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내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삶의 질뿐만 아니라 사후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이 평생 모아 온 소중한 재산을 자식이 아닌 사회로 환원하려는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 같은 의지가 사후에 오롯이 지켜지기 위해서 유언장 문화는 어떻게 정립돼야 할까.
[special]➀슬기로운 유언, 기부로 완성하다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고령사회’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6.5%인 853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고령인구 비중은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6년에는 30.5%, 2060년에는 43.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처럼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상속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에 잘 대비하자’는 말이 아직도 어쩐지 어색하고,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속의 첫 단추는 유언이다. 문제는 제대로 유언장을 남기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유언장은 민법에 의해 상세한 규정을 정하고 있다. 법 규정을 벗어난 유언은 ‘일기’나 ‘가훈’에 불과하다. 유언은 법에 정해진 다섯 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법이 있으며, 자필증서의 경우 유언장의 작성 연·월·일과 유언자의 주소 또는 생활 근거지, 유언자의 이름, 도장 또는 지장이 꼭 포함돼야 한다. 주소는 유언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일 필요는 없으며 생활 근거지도 가능하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는데 녹음을 한 날짜, 유언자의 이름, 증인의 녹음이 필요하다. 공정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며 유언자가 직접 공증인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해외 선진국, 부호들 유산나눔 선도
유언서의 존재는 명확히 해 두되 유언의 내용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경우 유언 내용을 작성해 봉투에 밀봉하는 방식으로 비밀증서를 남길 수 있다. 급박한 사정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유언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예외적으로 구수증서를 남길 수 있다. 단, 구수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고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 신청을 해야 한다.

그만큼 제대로 유언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준비가 필수다. 특히, 최근 유언을 통해 단순히 가족들에게 상속하는 것 외에도 상속자산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유산기부를 위한 유언장 문화도 주목받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전체 기부금 중 유산기부 비중이 0.5%에 불과하다. 반면 영국은 33%, 미국은 9%에 달한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자산을 나누겠다는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정부의 지원이 어우러진 값진 성과다.

영국도 20여 년 전까지는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변화를 주도한 건 사회 리더들이었다. 금융 컨설팅 회사 핀스버리의 롤런드 러드 창업자는 2011년부터 재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감면해주는 ‘레거시10(Legacy10)’ 캠페인을 전개했다. 억만장자 기업인들이 동참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 등 유력 정치인들도 손을 내밀었다.

국내 최초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유원식 회장은 “해외의 경우 영국에서 기부자 조언 기금·유증·기부연금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일례로 영국 국민 대부분이 유언장을 작성하고 5년 주기로 유언장을 재작성하는데 해당 시점에 맞춰 많은 NGO 단체들이 유산기부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그러면서 “현재 국내 유산기부 인식과 유언장 작성 비율 자체가 낮다. 이것은 NGO와 정부의 역할이겠지만 유산기부에 대해 많이 알려야 될 것 같다”며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인구 고령화 현상을 보면 노후 문제와 함께 사후 본인의 재산이 원하지 않는 형태로 쓰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유언장 작성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기아대책 같은 구호단체들이 투명하게 공익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NGO와 정부의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은 더딘 걸음이긴 하지만 NGO 단체들을 통해 유산기부를 하는 사례가 속속 늘어나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유산기부 프로그램인 ‘헤리티지클럽’이다. 헤리티지클럽은 기아대책의 유산 기부자 모임으로 사망 시 현금, 부동산, 주식, 보험, 신탁 등의 형태로 5000만 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한 기아대책 개인 후원자로 구성돼 있다.
[special]➀슬기로운 유언, 기부로 완성하다
유언장 작성 통해 사후나눔 실천
진행 절차는 우선, 담당자 상담 후 전문자문위원 상담이 이어지면 기부서약서 작성 및 공증을 하고, 유산기부 약정식과 헤리티지클럽 등록을 통해 유업을 진행한다. 기아대책 유산기부를 약정하면 담당자 상담을 통해 후원하고 싶은 분야(국내·해외·북한 사업)를 먼저 고려해 후원처가 정해진다. 재산 일부 후원도 가능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의 컨설팅 지원이 따른다. 자문협력사도 김앤장법률사무소, 하나은행, NFP, 가립회계법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진행 절차는 우선, 담당자 상담 후 전문자문위원 상담이 이어지면 기부서약서 작성 및 공증을 하고, 유산기부 약정식과 헤리티지클럽 등록을 통해 유업을 진행한다. 기아대책 유산기부를 약정하면 담당자 상담을 통해 후원하고 싶은 분야(국내·해외·북한 사업)를 먼저 고려해 후원처가 정해진다. 재산 일부 후원도 가능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의 컨설팅 지원이 따른다. 자문협력사도 김앤장법률사무소, 하나은행, NFP, 가립회계법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아대책은 또한 이 같은 유산나눔을 장려하고, 노인의 생애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생애가치 설계 및 심리‧정서 지원사업 ‘고귀한 삶을 나누다’도 운영 중이다.

이는 노인의 생애 가치를 설계해서 스스로의 강점을 찾고, 사회적 역할을 발견하도록 해 노인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특히, 노년기에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해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해당 사업을 통해 가족 및 사회 공동체가 노인 세대를 이해하도록 도와 세대 간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도록 기대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누군가에게 남겨질 당신의 이야기’라는 주제 아래 조별 활동을 통해 자신의 피규어를 만들거나 인생 사진 등을 나누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유언장 작성을 통해 ‘웰다잉’의 가치를 각자 설계한다.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 80명으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2015년부터 헤리티지 클럽을 가입한 주선용 씨는 가입 계기에 대해 “유산기부 1호 설순희 권사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움이 생겼다”며 “하지만 경제적 여유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저축해놓은 돈이 없어 고민하던 찰라,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젊었을 때 가입한 생명보험은 사후 지급된다는 점을 떠올려 가입 보험의 수혜자를 기아대책으로 설정하면서 기아대책 유산기부에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special]➀슬기로운 유언, 기부로 완성하다
[2015년부터 헤리티지 클럽을 가입한 주선용 씨. 사진제공=기아대책]
주 씨는 그러면서 “헤리티지클럽 가입은 ‘가문의 영광’이다. 이번을 계기로 훌륭한 어머니, 훌륭한 할머니가 됐다”며 “아들도 주변인에게 제 삶을 자랑하며 손자들도 할머니 삶을 본받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고귀한 삶을 나누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현재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오랜 기간 병원 원목실에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으로 그 사람의 생을 단편적으로나마 평가할 수 있었죠. 동시에 ‘나는 어떻게 죽을까’, ‘내 죽음 이후 자녀들과 이웃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내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며 무엇을 남기고 죽을까’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 생각을 다듬어 정리하고 기록한 것이 유언장이었죠. 유언장을 쓴다는 것은 자기성찰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었고 유산나눔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는 날 세상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뿌듯하고 행복해요. 기부금은 제 사후에 전해지겠지만 저는 이미 그 기쁨을 가불해서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유언은 엄격한 요건과 방식을 지켜야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유언장을 작성함에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유언자의 유지가 실제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언장 대신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신탁’이다. 한국에서는 2012년 7월 ‘신탁법’이 개정돼 신탁도 유언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그중 유언대용신탁은 일회적·종국적 자산 승계 수단인 상속과 유증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로서 상속 분쟁을 예방하고, 평생 일군 재산의 효율적인 관리 및 위탁자의 뜻에 따른 자산 승계를 가능하게 한다. 유산기부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탁을 활용하는 것도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가업승계신탁, 유언대용신탁 등 상속증여신탁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캠페인을 기아대책과 협업하고 있다. 고령자들의 자서전 형식의 삶을 돌아보기, 유언장 직접 작성해보기 등 하나은행 자체적으로도 유언장 보관 서비스를 준비해 올해 1분기(4월 예정)에는 그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