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직업은 참 어렵다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부모는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다소 모순적이기도 하다. 아이가 수험생일 때는 어떻게 케어해주어야 하나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고, 아이가 잘 커 보금자리를 떠나면 허전한 마음에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 외로움 때문에 폭식증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폭식증은 폭식 행동과 더불어 억지 구토나 관장약 복용 등 체중 증가를 막으려는 비정상적인 행동이 함께 있는 경우로 몸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폭식은 식욕의 문제인 듯 보이지만 내면에 심리적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필요한 만큼만 배가 고파서 에너지를 섭취한다면 폭식과 비만 같은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몸이 아닌 마음이 고픈 심리적 허기를 위로하고자 마약처럼 음식을 들이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폭식증은 젊은 연령에서 흔하지만 중년 폭식증도 존재한다. 중년 폭식증은 호르몬 변화와 같은 생리적 요인과 함께 빈 둥지 증후군 같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직장을 얻고 결혼해 독립하면 신나게 내 인생을 살겠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막상 자녀가 독립하면 삶의 목적이 사라진 듯한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라는 직업이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녀와 적정거리를 두고 너무 잔소리를 하지 말고 부모들도 자신의 인생을 즐기라는 조언이 정답인 것은 알지만 마음이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효도는 노력해야 하는 도리이지만 부모의 내리사랑은 강력한 본능이라 생각한다. 빈 둥지 증후군은 마치 은퇴할 때 발생하는 정체성의 흔들림처럼 부모라는 본능의 역할이 옅어질 때 일어나는 허무 현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자녀가 꼭 효자는 아닌 것이다. 일부러 힘든 일을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어제 소개팅을 했는데 별로였어요. 어떤 사람이 좋을까요”라는 소소한 고민거리를 이야기해주는 자녀가 더 효자일 수 있다. 부모로서 역할을 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가 다 컸으니 나도 이제 신경 끄자며 빈 둥지의 허전함을 너무 밀쳐버리려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빈 둥지 증후군은 병이 아니다. 내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증거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가 내가 더 사랑하는 관계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녀와의 관계가 어렵고 빈 둥지의 허무도 찾아오는 것이다.

자녀의 연락을 섭섭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내가 자녀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도울 것은 없는지 찾아보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에 좋은 관계도 늘려가고 취미 등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오히려 ‘빈 둥지’라는 스트레스가 내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수험생 자녀를 두었다면
수험생 자녀가 있다면 빈 둥지 증후군, 폭식증이 찾아올 여유도 없지 않을까 싶다. 수험생 자녀를 어떻게 하면 잘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지나치게 걱정을 하다 보면 가족의 불안지수가 동시에 올라가 오히려 모두가 불편해질 수 있다.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으로 수능뿐 아니라 취업 등 여러 목적의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의 마음 고생도 큰 상황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열심히 준비했건만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시험 불안이다.

수능처럼 큰 시험을 앞두었다면 시험 당일에 선수로 뛸 ‘뇌’와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컨디션을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먼저, 조금 더 지식을 담을 욕심에 잠을 뒤로 미루지 말고 뇌가 충분히 휴식하도록 일찍 잘 자야 한다. 그러나 시험 전날 늦은 잠자리는 피해야 한다. 시험 당일에 각성 상태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가족들도 불안감은 상승한다. 부모의 경우에는 더 불안할 수도 있다. 자녀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자녀에게 이야기해도 부모의 마음이 실제로 불안하면 불안이 표정이나 목소리의 떨림을 통해 자녀에게 타고 들어간다. 그래서 부모도 잘 먹고 잘 자고 따뜻한 연결을 통해 함께 불안을 다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