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처럼 상속도 그 속내를 완전히 들춰보기 전까지는 희비를 가늠할 수 없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바닷속 깊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상속의 암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빅스토리]상속 고민, 방치하다 암초 만난다
#1 연매출이 2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의 오너 A씨는 최근 상속세 문제로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당장 내년이면 여든에 접어드는 그는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2 사업가 B씨는 외동딸에게 자신이 소유한 100억대 빌딩을 사전증여 할 계획이다. 하지만 월 300만 원을 버는 딸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과연 제대로 납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3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해오던 C씨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상속인들의 고민이 짙어졌다. 한국 과세당국이 C씨를 한국 거주자로 보고 미국에 있는 재산도 상속세를 부담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C씨는 사업 대부분이 중국에 기반을 두고 있어 중국 거주자로도 분류돼 있었다. 이에 상속인들은 “중국은 한국과 달리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중국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한국 과세당국에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다”며 마찰을 빚고 있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겸손과 근면의 미덕을 부여한다. 역사 속 굵직한 참사의 배경에는 인류의 오만과 안일함이 있었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거침없이 항해하던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 침몰해 1513명이 사망한 사건을 비롯해 수십 년 전부터 방치한 환경오염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상속도 마찬가지다. 그간 상속은 특정 계급이나 부자들의 숙제로 치부됐지만 이제는 모두의 고민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수년째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 잔혹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의 분할에 관한 처분 청구’는 총 628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 전인 2016년 379건에 비해 65.7%나 늘어난 수치다. 상속 관련 소송 역시 2017년 404건에서 2018년 487건으로, 2019년에는 576건으로 느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빅스토리]상속 고민, 방치하다 암초 만난다
상속·증여재산의 규모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2015∼2019년 상속 및 증여 분위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총 상속·증여재산 규모는 112조9808억 원이었다. 이는 2015년 총 상속·증여재산 규모 79조6847억 원보다 33조2961억 원 늘어난 것으로, 5년간 41.8%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상속, ‘남의 일’ 아니다…10년 이상 플랜 세워야
그렇다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상속이 여전히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 등 상속자산 유형에 따라 세법의 셈도 천차만별인 데다 가업승계, 국제상속은 물론, 뒤얽힌 가족관계 등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상속세율도 상속인들의 큰 고민거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55%)과 우리나라만이 50% 이상이다. 미국(40%), 영국(40%)보다도 높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상속에 대한 안일한 태도다. 실제 상속 관련 전문가들은 통상 상속·증여 플랜은 10년 이상의 큰 그림을 미리 그려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세무사는 “상속·증여세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무계획으로 흘려보낸 세월을 아쉬워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안정적인 상속·증여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안일하게 대처하다 큰 곤란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가업승계다. 가업승계는 단순히 기업 지배를 위해 지분만을 후계자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가업의 관리와 성장을 위한 노하우와 거래처 등도 함께 이전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자칫 준비 없이 오너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가업승계를 하게 될 경우 거액의 상속세 부담 및 납부 재원 마련 곤란, 회사 내부 임직원과의 갈등과 주요 인력 이탈, 외부 주요 거래처의 이탈로 인한 회사 수익력 약화, 가족 간 갈등 등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기업 쓰리세븐이나 국내 종자 업계 1위 농우바이오 등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세금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해야 했던 아픈 전례가 자주 거론되는 것도 그 이유다.

한 로펌 변호사는 “가령, 가업승계를 위한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았다 하더라도 가업상속인이 상속개시일부터 10년 이내에 세법에서 정한 사후의무 요건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공제받은 금액에 사후의무 위반 기간에 따른 추징률을 곱한 금액을 상속 개시 당시의 상속세 과세가액에 다시 산입해 상속세를 다시 계산해 납부해야 하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며 “성공적인 가업승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스스로 장기적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업 가치의 평가, 자금 마련, 세 부담 최소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사전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혼·재혼의 증가, 상속 갈등도 늘어나
이혼 및 재혼의 증가도 상속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국내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0.4건으로 1980년 0.6건, 1990년 1.1건, 2000년 2.5건, 2016년 2.1건으로 증가했고, 재혼도 늘었다. 주목할 점은 황혼이혼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0년 차 이상 부부의 이혼율은 전체의 34.7%로 가장 높았다.

동시에 중·장년의 재혼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재혼 건수는 총 4106건이며, 이 중 남자의 재혼 건수가 2759건으로 전년 대비 2.8% 늘었고, 여자의 재혼 건수는 전년 대비 12.1% 증가한 1347건으로 집계됐다.
이런 흐름에 따라 황혼재혼을 한 배우자의 상속 분쟁도 간과할 수 없는 상속의 덫이다. 통상 황혼재혼을 한 후 배우자가 바로 사망했더라도 생존 배우자의 상속분은 민법에서 규정한 대로 자녀의 1.5배다. 다시 말해 자녀가 2명이라면 새 배우자의 상속분은 자녀가 각각 1일 때 1.5의 비율이기 때문에 새 배우자는 3.5(1+1+1.5)분의 1.5, 자녀들은 각각 3.5분의 1의 비율로 상속재산을 나누게 된다.

만약 황혼재혼한 배우자가 또다시 이혼하는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은 인정된다. 그러나 재산 분할의 대상은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므로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재산 분할이 인정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단, 혼인 기간이 상당하고 배우자가 상대방의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 재산을 유지하거나 가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서도 재산 분할이 인정된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이혼 및 재혼가족이 늘면서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가족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 간 격 없는 대화와 공평한 재산 분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사는 “‘우리 자녀들은 사이가 좋아서 따로 상속 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들이 많은데 실상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며 “돈도 돈이지만 가족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게 진짜 상속의 덫이다. 가족이 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자녀들과 상속 플랜을 짜놓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의 함정은 국경도 없다
당신이 빠질 수 있는 상속의 함정은 그 범위가 국내를 넘어서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재외동포 수가 750여만 명에 육박하며 이들이 보유한 국내외 재산에 대한 세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사업이나 투자 목적으로 해외에 부동산, 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들이 많아지고, 그 자녀들 또한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취직 및 결혼을 하는 등 이미 국제상속·증여 이슈는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하지만 각 나라의 법령에 따라 거주자 판단 기준이나 세금이 천차만별인 데다 국가 간 조약도 상이하기 때문에 국제상속·증여 이슈 역시 상속의 난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제, 납세의무자(거주자 vs 비거주자 판단), 과세권자·과세물건(거주지국 과세 vs 원천지국 과세), 과세표준(국외 재산의 평가), 신고(외국환거래법,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 등) 다섯 가지 조건을 체크해야 한다. 이 중 핵심이 되는 것이 거주자와 비거주자 판단 여부다.

우리나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수증자가 거주자인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국내 및 국외 재산 모두에 대해, 그리고 수증자가 비거주자인 경우에는 국내 재산에 대해서만 증여세 신고 납부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실질적으로 비거주자가 비거주자에게 국외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에만 우리나라에 증여세 신고 납부의무가 없는 셈이다.

‘거주자’ 여부는 국내 ‘소득세법’상 판단 기준을 따르는데 국내에 거소를 둔 기간이 2년에 걸쳐 183일 이상이거나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있고 직업 및 자산 상태에 비추어 계속해서 183일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으로 인정되는 때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비거주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외국에서 몇 년간 계속해서 살고 있더라도 국내 기업의 해외 지점에서 근무하거나 주재원으로 파견된 직원은 거주자에 해당하고, 국내에서 부모가 학비를 보내줘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도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국내에 있기 때문에 거주자로 본다. 또한 재산이나 법인의 대부분이 한국에 있다면 국적과 상관없이 거주자로 분류돼 국내외 재산에 대한 상속세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한 세무사는 “이중거주자인 경우에는 국가 간 조세협약을 따르게 돼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조세 협약상 거주자 판단 기준과 관련해 항구적 주거,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일상적 거소 등 다소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조세 협약을 토대로 어느 나라 거주자인지 여부를 가리지 못하면 마지막으로 국가 간 상호 합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세금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국가 간 이견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