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을 조이는 긴축시계가 빨라지고, 부의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동성으로 자산을 불린 부자들을 고객으로 맞은 금융권들은 차별화된 자산괸리(WM) 서비스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런 가운데 금융서비스와 비금융서비스를 아우르는 토털 개념의 패밀리오피스 서비스가 최근 금융권에서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실제 가문 승계를 위한 상속·증여 수요를 넘어 금융과 비금융 자산관리 전반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어 금융 회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사 패밀리오피스, 토털 자산관리·개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
“패밀리오피스는 홀세일과 리테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비즈니스다.”
금융권의 한 WM본부 임원은 최근 격전지가 된 패밀리오피스에 대해 한마디로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자산가들의 은퇴로 상속·증여 서비스에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을 넘나드는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로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변동성이 커진 금융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자산관리 전략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상속·증여에 대한 복잡한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원화(two track)가 아닌 원스톱 자산관리 서비스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각 사의 WM본부에 서비스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점점 확대하려는 금융권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하는 금융사들은 자금을 운용하고 상속·증여와 가업승계까지 담당하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제공을 기반으로 조직 구성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가문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 신한은행이 올해 2월에 100억 원 이상 초고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신한 PMW 패밀리오피스 센터’를 개점했고, 하나은행이 지난 5월 자산 300억 원 이상 고객을 위한 ‘하나 패밀리오피스&트러스트’ 서비스를 내놨다.
신한은행은 WM 컨설팅센터 내에 투자 컨설팅과 가업승계·지배구조, 기업금융(IB), 부동산, 세무, 컨시어지 등 ‘패밀리오피스 전문가팀’을 구성해 적극적인 서비스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신한 PMW‘은 론칭한 지 3개월 만에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받는 고객 자산 규모를 3조7000억 원까지 늘렸다. 본부에서 직접 고객 자산의 자산 배분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ICC(Investment Counseling & Consulting) 자문 서비스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운용으로 고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신흥 부유층의 성장으로 지분 투자,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의 IB 관련 자문 의뢰가 늘고 있으며, 복잡한 고객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법무법인과 가업승계 회계전문가, 세무전문가가 팀 기반으로 일회성 상담이 아닌 지속적인 전문가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하나 패밀리오피스&트러스트’ 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했다. 투자, 리빙트러스트, 세무, 법률, 부동산, 가업승계 등 본부 소속의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가문 단위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초고액자산가의 직계가족 총 자산이 300억 원 이상이거나 하나은행 예치 자산 100억 원 대상 고객들이 이용 가능하다.
금융회사들은 고객들의 부를 증대시키는 자산관리와 자산 증대는 물론 상속·증여, 가업승계 등 토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가 같다. 비금융서비스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패밀리오피스 전담 컨시어지를 운영해 골프, 레스토랑 예약부터 투자 세미나 참여, 기부와 재단 설립 및 지역사회 활동 지원, 사업 승계를 위한 업무, 멘토 클럽 운영을 통한 자녀 교육, 가족 모임과 여행 준비까지 개인과 가족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1대1 고객 초밀착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증권사들, 신영증권 롤모델 삼아…패밀리오피스 사업 박차
신영증권은 금융권에서도 패밀리오피스를 오랜 기간 운영해 성공한 케이스다. 지난 2012년에 ‘APEX 패밀리오피스’ 조직을 신설한 이후 지난 10년간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패밀리오피스 명가로 주목 받는다.
신영 APEX 패밀리오피스의 특징은 자산가 가문의 고유한 역사와 철학을 반영한 패밀리 레거시형(가문이 세대를 거쳐 유지하는 가치 철학과 자산관리 원칙) 솔루션이 제공된다. 이를 위해 현재 영위하는 가업과 연결된 가족 구성원의 상황, 다양한 패밀리 자산관리 목표를 제시한다.
또한 초고객 개인 자산가 고객군을 대상으로 기관투자가 수준의 투자와 리스크 관리도 한다. 이 같은 서비스를 시행하기 위해 조직은 Advisory 그룹(자문그룹)과 Expert 그룹(전문가그룹)으로 나뉘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 기반으로 고객 관리를 수행하고 있고, 서울과 부산 2곳에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 같은 서비스 방식은 다른 증권사들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해 제공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도 ‘세상유일(only)과 독창적(original)’을 표방한 금융집사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기관투자가급의 공동 투자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자녀 세대에게 원활하게 자산을 이전해주고, 가문 자산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관투자가급 상품 제공으로 서비스 차별화
삼성증권의 SNI(Samsung & Investment)는 1000억 원대 규모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증권사 최초의 멀티 패밀리오피스를 론칭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입 가문 60개, 자산 규모는 20조 원을 훌쩍 넘어서며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패밀리오피스 고객에 한해 기관투자가에게 제공되는 전용 상품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예컨대 국민연금이나 군인공제회 같은 기관들이 취급하는 상품을 개인 자산 고객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프라이빗에쿼티(PE) 시장도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펀드 형태로 제공하는 한편,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의 자산을 모아 함께 투자하는 ‘클럽딜’이나 자기자본 투자와 공동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패밀리오피스를 출범, 단기간에 많은 가문들이 가입하면서 업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해 말 처음 론칭하자마자 27개 가문이 가입했다. 예치 자산 100억 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 고객에게만 특화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도 주목을 받았다.
기관투자가에게 주로 제공됐던 IB 딜이나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상품도 개인 고객에게 제공한다. 이외에 프리미어 본부 내에선 고액자산가 고객을 위해 세무사, 부동산전문가,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프리미어 블루(Premier Blue) 컨설팅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택스 파트너(Tax Partner) 서비스를 시행함으로써 초고액자산가 고객 대상 전담 세무사를 배치해 세무상담 이력 관리나 세제 정책 변화에 빠른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자산 승계 서비스뿐 아니라 재단 설립, 해외 부동산 투자 및 해외 자산 상속·증여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무형적 자산까지 관리…문화예술·사회공헌 등도 조력
삼성생명의 패밀리오피스는 국내 금융기관에서 재정적 자산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가문의 금융 자산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 자산까지 포괄하는 헤리티지 플래닝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자산 설계 및 관리 등의 재정적 자산 △자녀 교육, 후계자 양성 등의 인적 자산 △문화예술, 사회공헌 등을 위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적 자산의 관리를 돕는 전용 프로그램도 운영함으로써 고객 가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법인 대표를 위한 ‘WM최고경영자 조찬세미나(2030 Business Live On)’와 ‘CEO아카데미’, 고객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풍부한 문화 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아트(Art) 프로그램, 고객의 자녀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글로벌 인사이트 프로그램(Global Insight Program, GIP), 주니어CEO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강점을 활용해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에게 가업승계 컨설팅 제공한다. 기업금융과 연계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1월 씨티은행 출신 프라이빗뱅커(PB) 13명을 영입해 화제가 됐던 TCE시그처센터는 우리은행 초고액자산가들을 위한 세 번째 특화점포다. 기업금융 및 부동산, 세무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고객들에게 수준 높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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