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와인 향이 감도는 도시 포르투에서는 포트와인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와인의 성지, 포르투에 빠지다
“포르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웰컴 와인 드시겠어요?”
우선 와인부터 권하고 보는 호텔 직원의 인사에 ‘와인의 도시’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한국에서 포르투까지는 꽤나 먼 여정이다. 코로나19 때는 인천에서 리스본까지 닿는 직항 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을 경유해야 하는 여정. 직원이 건넨 달콤한 포트와인 한 잔을 마시자, 인천을 출발한 이후 20시간 동안 쌓인 피로가 조금 녹는 듯했다.
만약 ‘와인 투어’를 떠난다면 전 세계 어느 곳을 고르겠는가. 설명이 필요 없는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 부르고뉴, 신대륙 와인의 자존심 미국 나파밸리, 맛의 고장 이탈리아 토스카나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 역시 와인의 성지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포트와인(port wine)’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곳이기 때문이다.
포트와인은 주정강화 와인이다. 이는 일반 와인에 브랜디처럼 도수가 높은 술을 넣고 숙성한, 달콤한 와인을 뜻한다. 따라서 일반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13% 정도인 데 비해, 포트와인의
알코올 함량은 19~20%다. 그냥 마셔도 맛있는 와인에 왜 브랜디를 더했을까.
이 답을 알려면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포르투는 ‘항구’라는 뜻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오래전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다.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로, 아프리카부터 아시아까지 다양한 나라의 상인으로 북적이던 도시였다.
이곳이 와인의 도시로 거듭난 것은 14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 계기가 됐다. 프랑스 와인을 즐겨 마시던 영국인들이 당장 와인을 구할 길이 없자, 포르투로 이주해 와인을 생산하고 영국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
와인의 성지, 포르투에 빠지다
그러나 배가 영국까지 닿는 길이 워낙 멀다 보니 와인이 상하는 일이 많았다. 수송하는 동안 와인이 계속 발효하면서 지나치게 익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고안한 묘책이 브랜디다. 알코올 함량 40%에 육박하는 높은 도수의 술을 섞으면, 발효에 관여하는 와인 속 효모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반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는 높고, 브랜디의 달콤함이 남아 있는 새로운 와인, ‘포트와인’이 탄생했다.
포트와인은 이내 영국은 물론 전 세계로 날개 돋친 듯 팔려갔다. 도루 남쪽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에 와인저장고가 들어선 것도 이때쯤이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포트와인 브랜드의 저장고가 촘촘히 자리 잡고 있는데, 30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진 공간 또한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유서 깊은 도시에 와인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리가. 그 주인공은 2020년 8월 개관한 월드 오브 와인(World Of Wine·WOW). 포르투갈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의 수백 년 넘은 와인 창고를 개조해 현대적인 시설로 재탄생시켰다.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 7곳과 레스토랑, 바 12곳을 갖춘 방대한 시설이다.
한자리에서 와인을 배우고,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에 20시간의 여정을 감수하고 포르투로 향한 이유다.
와인의 성지, 포르투에 빠지다
와인 초보부터 마니아까지
‘와인 투어’를 떠나는데 미리 공부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런 걱정을 안고 있다면 접어 두어도 좋다. 이곳의 기획 의도가 와인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기 때문. 와인 초보도 쉽게 와인을 접할 수 있는 입문 프로그램부터 마니아들을 위한 심화 과정까지 다채로운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만약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정도만 구분할 수 있는 초보라면 ‘와인 익스피리언스’부터 둘러보자. 이곳은 와인의 A부터 Z까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와인박물관이다.
와인은 어떤 포도로 어떻게 만드는지, 날씨와 토양은 와인의 맛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와인의 맛은 어떻게 음미하면 되는지 등 와인에 대한 기초 교양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인터랙티브 영상을 통해 개인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해주고, 와인의 아로마를 코로 마셔보도록 하는 등 오감으로 와인을 느낄 수 있는 섹션이 마련돼 있다. 이곳을 한 바퀴만 둘러보고 나면 빈티지, 품종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던 와인 용어가 어느새 친숙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로 와인을 배웠다면 이제 코와 입으로 와인을 느낄 차례. 직접 와인이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와인을 맛볼 차례다. WOW와 붙어 있는 ‘테일러스’로 향했다. 테일러스는 1692년 문을 연 브랜드로, 세계적인 포트와인 생산자이자 포르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인 생산자 중 하나다. 동시에 WOW를 기획한 지주회사 플랫게이트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접 와인이 숙성되는 창고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한국어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숙성고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으로 농축된 포트와인의 달콤한 향기가 밀려들어 왔다. 이곳은 18세기 초반에지어진 곳으로, 현재도 테일러스가 판매하는 포트와인을 숙성하고 있다.
와인 5톤, 즉 13만 병 분량의 와인을 한 번에 숙성할 수 있는 거대한 오크통 등 볼거리도 많다. 투어의 마무리는 시음 시간. 화이트 포트와인, 레드 포트와인을 맛보니 박물관과 투어를 통해 들었던 설명이 입안에서 입체적으로 이해되는 느낌이다.

글 김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