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해시태그 '#힘들었지만 대견해'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친한 선배가 오랜만에 재래시장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자고 해서 한 음식점에 방문했다. 음식점 대기가 길어 놀랐고, 평균 연령을 확실히 올리는 것이 우리인 것을 알고 또 놀랐다. 바로 다음 주 그 음식점에 맛집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유명 가수가 방문한 후 영상을 올렸다고 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추억을 되살리려고 간 것인데 동시에 ‘인싸’가 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다. 젊은 세대에게 복고 문화는 ‘향수’가 아닌 ‘새로운 문화 경험’이라는 데 일리가 있다.

디지털 음원으로 주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에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던 ‘레코드판’이 다시 뜨고 있다. 레코드판 세대가 향수를 못 잊어서 다시 찾아서인가 싶었는데,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을 보면 그 반격을 이끄는 세대는 젊은 층이다. 실제로 레코드판 전문점에 가보면 젊은 층이 주 고객이다. 연인들이 레코드플레이어 앞에서 헤드폰을 끼고 다정히 음악 감상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맛’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식과 관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해보면, 노포(老鋪) 마니아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최소 20년에서 심지어는 90년이 된 노포, 즉 오래된 가게들만 찾아다니며 정보를 공유한다. 자기 나이보다 더 오래된 가게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상당수다. 5년 전만 해도 노포에서 회식하자고 하면 싫어하는 젊은 후배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핫 플레이스가 돼 버렸다. 원래 그곳이 단골이었던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 자리가 없다며 불평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첨단 음식점과는 반대로 과거의 향수가 담긴 노포에서 젊은 층이 새로운 맛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효과적인 마음 관리를 위한 타깃은 ‘생각’일까, ‘감정’일까
얼마 후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광장시장에 루프톱 뷰(view) 맛집이 있다고 해서 신기한 마음에 찾아갔다. 재래시장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먹은 경험은 있지만 루프톱, 말 그대로 옥상에서 재래시장을 바라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느낌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모던한 루프톱 와인바에서 쳐다보는 뷰가 멋있기도 했지만 예상과 너무 달랐기 때 문이다. 새로운 것과 빈티지가 칵테일처럼 묘하게 블렌딩된 그야말로 ‘뉴트로 뷰’였다. 묘한 광경을 보니,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선입견이라는 고정된 프레임이 내 마음과 행동을 답답하게 제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마음 관리의 효과적 타깃은 생각일까요, 아니면 감정일까요”라고 질문하면 다양한 답변이 나오기도 하지만 고민스러운 표정 속에서 고요한 경우도 있다.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마음 관리를 위한 타깃은 생각과 감정보다는 ‘기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감정이 효과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면 제일 좋다. 감정은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고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마음 관리 측면에서 생각은 ‘프레임’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면 마음의 프레임도 부정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물론 반대로 프레임이 부정적이면 마음의 부정적인 감정이 증가한다. 이상적인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 비해 내가 마인드 컨트롤, 즉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해 감정과 프레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전의식과 에너지가 넘치는 상황이라면 하지 말라고 해도 변화를 향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에너지 넘치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모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상황이다. 이렇게 요즘처럼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이 가득한 상황에선 마음을 직접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억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내 인생은 매일 힘들면서도 지루해’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치면 내 기억에 그 감정이 해시태그 돼 입력된다. 그런 기억이 1년이 모이면 그 해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내 기억에 해시태그 '#힘들었지만 대견해'
기억에 삶의 가치를 해시태그, 메타뷰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고 마치 관객의 위치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같은 현상을 메타뷰(meta-view)라 부른다. 초월이란 뜻의 ‘메타’란 접두사가 여러 영역에서 인기다. 최고인 예가 ‘메타버스(meta+universe)’일 것이다. 처음 인터넷이 나왔을 때 정의 내리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메타버스도 단순히 가상현실(VR) 기술이라는 정의를 넘어서 버렸고, 기술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진화 중인 영역이다.

메타뷰와 메타버스를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매트릭스>다. 현재의 디지털 환경은 현실과 가상의 구별이 어느 정도 명확하다면, 메타버스 디지털 환경이란 것은 우리의 감각 기능까지 정보화돼 버린다. 그러다 디지털 기계가 거꾸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영화 <매트릭스>의 스토리처럼 컴퓨터가 만든 가상 세계를 인간이 현실로 여기며 사는 세상이 찾아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아찔한 공상에 이른다.

이 영화엔 자신의 삶이 가상임을 일깨워주는 알약이 등장한다. 한 발짝 물러서 내 삶을 바라보게 하는 메타뷰 기능이 탑재된 약인 셈이다. 디지털의 가상은 아니나 우리는 완벽, 성공, 두려움, 불안 같은 보이지 않는 프레임과 환상 속에 나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쉼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 쉼에 있어 메타뷰가 효과적이다. 내 주변에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다. 루프톱에서 내려다본 광장시장의 야경도 메타뷰의 소스였던 셈이다. 우리 마음은 분리와 투영의 기능이 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하며 하늘을 보면, 영화를 보면, 음악을 들으면, 소설을 보면, 또는 그림을 감상하면, 그 자연과 문화 콘텐츠에 마음에서 나를 투영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관객으로 나의 분리가 일어난다. 투영된 주인공인 나를 관객인 내가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관객으로 바라볼 때 열심히 달려온 나에 대해 웃어줄 수도 있고 속상한 기억에 대해서도 스스로 안아주기 쉽다. 그리고 긍정의 강력한 힘인 소탈한 감성이 찾아온다. 내가 숨쉬고 이렇게 자연과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 아닌가 하는 감사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내 기억에 작은 가치, 감사함 등의 긍정적인 요소들이 해시태그 돼 들어가다 보면 한 해를 돌아볼 때 ‘힘들었지만 대견해’라며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