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을 대신해서 상속을 받도록 하는 것이 ‘대습상속(代襲相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습상속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특별수익’, ‘유류분’ 등 각종 이해관계와 충돌했을 때 셈법은 매우 복잡해진다.
대신 상속받는 ‘대습상속’, 한국의 세법은
1945년생 A는 부인과 사이에 아들 B를 비롯해 5남매를 두었다. A는 2006년부터 2012년 사이에 자신의 재산 중 70%에 해당하는 부동산과 현금을 B에게 증여했다. B는 2013년경 암으로 사망했는데, B의 상속인으로는 아내 C와 아들 D가 있었다. 한편 A는 2015년경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살다가 2017년경 사망했는데, 사망 당시에 A 명의로 된 재산은 없었고, 이혼한 부인에게 줄 위자료 채무 10억 원만 남아 있었다.

A보다 먼저 사망한 B를 제외한 A의 나머지 자녀 4명은, A가 생전에 B에게만 재산 대부분을 증여하는 바람에 자신들의 상속받을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B의 처 C와 아들 D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했다. 이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상속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던 사람이 상속 개시 전에 어떤 사유로 상속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다른 사람이 그 상속인을 대신해서 상속을 받도록 하는 것을 ‘대습상속’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 손자가 할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게 하는 제도다.

할아버지가 사망할 때 상속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아버지를 ‘피대습인’이라고 하고,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그 순위로 할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손자를 ‘대습상속인’이라고 한다. 대습상속제도는 본래의 상속인이 먼저 사망했다고 해서 그 자녀들까지 전혀 상속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찍이 로마시대부터 있던 제도이고, 대습상속인이 되는 범위에 차이가 있을 뿐 많은 나라에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대습인이 사망했거나,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는 경우(상속결격)에, 피대습인의 직계비속(자녀나 손자 등)과 배우자에게 대습상속을 인정하고 있다.

A로부터 상속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던 B가 피상속인 A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B의 배우자 C와 아들 D가 대습상속인이 된다. 그래서 A의 상속재산에 대해 B의 형제자매 4명과 함께 공동상속인이 된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법정상속분은 원칙적으로 균등한데 피상속인의 배우자에게만 50%를 더해 주기 때문에 각 상속인들은 5분의 1씩 상속하게 되고, B 몫의 5분의 1을 배우자 C와 아들 D가 각각 5분의 3, 5분의 2만큼 나누게 돼서, 결국 B를 제외한 A의 자녀들은 각 5분의 1씩, C는 25분의 3(B몫 1/5×3/5), D는 25분의2(1/5×2/5)가 법정상속분이 된다.

상속재산을 법정상속분에 따라서만 나누게 되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불공평한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상속인은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재산을 많이 증여받은 사람도 있고, 어떤 상속인은 다른 상속인들과 달리 피상속인을 모시고 살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특별히 부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재산을 많이 받은 사람은 특별수익을 감안해 법정상속분보다 적게,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상속재산의 가치를 보존·증가시킨 사람은 기여분을 인정해 법정상속분보다 더 많이 상속받도록 조정한다.

문제는 피대습인 B가 대습 원인(B의 사망)의 발생 이전에 피상속인 A로부터 받은 생전 증여를 대습상속인 C와 D의 특별수익으로 보아, C와 D가 실제로 상속받는 몫을 줄일 수 있는가다.

이에 대해서 우리 대법원은 만일 피대습인 B에 대한 생전 증여를 대습상속인 C·D의 특별수익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C·D는 B가 살아 있었다면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 이상의 상속재산을 그의 대습상속인들이 취득하게 돼서 불공평하게 된다고 판결했다.
대신 상속받는 ‘대습상속’, 한국의 세법은
만약 특별수익을 받은 것이 피대습인이 아니라 대습상속인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아버지 B의 생전에 할아버지인 A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은 사람이 B가 아니라 손자 D였는데, 그 이후 아버지인 B가 죽고 이어서 A가 사망했다면, D가 받은 재산을 A의 공동상속인들과 사이에서 특별수익으로 보고 D의 상속분이 줄어들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 우리 법원은 피대습인이 받은 생전 증여와는 달리, 대습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은, 증여 시점에 상속인의 지위에서 받은 것이 아니어서 특별수익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는 대습상속인이 증여받은 시점에는 상속인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에 대해서 공동상속인의 지위를 얻게 된 이상, 다른 상속인들과의 형평을 고려해 이 경우에도 특별수익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시 앞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A가 사망한 시점에 A 명의로 남아 있는 상속재산이 많았다면 B가 받은 특별수익을 감안해서 C와 D가 받을 상속분을 줄이거나 아예 C와 D를 배제하고 남은 상속재산을 A의 나머지 상속인들끼리 나누면 된다. 그런데 A의 나머지 자녀들이 나누어 가져야 할 상속재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빚만 10억 원 남은 것이 문제였다.

유류분 제도 악용 사례도 유의해야
피상속인이 특정 상속인에게만 생전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증여(遺贈)함으로써, 그러한 증여나 유증이 없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자신의 몫을 못 받게 된 경우, 그중 일정 부분을 그 특정 상속인으로부터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유류분(遺留分)’이라고 한다.

최근 유류분에 대해서는 위헌이라서 폐지해야 한다거나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행 민법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자녀와 같은 직계비속이나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피상속인의 부모와 같은 직계존속이나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이 유류분으로 보장된다. 따라서 A의 공동상속인들은 자신의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10분의 1씩만큼의 유류분 권리를 가진다.

유류분의 액수와 그 부족액은, 증여나 유증이 없었다면 상속 개시 당시 남아 있었을 재산(유류분 계산을 위한 기초재산)에 각자의 유류분 비율을 곱해서 계산하게 된다. 유류분 계산을 위한 기초재산에 더하는 ‘증여’에는 상속인에게 한 증여뿐만 아니라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한 증여도 포함된다.

그런데 상속인 중 어느 한 사람에 대해서 한 생전 증여는 그것이 언제 이루어졌든 제한 없이 모두 포함되지만, 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 예컨대 대학교에 기부한 것은 그렇지 않다.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원칙적으로 상속이 개시(피상속인의 사망)되기 1년 전의 것까지만 포함되고, 그 이전에 한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증여를 한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그 증여로 인해서 다른 상속인들에게 손해가 생길 것을 알았을 경우에만 포함된다.

C와 D는 대습상속인이기는 하지만 ‘상속인’이고,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B가 A로부터 받은 생전 증여를 C와 D의 특별수익으로 보게 되면, 이를 유류분 계산을 위한 기초재산에 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A의 나머지 자녀들이 C나 D로부터 받을 유류분 반환액도 따라서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C와 D가 B를 거쳐 A로부터 재산을 이미 많이 취득했기 때문에, A의 다른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공평해 보인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C와 D가 A의 재산에 대해 상속포기를 한 것이다. C와 D의 입장에서만 보면, A로부터 이미 받은 것이 많을 뿐 아니라, A가 사망한 때에는 빚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법률상 상속포기를 하면, 상속포기를 한 사람은 상속이 개시된 시점, 즉 피상속인이 사망한 시점으로 돌아가 애초부터 상속인이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B가 받은 생전 증여를 C와 D에 대한 특별수익로 취급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C와 D가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애초부터 상속인이 아닌 것으로 되고, 이에 따라 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가 되기 때문에, 그 증여가 A의 사망 시점으로부터 1년 내에 행해졌거나 증여에 관여한 사람 모두가 그 증여로 인해 다른 상속인들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았어야만 유류분 계산에 포함되고 반환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원은 A가 B에게 마지막으로 증여한 시점이 A의 사망 5년여 전이고, B에 대한 증여 이후에도 A에게는 상당한 재산이 남아 있었을 뿐 아니라 그중 일부는 A의 다른 자녀에게 증여되기도 했기 때문에, A의 B에 대한 생전 증여로 인해 다른 상속인들에게 어떤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A의 나머지 자녀들은 C와 D를 상대로 유류분을 전혀 반환받지 못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있다. 이렇게 되면 생전 증여를 많이 받고 나서 유류분 청구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속포기를 한 사람을 보호하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유류분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상속포기 제도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서다. 결국 유류분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 법률 규정을 정비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