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정책당국의 발빠른 대응 조치 덕분에 투자 심리는 소폭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급격한 금융 불안이 남긴 잔상(殘傷)은 시장참여자들에게 지속적인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처럼 은행 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미국 중앙은행인 Fed의 긴축에 따른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로 인해 대형 은행의 재정 건전성은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지방은행, 사모펀드, 부동산 등 다양한 섹터에서 유동성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할 자산에 대한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다.
채권 가격, 주식보다 매력↑…우량 채권 확보해야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든 일련의 사태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지만 지금 정도의 불안감이 주식 매수를 꺼리거나 매도를 주저할 만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에서 우량 채권의 비중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현재의 채권 가격이 주식보다 매력적인 구간에 있으며, Fed의 금리 인상이 종료되는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는 채권을 트레이딩하기보다 장기 보유를 통해 본격적인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보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연초 이후 채권 자산을 편입한 펀드 등의 수익률을 볼 때 ‘경기 침체가 나타난다면 정말 채권에서 수익이 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과거 긴축 후반부에 나타났던 현상은 지금의 투자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4~1995년의 미국이다. 1994년은 미국의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 탓에 소위 ‘채권 대학살’이라 불릴 정도로 채권 투자자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다. 당시에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되자 Fed가 최종금리 수준에 도달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먼저 하락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해 가는 동안 미국 채권 가격의 지표인 바클레이스 미국 채권 지수가 짓눌린 모습을 보였지만, 금리 인상 종료 시점이 임박한 시기부터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하며 채권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긴축 종반부로 향하고 있는 최근 한국의 채권 시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량 채권 비중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Fed보다 이른 시점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물가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잡아야 했고, 환율에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장금리가 상승하며 채권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시장금리는 그 이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국내 채권 가격은 상승 추세로 반등했다. 비록 현시점의 동결이 기준금리 인상의 끝을 시사한다고 볼 수 없지만, 이를 근거로 향후 미국 채권 시장의 움직임도 추론해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금리가 상승하고 채권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채권 비중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량 채권의 비중을 늘려 가야 한다. 우량 채권은 BBB등급 이상의 글로벌 채권과 A등급 이상의 국내 채권을 의미한다. 최근의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인해 중소 은행들은 대출 조건을 이전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건전성 관리를 하고 있다.
실제 지난 3월 마지막 2주 사이에 미국의 은행 대출은 역대 최대 규모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우량 기업보다 재무 구조가 취약한 투자비적격 등급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점차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미국 상업은행의 대출 기준 강화율과 기업파산지수는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금리 수준이 높아진 덕분에 한국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하이일드채권의 경우 현재 연 10%에 가까운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지만, 앞으로 경기 둔화에 따라 시장의 파열음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하이일드채권보다 낮은 신용 위험으로도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의 일드(수익)를 제공하고 있는 우량 채권을 통한 접근이 유용할 것으로 본다. 이번 CS 사태에서도 하이일드채권인 AT1 채권은 상각됐지만 BBB등급의 선순위 CS 채권은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주식 시장 기회 시점은…이익 전망치 하향 가능성 염두해야
올 초 이후 미국 주식 시장이 플러스(+) 성과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향후 12개월 관점에서 보면 경기 침체 리스크를 덜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주식 시장의 적정 가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동반된 경기 둔화 시기에는 이익 전망의 하향 조정 폭이 보통의 침체 시기보다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는 이익 전망 하향 조정이 더디게 나타나고 있지만, 추가적인 하향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형 자산은 모두 매도해야 할까. 주식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수익을 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주식 비중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이지만 주식 비중이 전혀 없는 포트폴리오는 만족할 만한 기대수익을 가져다줄 수 없다.
최근 미국 시장에선 지난해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성장주들이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을 앞서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금리의 상단이 어느 정도 제한되면서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이 추가적으로 하락하기 힘들다는 시장 컨센서스가 반영된 결과다.
물론 현재의 고금리 환경은 분명 성장주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성장주는 금리의 방향이 하향할 때에는 우수한 성과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포트폴리오의 성장주 비중을 크게 늘리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Fed가 과거와 같이 대규모 양적완화(QE)나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는 여전히 ‘물가’라는 부담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Fed가 물가보다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시점이 온다면 그때가 주식 비중을 적극적으로 분할매수 할 적절한 시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이 금융 시장의 추세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인플레에서 펀더멘털로 이동하고 있는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변곡점에서 모든 성장주가 좋은 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 최근 SVB 사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처럼 금리 상승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졌고, 특히 현금흐름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는 생존의 문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선 확실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견조한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한 독점적 형태의 기업들을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재무제표가 우수하고 이익 성장성이 뚜렷한 우량 성장주에 선별적으로 투자할 것을 권한다.
실제로 우량 기업 투자는 장기간 뛰어난 위험 조정 수익률을 제공해 왔다. 기업의 펀더멘털과 밸류에이션을 면밀히 고려하는 글로벌 펀드들은 비슷한 유형의 다른 펀드들보다 높은 상승장 참여율과 낮은 하락장 참여율을 보였으며, 장기 누적 성과가 벤치마크를 큰 폭으로 상회했다. 우량 채권·선진국 성장주서 투자 기회 찾으려면
경기 침체 우려와 금융 불안으로 여전히 시장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떠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얼라이언스 번스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채권 시장에 지속적으로 머물렀을 때의 연평균 수익률은 5.1% 수준이지만, 매년 최고의 수익을 안겨준 1개월을 투자하지 않았을 경우 수익의 약 42%를 놓치게 돼 연평균 수익률이 2.97%로 떨어졌고, 최고의 2개월을 투자하지 않았을 경우 약 73%를 놓친 연 1.39%로 수익률이 하락했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피델리티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가 운용한 마젤란펀드의 경우 1977년 5월부터 1990년 5월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무려 29.2%를 기록하며 시장 평균 수익률의 2배에 달했다. 반면 전체 펀드 가입자들의 수익률을 보면 오히려 절반 이상의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고 한다. 이는 수익률이 좋을 때 시장에 들어왔다가 수익률이 나쁠 때 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여전히 변동성 요인은 시장에 남아 있다. 견조한 미국의 고용 시장은 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분기 중 예정돼 있는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은 재정지출 축소와 자금 운용에 영향을 미쳐 미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시장금리와 S&P500 지수는 박스권 흐름을 이어 가면서 방향성을 탐색하는 기간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반등의 기회라는 것은 시장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우량 채권과 펀더멘털이 우수한 선진국 성장주는 반등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경색된 금융 여건 속에서도 견조한 흐름을 보일 두 자산을 금리 상승 구간과 주식 시장 변동성 구간에 적극적으로 편입해 경기 침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금리 상승 구간에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우량 채권은 경기침체기에 인컴(수익) 확보의 길을 열어줄 수 있으며, 선진국 증시가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정체되더라도 우량 성장주는 차근차근 제 갈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글 조석민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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