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미국의 인플레이션 쇼크 이후 국내 외환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달러화에 대한 쏠림현상은 올해 들어서는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때 ‘0.7’ 이상으로 높아졌던 원화와 위안화 간 상관계수는 ‘0.5’ 이하로 낮아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직후 잠시 높아졌던 원화와 엔화 간 상관계수도 ‘0.1’ 이하로 제자리를 찾고 있다.
반면에 달러 가치평가의 가장 보편적인 잣대로 활용되고 있는 달러인덱스와 원화 간 상관계수는 ‘0.9’ 이상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5월 중순 ‘89’ 수준까지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는 올해 3월 들어서는 ‘100’에 근접했다. 같은 기간 중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1230원대로 달러인덱스와 비슷한 상승률을 보였다.
4월 들어 원·달러 환율이 지금 수준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달러인덱스 구성에서 약 58%를 차지하고 있는 유로화 가치가 약세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한 이후 유럽통합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월에 있을 프랑스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할 확률이 낮게 나온다.
메르켈 총리에 이어 마크롱 대통령까지 물러날 경우 유럽연합(EU)의 앞날과 관련해 거론되는 네 가지 시나리오, 즉 △현 체제 유지 △붕괴 △강화 △질서 회복 가운데 어디로 갈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노출된 문제에서 회원국의 정치 명분과 경제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조셉 바이너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 창출 효과가 무역 전환 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통합에 가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 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침공 사태에 따른 후폭풍도 본격적으로 우려된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국가보다 높은 유럽 경제는 슬로플레이션이 불가피해 보인다. 3월 정례회의에서 내놓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정 전망치를 보면 올해 유럽 성장률은 3개월 전의 4.2%에서 3.7%로 낮추는 대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3.2%에서 5.1%로 대폭 올렸다. 러시아의 침공이 길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될 수 있는 하향 조정 폭이다.
달러 자체적으로는 ‘약세’보다 ‘강세’가 될 요인이 많다. 펀더멘털 면에서 머큐리(mecury) 요인은 4월 말에 발표될 올해 1분기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은 아니다. 정책적인 면에서 마스(mars) 요인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3월 회의를 기점으로 금리 인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미국, 언제 양적긴축 추진할까
Fed의 통화정책과 관련해 원·달러 환율을 예측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언제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QT는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국면에 추진됐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회수하는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 인상→QT)의 마지막 단계다.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은 2013년부터 테이퍼링을 추진해 2014년 10월에 종료하고 1년 2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에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 후 2년 가깝게 지난 2017년에 가서야 QT가 추진됐다.
이번에 출구전략 추진은 지난해 9월 Fed 회의 직전에 테이퍼링을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테이퍼링 추진을 놓고 Fed 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11월 회의에서는 금리 인상 문제가 언급됐고, 그 후 한 달도 안 돼 열렸던 12월 회의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QT가 검토됐다.
금융위기와 달리 출구전략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거론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추진됐던 무제한 통화공급 정책의 숙취(hangover) 현상인 인플레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웨버 매사추세츠주립대 교수는 “코로나발 인플레는 50년 전에 사라졌던 ‘가격 상한제’를 다시 도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QT 추진 시기에 대해서는 갈수록 앞당기는 추세다. 매월 테이퍼링 규모를 300억 달러로 확대했던 지난해 12월 Fed 회의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올해 안에 QT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QT 추진이 확인된 이후 올해 첫 회의에서는 테이퍼링 조기 종료와 함께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3월 Fed 회의 때부터 추진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QT 추진 시기가 결정되면 그 규모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는 더 중요한 과제다. QT 규모는 Fed 보유 자산의 적정 규모에 달려 있다. 2017년 QT 추진 사례를 보면 금융위기 이후 Fed의 보유 자산이 1조 달러에서 4조5000억 달러로 늘었다. 보유 자산의 적정 규모를 놓고 투자은행(IB)과 논쟁 속에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의 주장대로 3조8000억 달러로 축소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Fed의 보유 자산은 4조 달러에서 9조 달러로 급증했다. Fed가 보유 자산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가져간다면 5조 달러를 줄여야 한다. 시중 유동성 환수 효과가 금리 인상보다 2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하면 벌써부터 월가에서는 ‘5조 달러 QT 재앙에 증시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QT 추진으로 국채금리가 급등할 경우 ‘빚의 복수’가 본격화되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연방부채상환 임시 유예조치로 연명했던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도 3500억 달러가 넘어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QT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경기는 ‘부(富)의 효과’로 지탱하고 있어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받아 왔다. 올해 출구전략 추진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추진될 경우 주가 하락 등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구조적 장기침체론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따른 숙취 현상을 제거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출구전략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제다.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경기를 망쳤던 1930년대 Fed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와 2006년 전후 일본은행(BOJ)의 ‘후쿠이 불명예(Fukui’ disgrace)’가 대표적인 사례다. 달러 변동성이 심해질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한번 경험한 우리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취약국을 중심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달러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스위프트) 배제, 국가신용등급 추락,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 탈락 등 모든 국제금융시장 접근이 막히면서 러시아는 1998년에 이어 모라토리움 선언 직전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최고통수권자가 중앙은행까지 장악해 포퓰리즘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해 왔던 터키의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서든 스톱, 즉 급작스런 외자 이탈에도 기준금리를 500bp(bp=100분의 1%) 내렸던 후폭풍으로 물가가 살인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추가적인 외자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전형적인 금융과 실물 간 악순환 고리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참여해 심각한 부채에 시달려 왔던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로 평가해보면 이미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 내부에서도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이 거세가 불고 있다.
현재 학계를 중심으로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어느 한 교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권유대로 9000억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수준의 2배 정도를 더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책당국에서는 외화보유액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정국의 외화보유액은 무한정 많을 필요가 없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외화를 더 유용하게 쓸 곳이 많아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 외환보유액도 절대적인 기준이 못 되는 것은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제2선 자금 확보와 외화 보유 구성에서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용외화를 많이 가져가면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외환보유액를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 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1990년대 이전처럼 경상거래가 많을 때는 3개월 수입분을 가져도 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의 개념과 그 후 자본거래가 많아지면서 기도티·그린스펀의 광의 개념, 그리고 투기적인 거래가 많아지면서 캡티윤의 최광위 개념까지 확장돼 왔다. 세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외환보유액은 직접 갖고 있는 제1선 외화만 따지더라도 문제가 없다. 한국, 외환 리스크는 없나
외환위기를 한번 경험한 우리로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에 IMF가 새롭게 제시한 적정 외환보유액 개념이다. 금융위기 방지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계기로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잔액의 15%를 합한 규모의 100∼150%를 쌓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개념으로 보면 우리는 2020년부터 100% 밑으로 떨어져 외화 보유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침공사태를 계기로 최근 우리 내부에서 외환보유액이 많다 적다 논쟁에 앞서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러시아의 교훈’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가 될 정도로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 놓았더라도 최고통수권자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갈라파고스 함정(외딴섬)에 빠지면 모라토리움에 몰리기 때문이다.
4월부터 시작되는 3대 평가사의 정례심사를 앞두고 ‘외환보유액이 많다 적다’보다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 달라는 서방 측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 4월이면 새로운 정부도 탄생한다.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글로벌 흐름에 맞춰 왜곡됐던 대외 경제정책상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다른 신흥국이면 몰라도 우리의 경우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에 편승해 급부상하고 있는 ‘제2의 외환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 즉 잘못된 정보에 해당한다. 나라 안팎으로 극도로 혼란할 때 신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이제는 모두가 ‘프로 보노 퍼블릭코(공공선) 정신’을 발휘해 합심해서 대처해 나가야 할 때다.
기업과 글로벌 주식 투자자들은 리스크 관리가 생명이다. 테일 리스크가 잦은 초불확실성 시대에 발생 확률이 최소 50% 이상 되는 리스크는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Fed의 QT 등이 두렵지 않다’고 결론부터 내리고 원·달러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리스크를 관리하다간 금융위기 직후처럼 ‘제2의 키코’ 사태를 저지를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 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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