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실험

지난 1년간 재택근무를 해온 김한국 씨는 최근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하면서 팀원들과 손발을 맞추고 성과를 내는 데 어려움이 없던 그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일의 효율성이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일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해왔다. 재택 근무, 원격 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을 진행하면서 ‘어떤’ 가능성을 체감하기도 했다. 즉 근무시간보다는 성과와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상황에 따라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 미덕인 때를 지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포데이 위크 글로벌4Day Week Global’은 올해 일의 변화 키워드로 ‘실험’을 꼽았다. 일하는 방식과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어떠한 조합이 각 산업과 직업에 적합할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했다.

포데이 위크 글로벌이 주도한 실험은 전 세계 73개 기업, 3,300여 명의 근로자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참여 기업은 지난해 6월부터 급여 삭감 없는 주 32시간 근로제를 시범 도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미국 보스턴 칼리지 등과 함께 준비 단계부터 집행 및 평가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이 단체는 프로젝트 기준으로 다음 세 가지를 상정했다. ‘임금 100% 유지’, ‘근무시간 20% 감축’, ‘생산성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다.
중간 평가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과 근로자 모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기업은 전반적인 효율성과 생산성에 만족하며 100점 만점에 90점을 주었다. 그리고 직원 대부분은 주 4일 근무제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고, 스트레스가 개선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주목할 것은 근무시간이 단축되었음에도 ‘업무 생산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매출’이 실험 이전보다 44%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낸 주된 요인은 ‘불필요한 업무 감축’으로, 임직원은 주간 업무의 20%를 차지하던 미팅과 출장 등의 업무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자발적으로 줄여나갔다.
잘 가! TGIF, 웰컴! TGIT
이미 주 32시간 근무제가 정착한 국가도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회사원과 유치원 교사 및 병원 종사자 등 여러 직군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를 시범 운영하고, 현재는 근로자의 약 85%가 임금 감소 없이 주 4일 근무제로 일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2014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하루 6시간 근무시간을 2시간 더 단축하는 실험을 했다.
최근에 시범 단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주 3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나라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22년 1월 공무원을 대상으로 금요일 오후부터 쉬는 주 4.5일 근무제를 시행했고, 벨기에는 같은 해 2월 유럽연합 최초로 노동법을 개정해 주 4일제를 공식 도입했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가 주 4일 근무제 법제화에 나섰다. 직원 500명 이상인 기업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전자·중공업 대기업 히타치Hitachi는 직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총근로시간과 급여를 삭감하지 않으면서도 주 4일만 근무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를 도입했고,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파나소닉Panasonic도 57년 만에 주 4일 근무제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세계의 직장인들은 “TGIF!Thank God It’s Friday!”가 아닌 “TGIT!Thank God It’s Thursday!”를 외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주 4일 근무제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세브란스병원, 카카오, 우아한형제들, 휴넷 등의 기업이 주 4일 혹은 4.5일 근무제를 시범 도입하기로 하고 세부 시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중요한 식당, 카페, 상점과 근로시간이 곧 생산량으로 연결되는 제조업에서는 주 4일 근무제 시행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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