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발언 시간 동안 1970년대 사례를 언급하며 폴 볼커 전 Fed 의장과 관련된 이야기에 상당 부분 시간을 할애했는데, Fed가 1970년대에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해석된다.
파월 의장의 연설은 8분에 불과했지만 정책 전환(pivot)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일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주식 시장은 반락했고 달러 지수는 상승세를 재개했다. 긴축의 굴레는 끝이 보이지 않고 시장은 지쳐 가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성장주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Fed 강력 긴축…시장 변동성 확대
Fed의 강력한 긴축으로 인해 미국 주택 시장 및 제조업 지표들이 둔화되고 있지만 미국 경제의 극심한 침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여전히 미국의 견조한 고용 시장은 소비를 지지하고 있고 지난 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이끈 재고 및 건설투자 부문의 악영향이 줄어들면서 3분기에는 2%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성장률 회복만으로 주식 시장의 상승세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먼저 9월부터 Fed는 양적긴축(QT)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시장 변동성을 재차 확대시킬 전망이다.
Fed는 지난 6월부터 양적긴축을 시작했으나 아직 유의미한 유동성 회수가 일어나지 않았다. Fed가 보유한 물가연동국채의 원금 재조정이 나타났기 때문인데, Fed의 예고대로 9월부터 양적긴축 규모가 2배로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 유동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상황도 좋지 않다. 러시아발 천연가스 공급 차단이 빈번히 발생하며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극심한 폭염과 가뭄까지 더해지면서 유럽의 운송 및 물류 차질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유럽 전반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높이며 유로화의 급격한 약세를 야기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산당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하고 있지 않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및 인프라 투자와 관련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의 재정 지출은 기업들의 이익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 침체에 대비한 투자 포트폴리오로 대응해야
이러한 배경을 감안할 때 글로벌 증시는 긴축의 굴레 속에서 큰 폭의 박스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글로벌 증시가 기술적 저항선을 돌파할 동력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스권에 갇힌 시장 흐름이 예상되는 만큼 주식에서는 대형 기술주 중심의 접근보다 업종 및 스타일 등에 대한 전략 다변화가 중요하다. 베어마켓(하락장) 랠리 과정에서 반등 속도가 빨랐던 고밸류 성장주들은 유동성이 축소되는 환경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주식 중에서도 필수소비재, 유틸리티, 헬스케어 등 경기방어적 성격이 큰 섹터의 비중을 동시에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 자산으로 인프라 자산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산 배분 관점에서 경기 침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Fed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수록 경기 침체 리스크도 동시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장기채 금리의 상승을 제한하거나 하락을 야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잔존 만기가 10년 이상인 미 국채 및 달러표시 투자등급 회사채(특히 금융채)를 활용해 경기 침체에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Fed가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중장기채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결국 장단기 금리 차 역전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 기조를 전환할 때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정책 변화를 더 빠르게 반영하게 된다.
다시 말해, 경기 침체 리스크가 높아지는 국면에서 중장기채를 통한 수익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양질의 미국 채권은 달러를 확보하는 동시에 자산 다각화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파월 의장은 잭슨홀에서 “오늘 제 발언은 짧고, 주제는 좁으며, 메시지는 더 직접적일 것(Today, my remark will be shorter, my focus narrower, and my message more direct)”이라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물가 안정을 Fed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고 이와 관련해서 어떤 타협이나 오해도 원치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이 냉혹하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Fed의 긴축 기조는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떠나지 않고 지금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리스크를 잘 관리한다면, 이번 변동성 구간을 오히려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밑거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장ㅣ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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