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치매 환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치매 환자 관련 상속 분쟁도 증가하는 양상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 혹은 사망하기 전 상속을 마무리하고, 노후 자산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령화로 치매 환자 급증...상속 분쟁 막으려면
인간의 불로장생 꿈이 그 한도를 늘려 가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점점 더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지난해 17.5%에서 2025년 20.6%, 2035년 30.1%, 2050년 40.1%(장래인구추계)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초고령화 흐름과 치매 발병률이 비례한다는 점이다. 최근 중앙치매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로 추정되는 환자 수는 약 84만 명으로, 추정치매 유병률은 10.33%에 달한다. 65세 이상 인구 100명당 10명이 치매로 추정되는 셈이다. 추정치매 환자는 2025년 100만 명을 넘어선 뒤 2050년에는 300만 명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치매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10년 넘게 치매를 앓던 친정어머니를 보살펴 온 50대 A씨는 “‘병시중 3년에 효자가 없다’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 능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어머니를 모시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며 “치매는 일반적인 간병의 시간보다 발병 후 사망까지의 시간이 몇 배 길어지다 보니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처럼 치매 환자의 경우 간병이 어렵기 때문에 기간이 늘어나고 환자 상태가 악화될수록 간병하는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기 치매 환자에 대한 간병은 대개 가족이 담당하는데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이나 시설 등에 맡기게 된다. 간병은 정부가 일부 담당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롯이 민간의 영역에 있다. 아직까지 제도권 밖에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다. 가족 간병도 녹록지 않다. 간병인을 구할 돈조차 없다면 결국 가족이 그 모든 짐을 떠안게 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가족 요양에 대해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간병을 하면서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경우 그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치매 환자로 인한 가족 간 금전적인 분쟁도 간과할 수 없다”며 “병원비, 간병비는 물론이고, 상속을 둘러싼 언쟁이 오가면서 형제간에 갈등이 씨앗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흔히 상속 분쟁은 과거 돈 많은 사람들의 문제라고 치부됐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로 확장되고 있다. 대법원의 ‘사법연감 2020’ 통계를 살펴보면 상속 사건은 2010년 3만301건에서 2019년 4만3799건, 유언 사건은 2010년 224건에서 2019년 323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 급증...상속 분쟁 막으려면
유언대용신탁·성년후견인제도 등 적극 활용해야
특히, 치매가 찾아온 부모님이 생전에 했던 증여와 인출 등 자금출처가 명확하지 않거나 상속인 간 알 수 없는 지출이 있다면 이는 곧 상속 분쟁으로 연결되기 쉽다. 상속 발생 시 유언이 없다면 법정상속으로 분배될 것이기 때문에 유언이 존재하면 유언의 의사가 명확한지 짚어보는 과정에서 상속인들은 이견들이 생길 수 있다. 치매 상태의 부모님이 유언 당시 중증은 아니었는지, 결정 상황이 정상적이었는지, 상속에서 차별되거나 배제된 상속인은 치매 상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의 리빙트러스트센터 관계자는 “치매는 이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마”라면서 “치매로 벌어질 수 있는 상속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신 건강의 상태가 양호할 때 유언을 남기거나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신탁에 의한 생전 노후 관리가 보편화돼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UFJ신탁은행, 미즈호신탁은행,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 리소나은행에서는 한국보다 앞선 2012년경부터 후견제도지원신탁을 판매해 왔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경증 치매자를 위한 치매신탁 상품으로 후견인제도를 활용한 신탁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배정식 본부장도 “신탁 관리는 치매를 대비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신탁 계약을 해 스스로 신탁 이전과 동일하게 정기예금이나 채권, 투자 상품으로 운용하다가 치매가 심해졌을 때 별도의 운용 또는 관리 방법을 정해 놓으면 그 지출에 대한 의구심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예를 들어 어느 한 자녀가 상속집행인이 되는 것보다는 제3자인 수탁자가 부모의 뜻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할하게 되면 분배 과정에서의 의심과 갈등은 줄어든다”며 “또한 남은 자녀들 중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이 있을 경우에는 객관적인 관리와 투명한 처리를 통해 부모 사후 남겨진 이들의 부담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성년후견인제도도 치매 난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성년후견인제도란 장애, 질병, 노령 등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이 의사결정을 할 법적 후견을 정해주거나 후견 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 관리 및 일상생활에 관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다. 치매 환자들의 경우 성년후견인제도를 통해 재산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고 스스로도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관계자는 “이미 치매 상태가 심각해 법정후견 신청을 할 때 대부분의 가족 간 이견으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을 현장에서 봐 왔다”며 “법정후견제도를 100% 활용해야 하지만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해주고 후견의 투명성을 보장한다면 후견제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후견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식 본부장도 “치매가 심해지면 결국 요양기관으로 옮겨 생활하거나 치료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법정대리인인 후견인이 필요한데, 미리 자신이 생각하는 후견인을 정해 놓아야 한다. 자신의 결정에 따를 재산 관리와 노후의 다양한 의사결정을 도와줄 사람을 지정해 놓음으로써 긴 투병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녀 간 갈등 요소를 줄여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