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급변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 격동의 시기에서 필요한 리더의 자질은 무엇일까.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메시지를 통해 현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짚어봤다.
[special]복합위기 시대의 리더십, '재벌집 막내아들'에 답 있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캡쳐]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가장 다이내믹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필자는 대학과 기업에서 리더십 과목을 강연하면서 강의 내용을 전날 최종 점검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강연 내용에 나오는 기업과 리더가 아직까지 무사한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커스의 재창조라는 모토 아래 혁신적인 형태의 공연으로 각광받아 온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1984년 창립 이래 공연 전면 중단과 파산 보호 신청이라는 난관에 봉착한 적이 있다. 세계 최대 차량 공유 기업 ‘우버’ 공동 창업자이자 경영자인 트래비스 캘러닉은 성 추문 사건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우버 파일(Uber file)을 통해 불법행위가 공개되면서 여전히 각종 의혹을 받고 있다. ‘혁신’이라는 아이콘으로 불리는 기업과 경영자의 몰락, 회복탄력성이 빈번하게 연출되는 요즈음, 필자 역시 최근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가 지향해야 할 기술·고용·교육 개혁이 지연돼 각종 위기에 봉착해 있다. 중소기업 CEO를 대상으로 진행된 강연장에서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일률적인 주52시간 근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기술자의 부족 등을 하소연했다. 그들은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시켜 규제 혁신을 통한 고용 창출력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갈수록 높아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 파고(波高)로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급격한 변환 속에서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간극의 원인은 서로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요즘처럼 대내외적으로 경영자가 힘든 적은 없다.
[special]복합위기 시대의 리더십, '재벌집 막내아들'에 답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본 리더십
좀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남편이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미래를 미리 알고 있으면 참 좋겠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독자적 의사결정으로 최고의 기업을 구축해 온 진양철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자승계라는 원칙을 무너뜨린 것은 진도준이 미래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직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양철 회장은 진도준의 빅 픽처, 즉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과 높은 위험에도 주도적으로 기회를 포착하는 그의 역량이 탐났다. 후계자를 고민하는 창업주라면 당연한 일이다. 진양철 회장은 예지력과 실행력이라는 경영자로서의 그릇을 갖춘 진도준의 자질을 총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용기
“할아버지께서 내주신 퀴즈, 정답을 이제야 알았어요.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진양철 회장은 영진반도체를 인수해 미래 성장 동력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 해결책이 요즘 시대 모든 기업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현재 경영인에게 가장 필요한 통찰력은 ‘조직의 몸집을 재는 일’이다. 앞으로 키워야 할까. 줄여야 할까.

영국의 작가 찰스 핸디는 2001년 저서 <코끼리와 벼룩>을 통해 미래의 세상은 거대한 조직과 1인 창업가의 시대임을 예견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대사 중, 고래와 새우, 찰스 핸디의 표현대로라면 코끼리와 벼룩이지만, 산업사회에서 명확한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조직이 어느 정도 규모의 몸집인가를 자문해본다면, 지금 몸집을 키울 타이밍인지, 현상 유지가 필요한지, 아니면 다운사이징을 해야 할 것인지 답이 나올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리더의 주요 결정은 내 조직이 위치할 자리를 마련해 놓는 일이다. 현재 시점 내 조직이 구조조정이 요구되는지, 긴축 재정을 통한 경비 절감과 지출 효율화가 필요한지, 과감한 투자와 사업 재편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할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진양철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때나 현대자동차가 독자 모델을 개발할 때의 길을 선택했다. 유능한 리더는 들어갈 시점과 빠질 시점을 간파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시구처럼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는데 두 길 다 가는 한 나그네가 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경영자의 딜레마일 것이다. “나는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랬더니 큰 차이가 있었다.” 갈림길에서 리더의 현명한 통찰력이 오늘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 차이가 될 것이다.

후계자 승계는 체계적으로
진양철 회장은 자신과 가장 닮은 진도준에게 순양을 물려주고 싶었다. 장고 끝에 진양철 회장은 장자승계 원칙을 파기하고 자식들을 후계자 경쟁에 몰아넣고 능력을 보이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진양철 회장은 경쟁 구도로 만들어서 자식들의 능력을 시험했지만, 그들은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였기에 자신의 역량을 키우려고 하기보다 눈치 보며 아부하는 팔로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리더로 키우는 것, 그것이 바로 후계자 승계 프로그램이다.

진도준에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도자 과정을 밟아서 순양의 조직과 업무를 파악해 후계자 권한을 위임받도록 하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그 과정을 만들어 나갈 것을 유언했다.

“사지로 내몰기다. 글마 살아남기 위해 못할 게 없는 아다. 똑똑히 보라고. 내 안다. 글마 낼 팔아서라도 순양을 산다고 할 아다. 내를 밟고 가면 앞으로 못할 게 없다. 그래야 글마 순양을 지키고 산다.”

과거 진양철 회장 시대에는 차기 CEO를 비밀로 했다면 오늘날은 후계자를 미리 정한 후 승계 계획을 필수 업무로 정착화하고 있다. 후보군을 미리 선출해 인재풀을 만들어 놓고 기업문화, 미래 사업 계획을 고려한 후 포지션에 합당한 후보를 파악해 그들의 유지, 성장, 발전을 도모하는 승계 계획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진양철 회장이 말한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못할 게 없는 경영인은 오히려 생존하기 힘들다.

요즘처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사회적 책임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순양의 차세대 CEO의 혁신 전략 2가지
극 중 순양그룹은 순양물산을 지주회사로 두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자, 중공업, 금융, 유통, 공익재단을 거느리고 있다. 순양의 차기 CEO는 진양철 회장과 어떻게 달라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기업인들은 진양철 회장과는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불변의 경영자 역량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인재 관리다. 창의적 인재를 지원하고 기술력을 보완하고 실패 속에서 성장하는 구조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기존의 성공에 대한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풋옵션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도 있겠죠. 흘러가는 물에 올라타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건 물줄기를 바꾸는 거예요.”

진양철 회장이 사망한 2002년에서 20년이 흐른 2022년의 현재, 확연하게 달라진 2가지 핵심은 경영 환경이 정보기술(IT)과 빅데이터가 융합하는 패러다임의 시대라는 점과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인재의 시대라는 점이다. 진도준이 순양의 CEO가 된다면, 시대를 내다보고 어떻게 물줄기를 바꾸어서 새 판을 짤 것인가. 갑자기 리더십 전문가인 필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디지털 전환
제조업이 근간이 돼 현대화를 이루었던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팬데믹 시대가 맞물려지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연계된 새로운 업무 방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신규 사업의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해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 수업을 하면서 현재 소속된 기업에서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조직에 대해 질문했더니 의외로 그 숫자가 현저히 낮았다.

2021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멘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자동차 산업의 디지털화 및 자동화 발전에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IBM은 이미 다양한 디지털 솔루션을 가지고 전 세계의 파트너사를 대상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마존은 무인자동화 로봇 생산 업체인 키바 시스템즈를 인수한 후 자동화된 로봇을 물류 시스템에 투입했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드론을 이용해 배송하는 아마존 프라임 에어가 2022년 말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10년 준비 끝에 상용화된다고 한다. 거대 그룹이 아니더라도 현재 내 조직에서 필요한, 작은 실현 가능한 디지털 혁신은 무엇일까. 디지털 솔루션을 구상하는 기업이라면 최고혁신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CINO), 최고기술혁신책임자(Chief Technology Innovation Officer·CTIO)라 불리는 관리자가 필요해지고 있다. 칼 세이건이 말한 것처럼 요즘 시대는 근본적으로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두는 문명이 펼쳐지는 중이다.

창의적 인재 개발
21세기는 산업 기반 사회에서 지식 기반 사회의 전환으로 옮겨 가고 있다. 아무리 통찰력 있는 유능한 경영자라 하더라도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00년 중국의 알리바바 투자를 6분 만에 결정했다고 말하면서 이는 즉흥성이 배제된 철저한 계산을 통한 분석으로 미래를 예측한 신속하고 확고한 결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과 미래를 잇는 통찰력을 지닌 손 회장도 재무 안정성 우려가 커지자 근래 알리바바의 주식을 대거 매각했다. 그만큼 요즘 글로벌 경제 상황은 아무도,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다.

“내가 원하는 답을 쓴 사장은 아무도 없다. 1년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실 앞에서 5~10년 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해답은 이와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키우는 일이다.” 작고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미국의 도넛 프랜차이즈를 들여온 진도준에게 오세현 대표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의 흐름을 알기 위해선 돈보다 먼저 알아야 될 게 있어. 그 돈의 주인인 인간. 시장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인간을 이해한다는 말이거든.”

21세기 현재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는 주체는 기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계에 맹종하지 않고 기계보다 앞선 인간을 이해하고 협업하는 자가 새 판을 짜는 21세기형 리더가 될 것이다.

최혜림 세이지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