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소설가 김초엽은 신간 <방금 떠나온 세계>에 담긴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면서도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이야기는 김 작가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숙제와도 같다.
김초엽 “사랑과 이해, 복잡한 감정의 결 짚어봤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을 소설에 담으면서, 사랑과 이해라는 복잡한 감정의 결을 한 번씩 짚어봤던 것 같아요.”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 SF 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은 김초엽. 이제 그는 작품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대형 작가’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단편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와 짧은 소설 시리즈 <행성어 서점>를 연달아 선보였다.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과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젊은 작가 김초엽을 만나봤다.

최근 연달아 신간을 내셨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좋은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반겨주시니 좋습니다. 최근 신간이 너무 줄줄이 나와서 조금 걱정했는데, 오히려 즐겁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책을 몇 번 냈다 보니 신간을 출간한 이후의 들뜬 마음은 좀 빨리 사라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차분하게 다음 작품을 준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간 <방금 떠나온 세계>에는 표제작이 따로 없던데요. 책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요.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좀 많았어요. 표제작을 고르려고 하니, 대부분 작품 제목으로는 괜찮지만 표제로 삼기에는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었죠. <방금 떠나온 세계>는 편집자님이 제안해주신 여러 제목 중 하나였는데요. 제가 제일 마음에 들기도 했고,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이 제목이 이번 소설집의 모든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소설 속 모든 인물이 어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떠나가거나 남겨지는 이야기거든요.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제목 같다고 생각해서 이 제목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최근 출간한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요.
저는 제 작품을 다 비슷하게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제일 새로운 시도였다고 느끼는 것은 <방금 떠나온 세계>의 <마리의 춤>입니다. 이 작품은 집필할 당시에도 ‘인물이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작품에는 조금 더 다정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 소설에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는 행동을 저지르는 인물이 등장하거든요. 소설을 쓸 때도 그런 부분이 즐거웠어요. 저의 변화와 성장에도 도움이 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린 소설 <로라>에는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작가의 말에 적힌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 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전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인물을 주로 썼거든요. 그런 인물들에 대해 계속 쓰다 보니까, 결국 모든 ‘이해’는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그러고 나니, ‘그럼 실패한 이해는 의미가 없는 걸까’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내가 타자를 이해할 수 없다면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소설을 쓰며 이 부분에 대해 조금씩 다른 답들을 내보고 있어요. 소설 <로라>에서는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또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하지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썼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과정을 소설에 담으면서, 사랑과 이해라는 복잡한 감정의 결을 한 번씩 짚어봤던 것 같아요.

데뷔 이후 굉장히 다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작 노하우가 따로 있나요.
저만의 다작 노하우라고 한다면, 마감을 많이 잡으면 어떻게든 되는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은 제가 일부러 작품을 많이 쓰려고 한 건 아니에요. 처음에 페이스 조절을 못한 채로 작품 의뢰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많이 쓰게 된 측면도 있어요. 아무래도 신인 때는 불안한 마음이 있다 보니,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물론 많은 작품을 쓰면서 저도 배운 것들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천천히 쓰는 쪽으로 조절을 해보려고 해요.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단 쉽고 재밌게 읽히는 글을 쓰는 데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이야기가 마치 눈앞에 그려지듯 떠오르도록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저는 항상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성이나 문학성이 높은 방향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술술 잘 읽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다 읽고 덮었을 때 독자들이 질문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소설에 담긴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쾌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작품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저는 아이디어를 굉장히 많이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평소에 과학 논픽션 책을 제일 많이 읽고요.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처럼 바빠서 콘텐츠를 잘 못 보는 시기에는 아이디어를 잘 건지지 못해요. 대신 외부 자료나 콘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기는 시기에는 시간을 들여서 굉장히 많이 봅니다. 제가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재를 많이 메모해 놓고요. 실제로 글쓰기 작업을 할 때는 하나의 아이디어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거든요. 보통 여러 가지를 많이 조합해봐요. 이렇게 하면 기존의 이야기 레퍼런스를 참고하면서도 고유성이 가미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스타일도 궁금한데요.
집에서 작업실이 굉장히 가깝거든요. 보통은 이른 오후쯤 출근해서 자정이나 새벽까지 작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놓습니다. 아무래도 마감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집필 루틴이 다른 것 같아요. 급한 마감이 없을 때는 쓰기 편한 에세이를 가볍게 써보기도 하고, 독서도 자유롭게 하는 편이에요. 반면 완전히 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는 굳이 휴식과 글쓰기를 구분하지 않아요. 거의 하루 종일 글에 대해 생각하거든요. 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와 그 외의 시기가 조금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야기 소재가 고갈되는 경험도 있었나요.
쓸 때마다 고갈됩니다.(웃음) 모든 작품을 쓸 때마다 ‘이번에는 뭘 쓰지’ 하며 엄청 고민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아이디어가 넘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기존에 메모했던 것들을 늘어놓고 ‘여기서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상 앞에 며칠씩 앉아 있어요. 그러면 뭐라도 나오더라고요.
김초엽 “사랑과 이해, 복잡한 감정의 결 짚어봤죠”
작가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전업작가가 된 지금은 글쓰기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글쓰기가 취미일 때는 저에게 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직업이 되고 보니 오히려 저와 글을 분리하기 어려워졌거든요. 앞으로 글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가 작가로서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뽑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 대중과 문단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지난해까지는 부담이 좀 있었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굉장히 주목받으면서, 그것보다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그 이후에 제가 소설을 많이 쓰기도 했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에 쓴 작품들이 제가 느끼기에는 훨씬 좋더라고요.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는 성장한 게 느껴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에는 ‘제19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에서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하셨어요. 어떤 상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한국YWCA와 한국씨티은행이 주최하는 시상식인데요. 매년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 2~3명의 여성에게 상을 수여한다고 해요. 제 소설이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해서 이번에 상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보통 소설가가 받을 수 있는 상으로는 문학상을 많이 생각하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생각치 못했던 분야의 상을 받게 돼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문학상은 받으면 좋고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작가들에게 묘한 압박이 될 수도 있거든요. ‘이만큼 오래 쓰면 이런 상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요. 오히려 (문학계) 바깥에서 상을 주시니까 아주 큰 응원이 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의 지지가 대단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항상 궁금해하는 부분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20~30대 여성 독자들과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20~30대 여성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비슷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 작품의 베이스에도 그런 요소가 들어가게 되고요. 또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문제의식 중 하나가 미디어와 콘텐츠에 여성 인물이 너무 제한적으로만 묘사된다는 점이잖아요. 저 또한 그런 아쉬움을 비슷하게 느꼈던 독자였기 때문에, 소설을 쓸 때 그런 부분을 많이 보완해서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한때 웹소설을 쓰는 것도 고려했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처음 전업작가를 시작할 때는 SF 장르가 그렇게 많이 읽히는 장르가 아니었어요. 사실 단행본 시장이 어렵잖아요. 작가로 살아남기도 어렵고, 이름을 알린다고 해도 직업으로 삼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요. 당시 인기 많은 웹소설들을 읽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만약 단행본을 내기 어렵다면 웹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작가 생활이) 좀 빨리 풀려서 정말 생각만 하다 끝난 거였죠.

SF 외에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은 없으신가요.
현재로서는 SF가 저에게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SF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가 된다면 그때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 당장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게 다 SF 장르인 상황이죠.

현재 계획 중인 작품이 있나요.
우선 12월에 책이 하나 더 나옵니다. 여행에 대한 중편소설인데요. 요즘 여행을 못 가다 보니까 다들 여행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잖아요. 사실 저는 ‘여행의 윤리’에 더 주목했어요. 여행을 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내가 때로는 사회의 불행한 측면을 관광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들을 하다 보니 다크 투어리즘(역사적으로 비극적인 곳이나 재난·재해 장소를 둘러보는 것)과 관련된 소설을 하나 쓰게 됐습니다. 이 작품 출간이 마무리되면 장기적으로 차기작을 준비할 것 같고요. 내년에는 에세이도 연재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책을 읽을 때 원래 알고 있었던 SF와 다르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SF 장르에는 굉장히 다양한 작품이 아주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거든요. 아직 그 작품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SF 영역이 정말 넓기 때문에 어떤 취향을 가지셨든 뭔가 하나는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해요. 혹시 제 작품을 읽고 SF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더 다양한 SF 작품을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정초원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