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구 차봇모터스 대표

영국 자동차 기업인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첫 번째 모델인 ‘그레나디어’가 한국에 상륙했다. 그레나디어가 아시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국이 최초다. 이네오스의 공식 수입과 판매를 맡은 차봇모터스의 정진구 대표를 만나 이 차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그레나디어, 완벽한 오프로더...다이버 워치처럼 튼튼"
이네오스그룹은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석유화학 기업이다. 국내에는 롯데이네오스화학과 한국이네오스스티롤루션 등의 합작사 형태로 진출해 있고, 현대자동차와 수소 분야에서 협력한다.
이네오스그룹을 이끄는 짐 래트클리프 회장은 소문난 자동차 애호가이자 오프로더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등 모험과 탐험을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정통 기계식 사륜구동 자동차의 열혈 팬으로 알려졌는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이런 차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러다 1세대 디펜더마저 단종되자 직접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이네오스 오토모티브(INEOS Automotive)’다. 한 남자의 취향과 꿈이 실제 자동차 사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후 막대한 투자를 통해 첫 번째 자동차인 ‘그레나디어(Grenadier)’를 만들었다. 박스형 외관으로 공간 효율성을 높이고 극한 환경도 견디도록 설계한 정통 기계식 사륜구동 자동차다.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벌써 70개국, 200여 곳의 글로벌 판매 및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3월 처음 공개했는데, 공식 수입·판매와 사후관리(AS)는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 ‘차봇 모빌리티’의 계열사인 ‘차봇모터스’가 담당한다.
"그레나디어, 완벽한 오프로더...다이버 워치처럼 튼튼"
- '차봇모터스'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차봇모터스는 모빌리티 플랫폼 스타트업인 차봇 모빌리티의 자회사다. 차봇 모빌리티는 설립 때부터 소비자가 차봇에서 차량을 사고, 타고, 파는 것이 모두 가능한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는 크게 5가지 카테고리로 운영 중인데, 신차 딜러 대상 고객 및 업무 관리를 위한 ‘차봇 프라임’과 중고차 딜러 대상 서비스인 ‘차팀장’, 자동차 금융 사업인 ‘차봇 파이낸스’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용품이나 액세서리도 판다. 사실상 아직 신차 판매만 하지 않고 있는데, 그레나디어 수입을 통해 신차 사업에도 뛰어들게 됐다.”

- 플랫폼 회사에서 완성차를 수입한다는 게 꽤 흥미롭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파트너사가 되기까지 힘든 점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특히 처음 제안을 준비할 때는 회사에 나와 이상민 이사 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했지. 차봇모터스의 장점을 살려 이런저런 사업을 제안했는데, 영국 본사에서 이 점을 흥미롭게 봐준 것 같다. 특히 이네오스 오토모티브 역시 후발 업체이다 보니 온라인 서비스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더라. 다양한 차량 관련 솔루션을 지닌 차봇 모빌리티의 플랫폼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 스바루코리아, 인피니티 홍콩, 닛산 일본 본사 등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특히 일본에 있을 땐 대우도 꽤 좋았다. 마음을 움직인 건, 오랫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다. 막연했지만 오래전부터 ‘언젠간 꼭 함께 사업을 해보자’고 생각해 오던 차였다. 더 늦으면 재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

- 국내외를 모두 경험한 베테랑으로서 한국 시장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아시아의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장이다. 다양한 업계에서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소비자는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소한 브랜드의 차인데 벌써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지 않나. 일례로 유튜브에서 영어로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검색하면, 제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콘텐츠가 93만 정도 된다. 1년 전쯤 올라온 영상이다. 그런데 한글로 검색하면 고작 2~3개월 만에 100만 뷰를 훌쩍 넘는 영상이 여럿 생겼다. 영국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에서도 이 점을 흥미롭게 봤다.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공개하게 된 배경이다.”

-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재미있는 탄생 비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랜드로버에서 더 이상 디펜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화가 난 짐 래드클리프 회장이 직접 차를 만들었다고.
“요즘 언론보도를 보고 가장 속상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짐 래드클리프 회장은 자동차 애호가이자 오프로드 마니아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차는, 고장이 나더라도 직접 고치면서 오지를 탐험할 수 있는 정통 기계식 오프로더다. ‘전설의 오프로더’라 불리는 차들이 점차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가까워지거나 럭셔리 SUV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고 직접 자동차를 만든 것이지, 꼭 디펜더만을 특정한 것은 아니다.”
"그레나디어, 완벽한 오프로더...다이버 워치처럼 튼튼"
- 그레나디어는 어떤 차인가.
“그레나디어는 디자인과 내구성, 오프로드 성능 등 3가지의 핵심 가치를 가진 정통 보디온 프레임 4×4 SUV다. 탄생 배경을 보면 알겠지만 오프로드 성능 면에서 동급 최고라 자부한다. 다재다능함과 균형 감각을 지니고 있고, 안정성과 내구성이 강한 소재, 사다리꼴 프레임 섀시, 프로그레시브 코일 스프링, 아연 도금 강판 차체 등 정통 오프로더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프로더로서의 ‘가치’는 이미 북미와 호주 등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온로드 성능도 기대 이상 이다. 차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한 오프로더를 꽤 오래 몰았는데, 그 차보다 승차감과 주행 감각이 훨씬 좋다.”

- 한국은 경차에도 스티어링 휠 열선과 통풍 시트가 있어야 팔리는 시장이다.
“그레나디어의 타깃층은 명확하다. 어느 정도의 호불호는 예상하고 있다. 저스틴 호크바 이네오스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이 내한했을 때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그는 그레나디어가 럭셔리 시계 브랜드의 다이버 워치 같은 차라고 소개 했다. 수백 미터의 심해에서도 고장 나지 않는, 튼튼한 내구성을 가졌단 뜻이다. 한국은 스마트 워치도 잘 팔리지만, 손꼽히는 기계식 시계 시장이기도 하다. 그레나디어의 ‘가치’를 알아보는 고객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레나디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접한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는데, 하루는 모 SUV 동호회에서 단체로 관람을 오셨다. 그레나디어의 실물을 보기 위해 정기 모임(정모)을 열었다고 했다. 또 ‘꼭 1호 차를 받고 싶다’며 ‘당장 계약금을 걸겠다’고 한 고객도 기억에 남는다.”

- 신생 브랜드인 만큼 만듦새를 걱정하는 소비자도 일부 있는데.
“짐 래드클리프 회장은 튜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성능을 낼 수 있는 차를 바랐다. 직원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탐험용 자동차를 주문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업체들만 선별해서 협력을 진행했다. 이를테면 엔지니어링은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위탁 생산하는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에서 맡았다. 생산은 다임러그룹이 매각한 프랑스의 엉바슈(Hambach)에서 한다. 이뿐 아니라 프레임은 폭스바겐의 픽업트럭인 ‘아마록’의 프레임을 제작한 독일의 게스탐프(Gestamp)와, 차축은 이탈리아의 유명 트랙터 업체인 카라로(Carraro)와 협업했다. 이정도면 자동차 업계의 ‘어벤저스’라 할만 하지 않나. 만듦새나 내구성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엔진과 미션 등 동력계는 BMW에서 공급받는다고 들었다.
“위와 같은 이유다. BMW의 직렬 6기통 엔진은 평판이 아주 좋다. 2016년부터 ‘세계 최고의 엔진’ 10위 안에 꾸준히 들고 있을 정도다. ZF 8단 자동 변속기와의 궁합도 좋다. 다만 엔진을 그대로 쓰진 않고 그레나디어에 적합한 세팅으로 손봤다.”

-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자동차를 직접 고쳐 타는 사람이 드물다. AS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우선 현재 6월 완공을 목표로 서울 성수동에 전시장 겸 서비스센터를 건립 중이다. 이를 시작으로 서울에 대략 3개의 서비스센터를 운영하려고 한다. 또한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글로벌 파트너를 통해 전국 거점 도시마다 서비스망을 확보했다. 웬만한 수입차 브랜드보다 오히려 서비스가 용이할 것이라 확신한다. 업계 최고 수준인 5년의 워런티도 제공할 예정이다.”
"그레나디어, 완벽한 오프로더...다이버 워치처럼 튼튼"
- 판매 및 고객 인도 계획은.
“올해 3분기부터 사전 계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르면 4분기부터 고객 인도가 이뤄질 것이다. 다만 그레나디어는 다양한 옵션과 액세서리로 ‘나만의 차’를 완성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일부 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데, 이에 따라 약간의 대기 기간이 생길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차봇모터스의 향후 목표와 비전이 궁금하다.
“우선은 이네오스 그레나디어가 한국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앞서 말한 것처럼 차봇 모빌리티는 우리만의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이네오스를 통해 신차 사업이 자리 잡으면, 제2, 제3의 브랜드도 론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동차 문화 발전에 일조할 수 있는 브랜드 위주로 꾸준히 접촉 중이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