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인터뷰

과거 일부 부호들의 자산관리 서비스로만 여겨졌던 신탁이 점점 만인의 금융주치의로 부각되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이고, 신탁이 모두의 자산관리 지킴이로 단단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이 보완돼야 할까.
[big story]"100세 시대 고민 다양...신탁은 금융 만물상자죠"
국내 육아 상담에 오은영 박사가 있다면, 신탁 상담에는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의 수장 박현정 센터장이다. 박 센터장은 자타공인 ‘상담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하나은행 입사 후 30년간 프라이빗뱅킹(PB), 고객만족실 CS팀, SEP팀 등을 거쳐 고객의 소리를 들어 왔다. 그래서일까. 오랜 기간 ‘고객 우선’을 앞세운 그의 실무 스킬은 신탁 업무로도 오롯이 이어지고 있다.

신탁 계약의 시작도 경청(傾聽)에서 출발한다. 고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마음을 열고 나서야 비로소 상호 간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이런 박 센터장의 행보처럼 하나은행은 자산관리 설계 특화 사업을 내세워 신탁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하나은행의 성장 배경에는 다양한 신탁 상품을 통한 자산관리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히고 동시에 저베리어 중심으로 상품을 다각화해 안정성을 추구했다는 데 있다.

지난해 8월 ‘더 퍼스트(The First) 서비스’를 출시하고 신탁 서비스 대상을 VIP에서 전 고객으로 확대했고, 금융권 최초로 출시한 하나은행 유언대용신탁인 ‘하나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의 시장 초격차 구축 전략도 유효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을 영입해 고객에 생애주기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박 센터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수년째 자산관리 외에도 상속·증여 등 계약에 따라 무한대로 변신이 가능한 신탁이 100세 시대에 ‘유용한’ 안전망으로 지목돼 왔지만 국내 신탁 시장은 아직 각종 규제와 업계 간 이해관계로 온전히 날갯짓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신탁은 금융의 만물상자”라며 신탁의 필요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최근 신탁 시장이 확장되는 모습입니다. 최근 신탁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날이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화두에 응답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죠. 정부와 민간 구분 없이 미래에 다가올 변화를 준비하려는 모습이며 금융도 이에 화답을 하고 있는데, 신탁의 범위와 역할이 확장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듯합니다. 신탁은 금융의 만물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형태가 다변화되면서 기존의 가족관계등록부나 ‘상속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신탁의 유연한 구조가 주목받는 것입니다. 1인 가구, 해외 거주자, 재혼 및 이혼가정 등의 구조에서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의 고민도 신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자금을 안전하게 투자하고 관리하는 곳에서도 신탁은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품위 있는 노후를 유지하고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탁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신탁은 우리에게 큰 선물입니다. 우리 사회도 선진국처럼 신탁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요즘 신탁 서비스를 찾는 분들은 주로 어떤 니즈를 갖고 계신가요.
“사람들의 고민은 다양합니다. 1차 상속을 겪으며 가족 간 상속 분쟁부터 세금 관련 고민, 상속인이 너무 많아서 혹은 직계상속인이 없어서 고민, 치매가 걸릴까 봐 고민, 와병 중인데 상속인이 미성년자여서 고민, 장애가 있는 가족의 장래를 어떻게 지켜줘야 할지 고민,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유산기부를 실천하기 위한 고민 등이 대표적인 고민 사항들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상속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상속재산을 정리함에 있어 부담하는 세금에 대한 고민은 늘 발생합니다. 상속인들이 상속재산을 동일하게 분배받았으나 상속세 납부를 하지 않는 상속인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속세 연대납세제도를 악용하는 것이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도 많은 편입니다.”

신탁 업무에서 중요한 건 무엇이며, 통상 자문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탁 계약의 타이밍입니다. 재산을 맡기는 분은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본인의 유고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유언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언을 남긴 고인의 경우 남은 가족들이 다투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습니다.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상속 설계 시 유언과 같이 정상적인 의사결정 상태의 상황이어야 합니다. 고객들을 만나면 유언을 남길 필요성은 인정하나 아직은 내가 건강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를 자주 보곤 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에서 바라보는 저희는 지금 결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1년에 2000여 건 상담하는 저희 센터의 유형을 보면 상속 대비는 고객들 본인의 생각보다는 조금 더 젊고 건강할 때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는 신탁의 장점들이 궁금합니다.
“신탁의 장점은 보호 기능이 강력하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모 기업의 직원이 급작스럽게 사망을 합니다. 젊은 아빠의 상속인은 안타깝게 미성년 자녀뿐입니다. 이 미성년 자녀를 위한 성금을 모아주었던 회사는 자녀 앞으로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지급하길 원했습니다. 이럴 때 신탁이 제격이라는 점을 알았던 회사가 신탁을 통해 지원했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적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매월 20만 원씩 모아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한 봉안당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으로 쓰고 싶은 자녀가 있다고 가정하면, 자동이체를 통해 봉안을 위해 신탁에 가입하시면 됩니다. 신뢰가 있는 기관과 협약해 봉안 플랜을 세워드리는 것입니다.”

신탁 시장의 공급자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금융사의 강점은 무엇이고, 다른 공급자들이 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2022년 10월 신탁업 혁신 방안을 보면 병원, 법무법인, 회계법인, 특허법인 등 신탁업자가 아닌 비금융 전문기관이 신탁 업무 일부를 맡아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신탁 업무 위탁 관련 규율을 정비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조금 더 세분화돼 비금융 전문기관이 강한 부분을 고객들은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금융사와 함께 연계해 신탁 서비스를 받는다면 더욱 좋은 서비스를 받는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금융사의 강점은 판매채널이 다양하고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때 영속성이 있는 지원이 가능한 강점이 있습니다. 특히, 신탁으로 맡겨진 재산이 금전인 경우는 더욱 금융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비금융 전문기관들은 금전 운용에 대한 부분은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금융사들을 이용해야 종합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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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해 오신 신탁 계약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었다면요.
“가장 최근에 계약한 사례인데, 평생 미혼인 70대 여성분이 기억이 남습니다. 뒤늦게 좋은 인연을 만나 남편과 함께 살고 계십니다. 전 부인과 사별한 지금의 남편은 자녀가 2명이 있었습니다. 사실 현재 두 분은 법적 부부가 아닙니다. 자녀가 없는 사모님은 상속관계가 복합해지기를 원하지 않아 두 분은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유고가 발생할 때까지 본인의 치매 등에도 대비해 서로를 의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또한 두 분 모두 사망하고 난 뒤 남은 재산은 의미 있는 곳에 기부되길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신탁과 후견, 기부를 결합해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해 드렸습니다. 남편의 건강 상태에 따라 후견 문제를 결합한 신탁의 활용을 제공해 드리면서 본인이 원하는 대학병원 의료원으로 기부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고객이 그간 고민했던 상속 설계 고민을 풀어내고 엮어주는 역할을 했었던 사례가 있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신탁의 역할이 커지는 현실에서 ‘신탁업법’ 제정도 시급해 보이는데, 지지부진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2022년 10월 신탁업 혁신 방안을 보면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 신탁이 재산 관리뿐만 아니라 후견 세무·법률 서비스 등도 함께 제공하는 고령화 시대 종합 생활 관리 서비스 수단으로 진화되는 점을 인식하고 혁신 방향성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한때 신탁업자를 위한 ‘신탁업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는데, 유언대용신탁이나 성년후견지원신탁 등을 살펴보면 투자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재산을 종합적으로 신탁 받아 관리하다가 유고 시 집행을 실현하는 신탁을 투자 상품으로 동일하게 규율한다면 불합리해 보입니다. 신탁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 분야는 세제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니즈 해결에 제격인 신탁이 때로는 세제의 영역에서는 불분명한 위치로 보이는 부분 때문에 계약을 망설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적 제도와 세제가 결합되면 더욱 많은 상속 설계가 신탁으로 연계될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다양하게 신탁이 활용되고 있는데, 국내 신탁이 더 진화하기 위해서 지향할 만한 해외 사례들이 있을까요.
“일본의 경우 후견제도와 신탁을 결합한 후견제도지원신탁 설정이 많은 편인데, 이는 일정 금액 이상 피성년후견인의 재산이 있는 경우는 신탁을 통해 재산 관리를 해야 하는 가정법원의 권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감안해 최근 성년후견지원신탁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의 신탁제도가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과 금융권의 협업을 통해 국민 인식 개선을 통한 홍보가 진행되며 이를 위한 권고 등의 노력이 진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신탁은 000이다. 한마디로 정의하시자면.
“신탁은 ‘나만을 위한 재단’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의 재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죠. 소유 중인 부동산, 금전, 유가증권, 금전채권 등을 신탁에 맡기고 나만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것과 같은 식입니다. 설립해 놓은 신탁은 오롯이 내가 정한 목적대로 운영됩니다. 신임관계에 있는 신탁업자는 견고히 내 뜻을 지켜주며 안전하게 운영하다가 유고가 발생하면 사후 미리 지정한 목적을 지키기 위해 정확한 집행이 이뤄지게 되니 가장 안전한 재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누구나 신탁은 설정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사무실이나 직원이 필요없는 재단이므로 더욱 경제적입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