾹 참고 있다가 부모가 사망한 이후 본격적으로 소송전이 벌어지는 일이 대다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응답자는 “고령화에 따른 치매 환자도 늘고 있어 건강할 때 미리 상속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치매에 걸려 의사능력을 상실하는 경우 상속인 이외에도 주변 사람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상속재산도 감소할 뿐만 아니라 상속인들 간에 불신이 극심해지면서 합의가 잘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전문가들은 개선돼야 할 현행 ‘상속법’에 대해 △가업승계의 실질적 보장 △(상속자산이 주식일 경우) 주식평가 관련 공정가치 평가(DCF)도 인정할 수 있는 제도 구비 △가업상속공제의 적용 대상 확대 △기여분 제도 개정 △주식 할증과세 폐지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 응답자는 “우리나라에서 최대주주가 보유한 상장 주식의 경우, 이를 상속받을 때 시장 가치에 20%를 가산해 평가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지만 세금 납부를 위해 매각할 때에는 시장 가치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며 “대량 매각에 따른 할인 매각까지 고려할 경우 실질적인 세율이 60%를 초과해 구조적으로 상속인에게 경영권이 승계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응답자는 “사전 처분 재산의 상속 추정과 관련해 상속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상속인이 요청 시 과세관청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 및 소명이 필요한 자료를 공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김수정 기자
자료: 한경 머니 ‘상속·증여 전문가 설문조사(2021)’·글로벌 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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