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동학개미가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높였다면, 3년이 지난 후 자기주도적인 투자 결정을 하는 디지털 신부유층이 새로운 디지털 자산관리의 주도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똑똑한 금융소비자의 출현으로 디지털 자산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Big story] 디지털 신부유층, 자산관리 물길 바꿨다
전통적인 방식의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활용하기보다 자기주도적인 투자 성향으로 신속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는 디지털 신부유층이 최근 빠르게 급증했다. 스타트업 창업 등으로 젊은 나이에 부를 쌓은 3040세대들이 디지털 신부유층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 거래 서비스를 선호하며, 해박한 투자 지식과 디지털 인맥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자산 배분 비중이나 투자 의사결정을 직접 내린다. 이 같은 능동적인 투자 방식으로 부를 창출하며 전통적인 자산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디지털 신부유층, 자기주도적 투자로 자산관리 변화 이끌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등장한 동학개미는 디지털 자산관리 변화를 촉발시킨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에 주식 시장의 활황으로 동학개미들은 금융 상품을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핵심 고객층으로 부상했고, 이들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사의 창구직원이나 프라이빗뱅커(PB)가 추천하는 상품을 수동적으로 가입하는 대신 투자 시점이나 상품, 회수 시점 등을 직접 결정하면서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 규모로는 온라인 펀드 잔액이 2025년까지 100조 원을 돌파하고, 온라인 전용 펀드 비율은 약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4대 은행 펀드 판매 건수 기준으로 지난 3년간(2019~2021년) 펀드 온라인 전환은 급격히 진행됐다. 이때 개설된 펀드 중 80% 이상이 온라인에서 거래됐고, 판매금액이나 누적 잔액 규모는 온라인 비중이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비대면 금융 서비스도 계좌 개설이 비대면으로 가능해진 2016년 이후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모바일 플랫폼 투자가 진행됐는데, 2020년부터는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직접판매 플랫폼을 개설하는 등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디지털 신부유층들은 거시경제 상황이나 기업 실적 전망, 신규 금융 상품 등의 정보를 활용해 신속하게 자산 비중을 바꾸고, PB들에게 종목을 추천해 달라고 하기보다 자기주도적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은 PB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직접 대면하지 않고 비대면 상담을 선호한다.

또 필요한 질문들은 핀포인트 상담으로 대체하는 등 신속한 상담과 결정을 선호한다. 이러한 능동적인 투자 방식은 투자 자산의 다변화로 나타나고 있는데 전통적인 투자 자산인 국내 주식 투자 일변도에서 해외 주식, 채권, 금융 상품 등 좀 더 다양해졌다.

해외 주식도 미국 주식 외에 프랑스나 독일 주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과거 엄지족이 저렴한 수수료를 찾는 것과는 달리 디지털 신부유층 고객들은 신속한 투자 정보를 받고, 원하는 시간대에 PB와 상담할 수 있는 디지털 프리미엄 자산관리에 대한 니즈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이 디지털 고객을 대상으로 지난 1분기에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물건을 구매하고 거래가 종료되는 온라인 쇼핑에서는 주로 구매 편의성과 가격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금융 상품에 투자한 경우 앞서 말한 중요한 가치 외에도 가격 변동에 따른 사후관리가 매우 중요해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경우 적시에 지속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온라인 증권 거래와 관련해 가장 불편한 점으로, 엄선된 정보 및 상담 채널 부족이 언급됐다. 이 때문에 응답 고객의 65%는 일부 높은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선별된 투자 정보와 PB 상담을 제공받고 싶다고 답했다.

온라인 거래에 있어서 ‘프리미엄 서비스’는 고민 발생 시에 해결이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77.1%로 압도적이었다.

이찬우 삼성증권 디지털부문장은 “금융 투자는 기회비용이 크고, 투자 결정 및 투자 후에도 숙고가 필요한 고관여 상품이 많다”며 “저렴한 수수료로 혼자 투자 결정을 내렸던 과거의 엄지족 투자자와 달리, 휴먼터치를 활용한 컨설팅과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제공하는 투자 정보에 대한 ‘디지털 부유층’ 고객들의 니즈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Big story] 디지털 신부유층, 자산관리 물길 바꿨다
글로벌 금융 회사들도 맞춤형 자산관리 전략으로 대응

국내 디지털 신부유층이 자산관리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처럼 글로벌 금융 시장은 이미 변화의 급물살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캡제미니(Capgemini)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자산관리 트렌드로는 자산관리 고객군이 인구통계적 특성과 고유 니즈에 따라 다변화되는 추세다.

글로벌 금융 회사들은 기존에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고객을 분류해 왔지만 최근 뚜렷한 특성을 지닌 부유층이 출연하면서 맞춤형 자산관리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해외에서 대중부유층으로 불리는 이들은 전 세계 인구의 11%를 차지한다.

이들은 디지털 채널에 익숙하지만 개인화된 맞춤형 자문 서비스를 요구하며 전담 자산관리사를 이용하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이러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은 대중부유층 대상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글로벌 프라이빗 웰스 팀을 2배 규모로 늘렸고, 영국의 로이드(Lloyds) 그룹은 대중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도 MZ(밀레니얼+Z) 세대가 자산관리 사업의 주요 고객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20~30년간 베이비부머의 자산을 이전받아 자산관리 사업의 주요 고객층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의 MZ들의 경우 자산관리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비용에 민감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 등 디지털 채널을 이용한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EY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MZ세대의 53%가 높은 수수료와 불투명성 등의 이유로 지난 1년간 자산관리 회사를 바꿨다고 응답했다. HSBC는 18세부터 25세까지의 고객 대상 서비스로 ‘트레이드 25(Trade 25)’를 출시해 수수료 면제, 무료 자산관리 교육 등 비용 친화적인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는 등 고객 맞춤형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회사인 UBS는 이보다 빠르게 디지털을 활용한 대중부유층 고객 기반을 확대하면서 자산관리 부문에서 큰 폭의 영업이익 개선을 시현했다. 이때 UBS는 과거 경쟁사 대비 취약했던 대중부유층 서비스 확장을 위해 자산관리 플랫폼 옵션을 확대하고 온라인 채널에서 양질의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을 유인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최소투자금액과 온라인 서비스 선호도에 따른 3개의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선택권을 다양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고객 니즈별로 차별화된 영업 방식을 추진하는 자산관리 비즈니스 전략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Big story] 디지털 신부유층, 자산관리 물길 바꿨다
금융사들, ‘초개인화’ 트렌드 접목한 서비스 강화

자산관리에 대한 눈높이가 커지면서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에도 개인 맞춤형 서비스 부문이 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능한 많은 고객들에게 저비용으로 각 고객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 디지털 자산관리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앞으로 ‘초개인화’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 회사들이 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상품 검색 과정의 단순화, 자동화, 투자 목표 및 투자 성향 등을 파악해 즉각적인 목표 실행을 지원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또한 투자 성향이나 니즈 파악을 통한 상품 판매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진단, 리밸런싱에 따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방식이 디지털 자산관리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신우석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근본적인 변화, 미래 경제 환경에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필수적 과제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회사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맞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