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4.0 시대에는 누가 데이터를 더 많이 가지느냐를 넘어, 얼마나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지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누가 더 초개인화 금융을 실현해 경쟁 우위를 선점할지가 관건이다.
종전 금융 서비스가 오프라인과 개별 금융기관, 단일 상품 판매 위주였다면 이러한 환경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종합 솔루션 제공 형태로 바뀌고 있다.
최근 정부는 디지털 금융 육성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 금융 시장은 D(Data), N(Network), A(AI) 등 산업혁명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초지능화, 초개인화, 초연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초지능화는 학습된 자동화를 넘어 환경, 사람, 사물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개인화란 개별 소비자 성향과 맥락을 파악해 실시간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행태를 뜻한다. 초연결화는 사람과 사물이 물리·가상공간의 경계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금융 생태계가 변하면서 많은 금융사와 기업은 디지털전환(DX)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비스와 상품을 가상화, 개인화, 플랫폼화, 자동화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 핀테크, 4.0 시대로 본격 진입
한국 디지털 금융 태동기인 2013~2015년은 금융업과 핀테크가 동반 성장한 시기라 볼 수 있다. 한국핀테크지원센터가 설립됐고,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이 폐지되기도 했다. 또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고 계좌이동 서비스, 보험다모아가 출범했다. 크라우드펀딩 법제화도 추진됐다.
2017~2019년은 성장기로 볼 수 있다. 핀테크 확산과 인프라 구축이 빠르게 진행된 시기다.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되고 마이데이터 시행, 비대면 재택근무 환경이 구축되기도 했다. 계좌 기반 혁신을 촉발한 오픈뱅킹과 핀테크 분야 투자 펀드, 인공지능(AI)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특히 정부 주도 아래 금융혁신기획단이 출범해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면서 한국 핀테크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
혁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과 규제에 가로막혀 시장 활로를 뚫지 못하는 기업들을 위해 정부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바 있다. 현행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해 혁신 사업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시장에서 검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인데, 그동안 이를 통해 224건의 혁신금융 서비스가 빛을 보았다. 224건의 서비스 중 138건이 시장에 출시됐다.
대표적인 것이 해외 주식 소수단위 투자 서비스다. 투자자가 소수점 단위 주문을 하면 증권사가 온주를 만들어 해외에 주문하는 시스템인데, 9월 기준 이용자만 86만 명, 투자 실적은 2조719억 원에 달한다.
온라인 대출 비교·모집 플랫폼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대출 상품 정보를 일괄 조회하도록 일사전속 규제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서비스다. 9월 기준 이용자 수는 870만 명, 대출 실적은 15조7312억 원을 기록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마이데이터’ 시행이다. 마이데이터 산업이란 각 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 신용정보를 모아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정부는 2020년 2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1년 뒤 마이데이터 허가제를 도입했다. 올해 1월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전면 시행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빠르고 편리하게 통합 조회할 수 있고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고 더 많이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창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도 데이터 독점 문제를 해소하고 데이터 활용을 통해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마이데이터 가입자만 4503만 명, 일평균 이용건수는 4억9000만 건(8월 말 기준)에 달한다. 이 같은 디지털 혁신은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대면 재택근무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기업 임직원이 업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우선 코로나19 관련 재택근무 시 망분리 예외를 시행했다. 대신 가상사설망 활용 등 보안 대책을 적용해 해킹과 정보 유출 위험을 조기에 방지하는 이원화(two-track) 체계를 도입했다. 소비자, 하나의 앱으로 금융 서비스 원스톱 이용
오픈뱅킹도 한국 금융 시장에 큰 변화를 던져주었다. 오픈뱅킹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여러 은행이 계좌정보, 카드정보 등을 조회하거나 결제·송금 등을 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12월, 오픈뱅킹을 전면 시행하고 올해 5월까지 상호금융과 증권사, 카드사 등으로 참가 업권을 확대했다. 연이어 지난 7월에는 핀테크 선불충전금 조회 서비스를 내놓았다.
의미가 상당하다. 핀테크 기업은 별도의 제휴 없이 모든 금융 회사에 접근 가능하게 됐다. 이체나 송금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금융소비자는 하나의 앱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다. 금융사 또한 전 국민 대상 서비스 제공을 통한 신규 고객 확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됐다. 결론적으로 오픈뱅킹은 금융사에 핀테크 기업과의 경쟁·협력을 통한 신규 비즈니스 창출 효과를 촉발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현재 오픈뱅킹 이용기관은 127개, 가입자 4503만 명, 등록계좌는 3억1000만 좌에 달한다. 일평균 이용건수도 3200만 건을 돌파했다. 오픈뱅킹 시행으로 원스톱 뱅킹 서비스뿐만 아니라 가계부 관리, 더치페이, 간편결제, 잔돈 투자 등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부, 금융규제 샌드박스 내실화…혁신과 규제 개혁 선도
정부는 디지털 혁신금융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우선 금융규제 샌드박스 내실화다. 금융 시장 혁신과 규제 개혁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초기에 비해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건수와 서비스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금융혁신 첨병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심사 체계 개편 △제도 운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제고 △지원 체계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민간위원이 전문성과 객관성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민간 공동위원장을 신설하고 혁신금융 전문가 지원단을 발족했다. 지원단은 전문 역량을 보유한 법률·특허 전문가, 유관기관 전문 인력, 연구 인력 등이 참여한다.
아울러 규제 샌드박스 특례 종료 후에도 사업 영속성을 가져갈 수 있도록 특례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원 체계도 전면 개편했다, 예비 핀테크를 집중 지원할 수 있는 책임자 지정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핀테크 사업자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사업 추진 전 단계에 걸쳐 지원한다. 또 상시적 데이터 분석 지원 플랫폼도 지원한다. D-테스트베드를 확대해 누구든지 필요한 시점에 아이디어 사업성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분석도구와 멘토링을 무상 제공한다.
금융권 AI 활용 활성화 계획도 포함됐다. AI는 미래 금융 산업의 생산성 혁신을 주도할 차세대 기술로 불린다. 다만 양질의 데이터 부족, 제도 미비, 신뢰성 부족 등으로 금융 분야 AI 활성화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양질의 빅데이터를 확보해 지원하고 금융 AI 제도 정립, 신뢰받는 AI 활용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AI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데이터 라이브러리’ 인프라를 구축한다. 또 금융권 공동 빅데이터를 확보해 ‘AI 빅데이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데이터 전문 기관도 추가로 지정할 예정이다.
AI 활용 시도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가이드라인과 규제 합리화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최근 정부는 금융 분야에서 AI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5대 서비스별 ‘AI 개발·활용 안내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연구용역을 통해 설명 가능한 AI(XAI) 정의 및 요건, 구현 사례 등을 담은 안내서를 발간한 것이다.
금융 AI 테스트베드도 가동한다. 신용평가 AI는 신용정보원, 금융사기 방지 AI는 금융결제원, 금융보안 AI는 금융보안원이 맡아 2023년까지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자산의 규율 체계를 마련한다. 최근 가상자산의 급격한 가격 변동성으로 관련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디지털 자산 이용자를 보호하고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규율 체계를 마련키로 했다.
지난 8월에는 디지털 자산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핵심은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이다. TF는 앞으로 디지털 자산의 법적 성격과 관련 범죄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또 금융 안정 및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과세 이슈, 발행 유통시장 규율 체계, 블록체인 산업 진흥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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