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하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어는 겨울이지만 오직 겨울이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어 길을 떠난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초록의 편백나무, 두꺼운 눈 이불에 쉬어 가는 작은 새, 고요한 숲에 울리는 오래된 사찰의 풍경 소리를 들으러 간다, 전북 완주로.
전북 완주,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하다
Travel Course
익산역(호남선) – 53km 약 40분(자동차 픽토그램) -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 - 15km 약 20분 –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 32km 약 35분 – 오성한옥마을 – 36km 약 45분 - 화암사
전북 완주,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하다
겨울 동화,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
서울시청을 기준으로 완주군청까지는 차로 약 3시간, 고속열차를 이용하면 익산역이나 전주역에서 내려 차로 20~30분이면 도착한다.

완주 남쪽 끝자락, 상관면으로 가보자. 겨울 동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편백나무 숲이 공기마을로 불리는 아늑한 품에 자리한다. 1976년 산림녹화 사업과 2009년 숲 가꾸기 사업을 거치며 마을 주민들이 손수 심고, 가꾼 숲은 오늘날 멀리서도 찾아와 감탄하는 아름다운 명소가 됐다.

86헥타르 규모의 숲에는 편백나무 10만 그루, 잣나무 6000그루, 삼나무, 낙엽송, 오동나무 등이 무리를 이룬다. 길고 탐스러운 머릿결을 자랑하는 듯한 편백나무 잎은 대지를 향해 꼬리를 늘어뜨리고 그 위로 함박눈이 소복하다. 빨갛게 얼어 버린 손끝을 호호 불어 가며 편백나무가 촘촘한 숲길을 걸으면 바람결에 은빛 가루가 부서진다.

편백나무 숲은 총 8km, 4개 코스의 산책로로 조성됐다. 이미지에도 등장하는 곳이 가장 인기가 많은 오솔길 코스, 이 길을 쭉 따라 경각산으로 겨울 산행을 나서는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산 214-1
전북 완주,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하다
술이 달다,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공기마을과 함께 코스로 엮어 가보면 좋은 곳. 지난 2015년 10월 개관한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다.

가장 오래된 가공 음료인 술을 무려 5만여 점의 유물로 만나는 공간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기획전시실, 발효숙성실, 복합문화공간, 유물전시관, 상설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살면서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없는 사람은 흔치 않을 터. 박물관 곳곳마다 미소를 자아내는 콘텐츠가 발길을 멈춰 세운다.

‘인정 많았던 서민의 안식처’라는 타이틀로 재현한 1960년대 대폿집에서는 당장이라도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쓰지 않을 거야. 그 잔도, 니 인생도’라는 익살스러운 문구가 새겨진 계단을 따라 2층 전시실로 오르면, 우리나라 전통주부터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세계적인 술들이 실물 그대로 전시돼 있다.

이 밖에 우리나라 가양주가 어떤 이유로 쇠퇴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물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다양하고 활발해진 시대별 술 광고도 인상적이다.

월요일 휴무,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전북 완주군 구이면 덕천전원길 2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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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성지, 오성한옥마을
위봉산, 서방산, 종남산, 원등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오성한옥마을은 마치 큰 새의 둥지처럼 아늑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통과 개인의 취향이 조화를 이뤄 이리로, 이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사랑받는 방탄소년단(BTS)은 ‘2019 서머 패키지 인 코리아’ 영상과 화보 촬영을 완주의 오성한옥마을에서 진행했다. 영상에서 만난 모습 그 이상으로 마을은 독특한 존재감을 드리운다. 마을의 큰 축을 차지하는 건 아원고택과 소양고택이다.

아원고택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해체한 뒤 이축했고, 소양고택은 고창과 무안에서 130년 된 고택 석 채를 옮겨 왔다. 2곳 모두 한옥스테이는 물론 갤러리, 북카페 등 문화공간으로도 운영된다.

높고 낮은 데, 크고 작게 마련한 한옥 창과 문으로 종남산이며 위봉산, 대숲이 그림처럼 드러나니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누구나 소원할 법하다. 마을 위로는 완주 9경 중 6경에 속하는 위봉사, 위봉폭포, 위봉산성이 자리하니 더불어 들러보자.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516-7, 아원
전북 완주,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하다
책 같은 절, 화암사
완주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는 시인 안도현이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고 쓴 화암사가 있다. 잘 늙은 절이란 무엇이고, 나 혼자 보고 싶은 책 같은 절은 어떤 모양일까.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산길, 좁았다가 넓어지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어여쁜 길을 오르자 문득 땡그랑, 땡그랑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완주 화암사 우화루,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바깥에서는 기둥을 세워 누각처럼 보였던 우화루가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인다.

화암사는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극락전(국보)과 우화루(보물)는 조선 초기에 세워져 작고 네모난 경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햇살 머금은 전각 아래에서 불명산과 극락전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하얗게 바랜 문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비밀의 숲 같은 지하 도서관. 꿈 많은 소년이 가슴에 새기려 한 구절, 한 구절 손으로 짚어 가며 읽은 그 책, 화암사처럼 바래고 귀한 헌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글 정상미 SRT 기자 사진 이효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