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 <복자에게>
김금희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는 여성과 노동자, 소수자 등 현대사회의 이슈를 소재로 했다. 작가는 삶 자체가 실패가 되지 않기 위해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매개체가 바로 편지다.
마음을 전달하기에 편지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전하지 못하는 편지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전하지 못하는 편지도 있다. 누군가로부터 관계가 소원해져 말을 걸고 싶을 때마다 쓰는 글이라든가, 말을 해야 하지만 끝이 보이기에 전하지 못하는 언어는 대다수가 편지다.
소설 <복자에게>도 이런 글이 아닐까 싶다. 여성, 노동자, 소수자 등 현대사회의 이슈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마음을 다독이는 작가 김금희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이영초롱이 1999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열세 살에 홀로 제주에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상 전교 1등을 유지했기에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항변에도 남동생 우주는 서울에, 영초롱은 고모가 있는 제주 고고리섬에 도착한다.
섬에 왔으면 ‘할망신’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고복자를 만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털어 놓는다. 녹는 아이스크림도 다시 얼리면 먹을 수 있다고 하는 ‘요망진’ 복자와 단짝으로 섬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른들 사이의 갈등에 이영초롱은 복자가 좋아하는 이선 이모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둘 사이는 멀어지고, 영초롱이 서울로 돌아가면서 소식이 끊긴다.
영초롱이 다시 제주로 가게 된 건 판사가 된 후 재판 중에 욕을 했다는 이유였다. 열패감을 안고 다시 만나게 되며 둘의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시 만난 복자는 피해자가 됐다.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간호사가 된 복자는 아이를 유산하고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동료들과 힘겨운 싸움 중이었다.
김 작가는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간호사들의 산재사건과 소송을 모티브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임신 중에도 보호구 하나 없이 유해 약품의 분쇄 업무를 한 간호사들이 이유 없이 유산을 하거나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10년 만에 태아의 건강 손상도 여성 노동자의 산재에 해당한다고 첫 판결이 내려졌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산재 인정을 위한 8년간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가져와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짚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고리섬은 일하는 여성들로 가득하다. 복자의 할머니는 해녀였고, 영초롱의 고모 역시 고고리섬에서 유일한 보건소 의사였다. 우편배달부 역시 여성이다. 주목할 점은 영초롱이 롤모델로 삼고 싶은 양 선배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재판을 진행했던 양 선배는 법원장이랑 가슴과 젖의 차이에 대해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고 한다.
영초롱은 판결 중에 답답함을 호소하기 위해 욕을 할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판결이란 선악의 분별이 아니라 그저 제도적 분리에 불과”(191쪽)하다고 하는 영초롱의 말이 서늘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소원해진 영초롱과 복자를 연결해주는 건 고오세였다. 오세는 영초롱이 서울로 이사 갈 때 유일하게 주소를 물어본 아이였다. 진짜 찾아올 줄 몰랐던 영초롱이지만, 재회했을 때 그를 모르는 척했다. 그럼에도 오세는 영초롱과 친구 사이를 유지했고, 복자와 영초롱의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고 노력했다. 판사 영초롱이 복자의 사건을 맡고, 복자와 영초롱의 관계가 아닌 사건과 복자의 관계가 심각하다는 말을 했을 때, 오세가 복자에게 이 말을 했을 때 마음이 가장 아팠다.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겠니?”(220쪽)
영초롱은 실패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실패, 복자의 상황은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밀려왔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에는 영초롱이 복자에게 쓴 편지들이 많다. 고모가 교도소에 있는 친구에게 매일 타자기로 편지를 쓰는 것처럼 상대에게 전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낸다.
제주 고고리섬은 작은 지역이었다. 혈연으로 똘똘 뭉쳐 있다 보니 의사인 고모도,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기 위해 전학을 간 영초롱도 외지인으로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복자는 영초롱을 경계심 없이 따뜻하게 맞이했을 것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본 것 그대로 말했던 것들이 자신에게 칼이 돼 돌아왔을 때 영초롱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판사가 아니었다면 인간 영초롱과 복자는 그대로 친구가 됐을까.
복자와 영초롱은 끝내 관계가 개선되진 않았다. 한 번 기울어진 채 시작된 관계이기 때문에 복구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서로의 상황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믿지 못한다는 것까지도 보듬을 수 없었을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이기적인 건 아닐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과 이의 장기화는 생존에 위협을 가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날이 서 있었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 날카로움이 “우리는 생존하고 싶다고. 전염병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가난이나 상실이나 실패로부터”(232쪽)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 작가는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243쪽)고 했다. 영초롱이 복자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것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끊어진 실을 연결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주변의 수많은 복자에게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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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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