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차를 선호하는 사람과 레저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픽업트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최근 국내에서 픽업트럭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세단과 SUV가 주도하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변방에 있던 픽업트럭이 빈틈을 파고드는 형국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에서 픽업트럭은 ‘짐차’ 혹은 ‘화물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국내에 불고 있는 SUV ‘바람’이 크고 높은 차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면서 픽업트럭 시장의 분위기까지 바꿔놓았다. 이뿐 아니라 지난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캠핑과 차박 등의 야외 레저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가 크게 늘면서 큰 차체와 높은 활용도를 앞세운 픽업트럭이 ‘레저용 차량’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픽업트럭은 특히 ‘세컨드 카’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상용차로 분류돼 연간 자동차세가 2만8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별소비세와 교육세는 면제되고, 취득세도 승용차(7%)보다 낮은 5% 수준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픽업트럭의 총 판매량 2만9685대였다. 그중 85.5%인 2만5388대가 쌍용자동차의 ‘렉스턴 스포츠’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렉스턴 스포츠의 인기가 이렇게까지 높은 이유는 레저와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9년 7월까지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픽업트럭은 렉스턴 스포츠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2019년 8월 쉐보레가 ‘콜로라도’를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2020년 지프가 ‘글레디에이터’를, 2021년 포드가 ‘레인저’를 각각 국내에 도입됐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제너럴모터스(GM)의 플래그십 SUV 브랜드 GMC가 초대형 픽업트럭 ‘시에라 드날리’를 선보이며 풀사이즈 픽업트럭 시장의 문까지 열어젖혔다. 국내 최초로 ‘프리미엄’ 픽업트럭의 이름을 단 시에라 드날리는 1억 원에 가까운 가격표를 붙였음에도 출시와 동시에 초도 물량이 모두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 놀라운 건, 올해 연말까지 준비된 물량도 예약판매가 끝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하반기에도 새로운 픽업트럭 출시 소식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당장 10년 만에 풀체인지를 거친 신형 콜로라도가 국내 출시를 준비 중이다. 영국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공식 수입사인 차봇 모터스에서도 ‘올 뉴 그레나디어 쿼터마스터’의 출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의 신생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리비안’이 한국에서 상표권 출원을 마쳐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도 픽업트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 브랜드는 KG모빌리티다. 올해 5월 ‘렉스턴 스포츠&칸 쿨멘’을 출시한 데 이어, 2025년 출시 목표로, 토레스를 기반으로 한 전기 픽업트럭(프로젝트명 O100)을 개발 중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기아의 픽업트럭 출시 소식이다. 내년 12월부터 경기도 화성공장에서 픽업트럭 모델인 ‘타스만’을 양산키로 한 것이다. 기아가 국내에서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것은 지난 1981년 ‘브리사’를 단종한 이후 무려 43년 만의 일이다.

- 한국에서 만나는 픽업트럭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KG모빌리티, 렉스턴 스포츠&칸 쿨멘 | 렉스턴 스포츠&칸은 ‘K-픽업트럭’의 대명사다. 국내 픽업트럭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다. 지난 5월에는 하이엔드 모델인 ‘렉스턴 스포츠&칸 쿨멘’을 출시하며 수입 픽업트럭의 공세를 방어하고 나섰다. 옥타곤 라디에이터 그릴과 수직·수평의 대비를 활용한 분리식 범퍼가 ‘상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여기에 18인치 블랙 휠과 오프로드 타이어, 차량의 하단까지 덮는 클린실 도어 등을 통해 웅장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국내 픽업트럭 중 처음 적용된 최첨단 주행안전보조(ADAS) 시스템도 눈에 띄는 부분. 긴급 제동 보조 기능과 앞차 출발 경고, 차선 이탈 경고 등 다양한 안전 주행 기능을 만족한다.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쉐보레, 콜로라도 | 콜로라도는 탄탄한 기본기와 강력한 성능이 돋보이는 쉐보레의 대표 중형 픽업트럭이다. 3.6리터 6기통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하이드라매틱 8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하고 최고 출력 312마력, 최대 토크 38kg·m의 힘을 발휘한다. 정통 픽업트럭답게 최대 3.2톤의 초대형 카라반도 ‘거뜬하게’ 견인한다. 여기에 엔진 부하에 따라 6개의 실린더 중 4개의 실린더만 활성화시키는 ‘첨단 능동형 연료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 탁월한 연료 효율까지 확보했다. 정말 다 좋은데, 더 좋은 신형 모델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래도 이 가격에 ‘수입!’ 픽업트럭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강력한 소구점이다.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GMC, 시에라 드날리 | 시에라 드날리는 국내 최초의 풀사이즈 픽업트럭으로 6m에 육박한 길이와 2m가 훌쩍 넘는 너비를 만족한다. 거대한 차체는 6.2리터 V8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10단 자동 변속기가 움직이는데, 픽업트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승차감이 압권이다. 짐도 많이 싣는다. 광활한 적재 공간에 최대 900kg 이상의 짐을 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강성 풀 박스 프레임 보디로 만들어 4톤에 가까운 견인력도 확보했다. 반면 실내는 ‘프리미엄’이라는 이름답게 고급스럽게 꾸몄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곳에 가죽과 나무를 두르고,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13.4인치의 큼직한 컬러 터치스크린을 장착했다. 레벨 2 수준의 최첨단ADAS 시스템을 갖춰 의외로 운전도 쉽다.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지프, 글레디에이터 | 글레디에이터는 지프의 스테디셀러 SUV 모델인 랭글러를 기반으로 만든 중형 픽업트럭이다. 랭글러의 차체를 그대로 이용하고 뒤쪽에 짐칸 형태의 트럭 베드를 붙여 캠핑 장비는 물론 오토바이도 적재가 가능하다. 눈에 띄는 건, 경쟁 차종 중 유일하게 지붕(하드톱)을 오픈할 수 있다는 사실. 실내에서 천장에 고정된 레버를 하나씩 풀고 밀어 올리면 멋진 컨버터블 자동차로 변신한다. 지프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오프로드 성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례로 루비콘에 장착된 4:1 ‘락-트랙 HD 풀타임 4WD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해 풀-타임 토크 관리가 이루어져 바퀴가 마찰이 낮은 조건에서도 최적의 접지력을 구현한다.
픽업트럭, '레저카'로 이유 있는 변신
포드, 레인저 랩터 | 포드는 지난 3월 신형 레인저를 국내 도입했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판매하는, 포드의 베스트셀링 모델 중 하나다. ‘와일드트랙’과 ‘랩터’ 2가지 트림으로 선보이는데, 그중 랩터는 포드의 고성능 브랜드로 맹수처럼 오프로드를 내달리는 픽업트럭에만 허락된 이름이다. 험로 주행에 특화됐다는 건 총 7가지나 되는 주행모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반도로를 위한 노멀과 스포츠 외에 오프로드를 위한 바하·록 크롤·샌드·머드 등의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그중 바하와 록 크롤 모드는 랩터의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더욱 극대화한다. 오프로드 주행 시 유용한 ‘리어 디퍼렌셜 락킹’ 기능과 휠에 부착된 패들 시프터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폭스 쇼크 업소버 서스펜션을 장착해 험지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