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 50년 만에 리보금리가 폐지된다. 지난 50년 이상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기준금리를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즉 금리 변경에만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2021년 12월부로 앞으로는 ‘금리 변경’보다 ‘금리 교체’가 더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대표적인 국제기준금리로 활용돼 왔던 ‘리보금리(London Inter Bank Offered Rate, LIBOR)’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리 교체란 종전의 기준금리를 새로운 기준금리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리보금리가 교체되는 것은 각종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기별로는 금융위기 이후에 더 심했다.
2008년 미국 상품선물위원회(CFTC) 수사를 시작으로 2009년에는 영국 금융감독원(FSS)과의 수사 공조, 2012년 바클레이스 은행에 첫 벌금 부과, 2015년에는 도이치뱅크에 25억 달러의 벌금이 부과됐다. 끊이지 않는 조작 사태에 당사국인 영국은 2021년까지 리보금리 퇴출을 결정했다.
주요 20개국(G20), Fed, 영국은행을 중심으로 리보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기준금리를 연구해 왔다. Fed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 ‘담보부 조달금리(Secured Overnight Financing Aate, SOFA)’다.
산출 방식이 시장참여자의 실제 거래금액을 감안한 중간 금리라는 점은 리보금리와 비슷하다. 무담보인 리보금리와 달리 SOFA는 담보부 금리인 데다 익일물 확정금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루 평균 거래금액도 최소 8000억 달러가 넘어 5억 달러에 불과한 리보금리와 크게 차이가 난다. 사실상 조작은 불가능해진다.
앞으로 SOFA를 기준금리로 사용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달기준금리를 어느 국가 것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제금융 중심지가 이동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리보금리를 기준금리로 삼아 왔다. 국제금융 중심지가 ‘런던’이라는 의미다.
그 이후 리보금리가 조작 사태에 수시로 휘말림에 따라 3개월 미국 재무성 증권금리로 대체되면서 ‘뉴욕’이 부상해 왔다. 2021년 12월을 기해 리보금리가 퇴출돼 SOFA로 대체될 경우 국제금융 중심지로서 뉴욕의 위상은 더욱 다져질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를 볼 때 월가의 영향력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위기를 느낀 영국도 2021년 폐지 방침을 밝힌 리보금리를 대신해 ‘소니아(SONIA)’를 새로운 기준금리로 검토해 왔다. 하지만 결정 방식이나 무담보라는 점에서 리보금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환매금리(Repurchase Agreement, RP 또는 Repo)’도 검토해 왔으나 다른 금리와의 연계성에 있어서 한계를 갖고 있다.
리보금리를 대신해 SOFA를 대체하는 문제와 별도로 Fed는 종전의 기준금리로 사용해 왔던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 Rate, FFR)를 ‘익일환매금리(Overnight Repurchase Agreement, ON RRP)’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한 후 2015년부터 보조지표로 삼아 왔다. 통화정책상 기준금리로 갖춰야 할 기능이 FFR보다 월등히 뛰어나 2022년부터는 Fed가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새로운 기준금리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SOFA, SONIA, ON FFR 등이 새로운 기준금리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국제금융시장을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새로운 기준금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존재하는 각종 금리 간의 체계(interest system)에 있어서 기준금리가 돼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기준금리가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도 새로운 기준금리가 빠른 시일 안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 규모부터 늘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함께 인프라 면에서도 중층적(中層的)인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 시장참여자의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국제화에도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기준금리가 도입되는 초기에는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뉴 애브노멀 시대에 국제금융시장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한국도 새로운 기준금리가 도입될 것에 대비해 제반 과제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글로벌 법인세가 도입…‘부패 수수께끼’ 풀릴까
2021년 12월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빅 체인지는 일명 구글세로 불리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 15% 부과안이 확정돼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점이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은 국제조세제도 역사상 획기적인 일로 각국 조세행정과 재정수지, 산업과 업종별 증시 명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 실체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논의돼 왔던 두 가지 구글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협의의 개념으로 종이신문 등이 제공한 뉴스 콘텐츠를 활용해 트래킹을 일으킨 포털사이트가 광고 수익이 생길 때 세금 형태로 징수하는 저작료 혹은 사용료를 말한다. 대표적인 포털사이트가 구글이기 때문에 불여진 명칭으로 스페인, 한국 등 지금까지 부과된 구글세는 대부분 이 개념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과 같은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이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얻은 지적재산권 사용료나 이자 등의 명목으로 세율이 낮은 국가의 자회사로 넘기는 조세회피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핵심은 이전가격을 활용한 다국적 IT 기업의 조세회피를 원천봉쇄(BEPS)하는 데 있다. BEPS의 대상이 되는 구글세는 이 개념으로 글로벌 최저 법인세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국적 IT 기업은 국가 간 법인세율 차이를 악용해 세금을 회피해 왔다. 금융위기 이후 더 심해졌다. 고세율 국가에 있는 해외 법인이 거둔 이익을 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비용을 공제받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급 사용료나 수수료의 적정성을 따져 비용공제를 인정해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간단한 예로 다국적 IT 기업의 상징 격인 구글이 세금을 피해 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첫 사전준비 단계로 세금이 없는 조세회피 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곳에서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룩셈부르크’를 설립한다. 구글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모이게 될 장소다.
그다음 소득이전 단계로 구글 본사는 룩셈부르크에 미국을 제외한 해외 법인의 지적재산권 등 모든 소득원천을 넘긴다. 확보된 지적재산권 등을 활용해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해외 법인으로부터 거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구글 본사 소재국인 미국은 세원 잠식을 당하는 대신 자회사가 있는 룩셈부르크는 소득이전이 발생한다. 최종 조세회피 단계에서는 받은 로열티에 대해 법인세를 내는 게 원칙이지만, 구글 룩셈부르크는 조세회피 지역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므로 비거주자(외국인)로 간주돼 이 국가의 세법을 적용받는다. 대부분 조세회피 지역의 법인세율은 아주 낮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아 세금을 적게 내거나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 구글의 본사가 로열티를 받았다면 미국의 세법이 적용돼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가 부과된다.
이자비용 공제제도도 대폭 강화된다. 해외 법인의 자본을 최소화하고 대출이자로 얻은 수익을 빼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자비용을 상각 전 영업이익(EBITA: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의 10∼30% 이내로 제한키로 했다. 조세회피 지역의 자회사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우회투자를 통한 조세회피나 절세 수단도 차단된다. 국가 간 조세협약의 허점을 악용해 이자 배당세나 주식 양도세를 최소화하려는 우회투자 관행에 제동을 걸어 ‘제2의 론스타’ 사례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0년대부터 조세회피 지역에 대한 세금 부과 방안을 고심해 왔다. 2000년대 들어 다국적 IT 기업을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한 조세회피가 급증함에 따라 G20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BEPS 대응 관련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상당한 난항이 예상됐던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이 빨리 진전되는 데에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매년 세계 법인세 수입액의 최대 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초 OECD 회원국만 대상으로 했던 것이 130개국이 넘게 합의했던 것은 빠른 시일 안에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1조 달러를 훨씬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IT 업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조세회피 기업도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내년부터 각국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 15%를 부과할 경우 재정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침체에 다른 세수 감소와 경기 부양 차원의 대규모 재정지출로 대부분 국가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0%가 넘고 일본은 300%에 근접할 정도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인 디지털 콘택트 시대를 맞아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IT와 제조업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T 업종은 ‘수확체증의 법칙’, 제조업은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IT 기업에 대해 글로벌 최저 법인세를 부과되지 않을 경우 일종의 특혜로 두 업종의 속성상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신러다이트 운동 등 기형적인 IT 급성장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해 온 제조업 부활 정책을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 논의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던 것도 이 때문이다. IT 업종의 확산으로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AR) 시대를 맞아 감소될 것으로 예상됐던 뇌물공여가 오히려 증가하는 이른바 ‘부패의 수수께끼’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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