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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궁금한 디폴트옵션, ‘선택의 시간’ 다가왔다
[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디폴트옵션을 아시나요?” 근로자에게 이렇게 물으면, 아직은 “글세, 잘 모르겠네요” 하는 대답을 많이 듣는다. 디폴트옵션 도입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은 2022년 7월 12일의 일이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지 벌써 넉 달이 지났는데, 정작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선 디폴트옵션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자. 디폴트옵션이란 근로자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결정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미리 정해 둔 운용 방법에 따라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사전에 운용 방법을 정해 둔다고 해서 디폴트옵션을 관련법에서는 ‘사전지정운용제도’라고 한다.

디폴트옵션의 적용 대상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자신의 퇴직 계좌를 가지고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1년 일할 때마다 총급여의 12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부담금을 근로자의 퇴직 계좌에 이체해야 한다. 근로자는 회사가 이체한 부담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해야 하고, 운용 성과에 책임도 져야 한다.

IRP 가입자도 마찬가지다. IRP 가입자는 매년 일정한 한도까지 세액공제를 받으며 저축할 수 있다. 그리고 퇴직급여를 IRP에 이체하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IRP에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 DC형 퇴직연금과 마찬가지로 IRP 가입자 또한 적립금 운용 방법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적립금은 대기성 자금으로 남아 낮은 금리로 운용되기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진다.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려고 도입한 것이 디폴트옵션이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직접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하더라도 적립금을 바로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DC형 퇴직연금과 IRP에 가입하고 2주가 지났는데도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선택하지 않거나, DC형 퇴직연금과 IRP 적립금을 운용하던 금융 상품이 만기가 도래하고 6주가 지났는데도 가입자가 만기환급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정하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적립금과 만기환급금을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한다.

이처럼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해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대다수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디폴트옵션이 아직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근로자의 디폴트옵션 선택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직 퇴직연금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폴트옵션을 근로자가 선택하기까지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은행, 증권,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을 하는 금융 회사들은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상품을 고용노동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첫 번째 심의 결과는 지난 11월 2일에 나왔다.

이제 퇴직연금사업자가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은 디폴트옵션 상품을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제시할 차례다. 사업자는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제시받은 디폴트옵션 상품 중 전부 또는 일부를 선택해 퇴직연금규약에 반영해야 한다. 이때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디폴트옵션 제도와 상품이 퇴직연금규약에 반영되고 나면, 그때서야 퇴직연금사업자는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디폴트옵션 상품을 제시하고 설명할 수 있다.

DC형 퇴직연금보다 IRP 가입자는 선택의 시간을 좀 더 빨리 맞을 것으로 보인다. IRP는 가입자가 직접 금융 회사(퇴직연금사업자)에서 가입한다. 금융 회사와 가입자 사이에 사업주가 끼어들 여지도 없을뿐더러 퇴직연금규약을 작성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퇴직연금사업자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승인 받자마자 IRP 가입자에게 설명하고 선택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 2일에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1차 승인 결과가 발표된 것을 계기로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에게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디폴트옵션 제도와 상품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고용노동부가 승인한 디폴트옵션 상품에는 어떤 것이 있나
지난 11월 2일 고용노동부가 디폴트옵션 상품 승인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어떤 기준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을 심의했으며, 승인된 디폴트옵션 상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심의에는 38개 퇴직연금사업자가 220개의 상품을 신청했다. 퇴직연금사업자 한 곳당 평균 5.8개의 상품을 신청한 셈이다.

심의 결과 165개 상품이 승인을 받고 55개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크게 원리금보장과 펀드 상품으로 나눌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원리금보장 상품을 심의하면서 금리, 중도해지 페널티, 만기, 상시 가입 가능 여부 등을 살폈고, 펀드를 심의할 때는 과거 운용수익, 자산 배분 현황, 보수의 적절성을 점검했다. 특히 퇴직연금사업자가 계열사인 자산운용사의 펀드 심의를 신청한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심의했다.

대부분의 퇴직연금사업자들은 근로자의 노후 보장 강화와 사전지정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원리금보장 상품의 금리는 기존보다 높게, 펀드의 보수는 기존보다 낮춰서 승인을 신청했다. 승인된 상품 중 원리금보장 상품의 금리는 11월 기준 평균 5.13%로 기존 퇴직연금 원리금보장 상품의 평균 금리에 비해 평균 0.2%포인트 높았다. 그리고 승인된 펀드의 보수는 기존 퇴직연금에 비해 약 33%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근로자들이 디폴트옵션을 활용하면 보다 높은 금리의 원리금보장 상품과 낮은 보수의 펀드에 가입해 더 많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아직도 궁금한 디폴트옵션, ‘선택의 시간’ 다가왔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디폴트옵션을 얼마나 알고 있나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1차 승인 절차가 완료되기는 했지만, 아직 퇴직연금 가입자의 디폴트옵션 제도와 상품에 대한 이해는 높다고 할 수 없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 9월 22일부터 10월 4일 사이에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중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해당 조사에서 디폴트옵션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서 조사 대상자의 41.8%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전혀 모른다”고 답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도 26.9%나 됐다. 반면 디폴트옵션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31.3%로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디폴트옵션 제도와 상품에 대해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실적배당 상품 중에서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가 16.6%로 가장 많았다. TDF는 목표 시점(target date)을 정해 두고, 목표 시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는 주식 편입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가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그 비중을 줄여 나가는 펀드를 말한다. 이 같은 비중 조절은 펀드가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가입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TDF 다음으로는 밸런스드펀드(BF)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가 14.9%를 차지했다. BF는 주식 편입 한도를 정해 두고, 그 범위 내에서 펀드매니저가 시장 상황에 맞게 자산 비중을 조절해주는 펀드를 말한다. 이 밖에 펀드와 원리금보장 상품에 분산투자를 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도 14.0% 정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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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그렇다면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소득 수준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에서 월 소득이 800만 원 이상인 근로자 중에는 TDF와 BF를 디폴트옵션으로 선택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40%로 평균(31.5%)보다 8.5%포인트 높았다. 반면 월 소득이 300만 원 미만인 근로자 중에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56.8%로 평균(40.1%)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계좌를 관리하는 사람일수록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펀드를 선택하겠다고 답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퇴직연금 운용 지시를 연간 1회 이상 하는 근로자 중에는 TDF와 BF를 선택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40.2%나 됐다. 그리고 금융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면 직접 상품 교체를 시행한다고 답한 근로자들 중에도 TDF와 BF를 디폴트옵션으로 선택하겠다는 답한 비중이 42.8%나 됐다. 둘 다 평균(31.5%)보다 높은 수치다. 반면 연금 계좌 관리에 소극적인 응답자들은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운용 지시를 한 경험이 없다고 답한 이들 중에는 52.2%, 연금 계좌를 한 번도 확인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이들 중 50.4%가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둘 다 평균(40.1%)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마지막으로 가입자의 투자 성향과 기존에 운용하는 상품도 디폴트옵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을 운용해서 연 6% 이상 수익을 내고 싶다고 응답한 이들 중 43.5%, 퇴직연금 적립금 중 70% 이상을 투자 상품에 운용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45%가 TDF와 BF를 디폴트옵션으로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둘 다 평균(31.5%)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반면 목표수익률이 연 4% 미만이라고 답한 이들 중 53.8%, 퇴직연금 적립금 중 30% 미만을 투자 상품으로 운용한다고 답한 이들 중 60.7%가 디폴트옵션으로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아직도 궁금한 디폴트옵션, ‘선택의 시간’ 다가왔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에 기대하는 것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 퇴직연금 가입자가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같은 질문에 ‘알아서 운용되는 편의성’을 선택한 응답자가 29.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꼽았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기대대로 디폴트옵션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적립금에 대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방치해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보다 나은 수익을 얻으려면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가 관심을 갖고 적립금을 운용해야 할 것이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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