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시니어타운, 자발적 상속 등에 관한 새로운 산업이 부각되고 있다. 생전에는 자녀들에게 부양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사후에는 상속 분쟁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고령층의 니즈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상속인들의 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왜일까.
부동산 상속 분쟁을 막는 신탁 활용법은
갑은 슬하에 을, 병, 정의 세 자녀를 두고 있었다. 갑은 병, 정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평소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을에게 자신의 재산 중 가장 큰 지분을 물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갑은 을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상속재산 중 자산 가치가 가장 높은 A부동산을 물려주기로 하는 내용으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작성하고 사망했다.

병, 정은 갑이 사망하자 A부동산에 대해 법정상속인의 지위로 을, 병, 정 각 3분의 1 지분대로 상속등기를 했다. 을은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병, 정에게 유언장을 보여주며 상속등기를 말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평소 을과 사이가 좋지 않던 병, 정은 갑의 유언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을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을은 갑의 유언에 따라 A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 병, 정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그러던 중, 갑 생전에 갑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A부동산 세입자가 을에게 임대차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기 위해 병, 정의 동의를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금융기관에서는 대출 연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임대인 전원의 동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을은 병, 정에게 가정 사와 관계없는 제3자인 세입자를 위해 전세자금대출 연장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원만히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을은 세입자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설명하니, 세입자는 을에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을은 당장 세입자에게 지급할 임대차보증금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 됐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법적 분쟁 중인 A부동산에 입주할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을은 A부동산에 대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못하면 새로운 법적 분쟁이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병과 정은 A부동산에 대해 어떻게 상속등기를 할 수 있었을까. 원칙적으로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은 등기를 해야 그 효력이 생기지만, 상속의 경우에는 등기를 하지 않아도 상속인이 상속재산인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민법 186조·제187조 본문).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상속으로 인한 권리의 이전등기, 즉 법정상속지분등기는 상속을 증명하는 정보를 첨부하면 상속인이 단독으로 신청할 수 있다(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3항).

이와 같은 근거로 갑의 유언이 있더라도 병, 정은 A부동산에 대해 을, 병, 정 각 3분의 1 지분대로 상속등기를 경료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을은 병, 정을 상대로 갑의 유언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상속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진행한 것이었다.

임대차보증금반환 채무의 성격
임대차보증금반환 채무의 성질에 대해 판례는 “건물의 공유자가 공동으로 건물을 임대하고 보증금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임대는 각자 공유지분을 임대한 것이 아니고 임대목적물을 다수의 당사자로서 공동으로 임대한 것이고 그 보증금 반환 채무는 성질상 불가분채무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98.12. 8. 선고 98다43137 판결). 불가분채무란 말 그대로 나눌 수 없는 채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채권자는 각각의 채무자에게 채권의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

앞 사례의 경우, A부동산은 을, 병, 정의 공유지분으로 등기가 돼 있다. 등기부등본상으로는 A부동산 임대인의 지위는 을, 병, 정이 공동으로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입자 입장에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 받기 위해서는 을, 병, 정 모두를 상대로 보증금 전액을 청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갑이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했다면 어땠을까. 먼저, 갑이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A부동산 소유권을 을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러한 문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갑이 수탁자와 A부동산에 대해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A부동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이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갑이 사망하게 되면, 신탁 계약에 따른 수익자인 을만 수탁자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으므로, 갑의 다른 상속인인 병, 정은 A부동산에 대해 상속등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을과 세입자 사이의 보증금 반환에 관련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탁자는 유언대용신탁 계약에 따라 을에게 A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다. 을은 수탁자로부터 A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받게 되면, 임대인의 지위도 승계받기 때문에 세입자의 전세자금대출 연장에 동의해주는 것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상속등기 및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와 관련된 사례를 예시로 들었지만, 실무상 상속인들이 상속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상속인의 대출채무를 정리하는 과정인데, 법률적으로 대출채무는 별도의 상속재산분할협의나 유언 등이 없다면, 법정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지분대로 상속이 된다.

피상속인의 대출채무에 대한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서 직접 상속인 중 1인이 방문해서 납부를 하거나, 직접 방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속인 중 1인의 명의로 채무 인수를 하는 방법 등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상속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대출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과 상속인 중 1인만 채무 인수가 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이처럼 고인을 떠나보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속인들 입장을 중심으로 상속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권남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