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간된 보고서 한 편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갈수록 심화되는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진단과 ‘선제적 관리 방안’에 대한 제언을 담았는데, 이전과 비교해 문제의 심각성을 가감 없이 부각시켰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금융연구원의 경우 사실상 정부 금융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복해 온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정부 스탠스가 180도 달라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전세대출 부문에 대한 경고다. 우선 금융연구원은 “금리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가계 부문과 자산 시장에 주는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처럼 시장금리 급등, 주가 급변동, 신흥국 자금 유출 등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발생하고, 나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경우다”라고 우려했다.
금융연구원은 특히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인으로 부상한 전세대출은 4·29 부동산대책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서 예외로 빠져 있어 풍선효과로 인한 수요 확대가 불가피해 보이는 데다, 전세 가격 강세가 지속되면서 향후에도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DSR 규제 대상 편입 등 별도의 사전적 관리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일부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세대출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표적으로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이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부터 전세대출을 포함해 신용대출, 비은행 대출에 대해 DSR 규제를 조속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서 이사는 “현시점의 가계부채 문제는 규제 실기와 함께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 하락, 정치권의 무능이 결합된 결과물”이라며 “가계부채 문제가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 이사와의 일문일답.
금융·부동산 시장, 가계부채 논란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중대 전환점에 와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꾸준히 이어졌던 통화 확장 국면에서 이제는 그 반대인 ‘정상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거죠. 다시 말해 시장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고,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물론 긴축 강도는 각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 달렸겠죠.
문제는 우리 정부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테이퍼링, 즉 통화 긴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이슈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미국 시장의 인플레이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미국발 통화 긴축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신흥국 등 부채의 약한 고리부터 터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려스러운 대목은 선진 시장 가운데서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리스크 측면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는 점이죠.”
그동안 정부는 가계부채 총량 측면에서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본질적으로 현상 분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정확성이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사실상 집계가 안 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현재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가계부채는 2000조 원(자영업자 대출 포함)에 못 미치지만, 실제로는 2800조 원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40%에 육박하는 수준이죠. 이처럼 과소 계상된 이유는 700조 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보증금 규모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에 버금가는 수준이죠. 이는 개인부채 중에서 가장 위험한 아킬레스건이면서, 정부가 집값을 못 잡는 핵심 요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주택 구입 시 내야 하는 자금조달 계획서를 보면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비율은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결국 전세보증금을 이용한 ‘갭투자’라는 얘기죠. 순증 기준으로도 전체 은행 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 문제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한 주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엄청난 규모임에도 관리가 불가능한 사각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로 제한됐지만, 전세보증금은 사실상 제한이 없습니다.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식이죠. 또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DSR 규제가 적용돼 어느 정도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지만, 전세보증금은 담보의 시장 가격에 따라 결정됩니다. 쉽게 말해 역전세가 발생하면 곧바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이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불과 2년 전에도 목격됐습니다. 당시 전국 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고, 결국 ‘깡통전세’가 나오기 시작했던 거죠. 주택 가격 역시 동반 하락세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과열 국면으로 전환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부채 구조조정의 실기와 함께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됐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와 함께, 일본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가 불거졌던 시기입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결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구조조정 정책 기조를 철회하고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췄죠. 유동성 확대와 함께 대출금리 인하 기조가 맞물리면서 결국 집값은 다시 폭등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했는데, 이로 인해 전세 가격이 계단식 상승세를 나타내게 됩니다. 이후 3개월여 만에 역전세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죠. 정책 기조의 일관성 훼손이 불러온 역효과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거죠.” 부동산 과열 국면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가요.
“지금까지 나온 정책을 보면 규제를 가장한 경기부양책을 지속해 왔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규제를 내세웠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경기부양책이었다는 거죠. 일면 다행스러운 부분은 최근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문제는 정부 대책의 약발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말 이후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쓸 수 있는 규제 카드는 대부분 내놓았고, 규제 강도도 갈수록 높여 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전세 가격 급등세가 복병으로 등장했습니다. 대출을 조이는 데는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전세가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 양쪽에서 레버리지가 일어나는 형국인 거죠. 세입자 쪽에서는 전세대출 수요가 늘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이 늘어나니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네요.”
전세 시장을 안정화시킬 방안으로는 어떤 대책이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임대차 3법’도 오히려 시장을 망가뜨린 원흉이 되고 있죠. 물론 세입자를 돕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이 대책은 ‘모든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기대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사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약갱신청구를 감안해 상승 폭을 더욱 높이려고 한다는 점이죠. 청구권에 대한 권리 보호를 세입자 스스로 하도록 한 부분 역시 도입 취지와 완전히 상충됩니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 분쟁의 소지를 만들어버리면 청구권 행사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더불어 전세금반환보증보험 역시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가입하도록 해 보험사가 임대인의 디폴트 리스크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보증보험 회사가 수익성을 확보함으로써 부실이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버퍼(완충장치)도 마련할 수 있는 거죠.”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했고, 부동산 가격 역시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많이 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착륙이 가능하느냐가 중요하겠죠.
최근 미국 등 일부 선진국도 부동산 가격 급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나라의 경우 가계부채가 크게 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 가격 상승세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록다운이 풀리고 대출이 늘어나면 집값 상승세가 본격화될 수 있는 거죠.
이럴 경우 테이퍼링에 이은 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됩니다. 결국 시기의 문제인데, 미국의 금리 인상까지 2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게 시장 컨센서스입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여나가려면, 지금이라도 부실한 통계와 허술한 규제부터 손봐야 합니다. 전면적인 수정이 어렵다면 단계적으로 바꿔 나가면 됩니다. 우선적으로 가계부채에 전세보증금을 포함시키고 DSR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 같네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하반기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요.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자산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지금의 과열 흐름이 지속된다면, 정부의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체 총량은 줄어들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자산 가격의 하락 리스크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겠죠.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대폭 앞당겨지는 경우인데, 이렇게 되면 시장 충격은 예상보다 클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재 5%에 근접한 인플레이션이 7~8%까지 올라갈 경우 미국 중앙은행(Fed)으로서는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미국 부동산뿐 아니라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거죠. 특히 미국 중앙은행의 경우 금리 인상 기조가 정해지면 추세적으로 올리는 패턴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시장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개연성이 큽니다.”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주식시장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고 봐야겠네요.
“정부의 대출 규제는 부동산보다 오히려 주식시장에 더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전세보증금 부분을 손대지 않는 이상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반면 정부의 대출 규제로 인해 신용대출이 위축되면 2030세대가 주로 투자해 온 자산, 특히 가상자산 시장의 타격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주식시장은 일부 손바뀜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용대출을 주로 쓰는 2030세대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전세자금 대출 등이 가능한 4050세대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 개연성이 큰 거죠. 결국 최근의 자금 흐름은 전세 시장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과거 어느 때보다 가격 부담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가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은행권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사실 인터넷전문은행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지금은 과도하게 늘어난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시점인 만큼, 정부로서는 토스뱅크 출범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중금리 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죠. 이들 은행 입장에서 중금리 대출 비율을 맞추려면 전체 대출 총량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토스뱅크가 출범하더라도 카카오뱅크처럼 핵심 비즈니스인 대출 중심으로 성장세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네요. 대신 신용카드 등 제휴 비즈니스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여 가는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서영수 이사는…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신한금융투자,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한누리투자증권(현 KB증권)을 거쳐 2006년부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주요 언론사에서 총 일곱 차례 금융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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