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혁우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동산자문팀 과장
남혁우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동산자문팀 과장
“30평대가 13억이라고요?”

로또 청약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던 걸까.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 불리던 둔촌주공의 분양 성적표는 참담했다.

최대 기대주로 불리던 둔촌주공의 고분양가 논란에 이어 일부 평형은 미분양이 발생했고, 수도권 분양 시장 앞날에 고행길을 예고했다. 언제일지 모를 고행길에 반전의 기회를 준 것은 2022년 11월 시장금리 하락과 함께 시작된 현 정부의 첫 규제 완화 정책이었다.

15억 원 초과 아파트의 대출 규제 완화, 양도소득세 비과세 조건 완화 등 부동산 정책 변화에 힘입어 가격 낙폭이 컸던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갈아타기 목적의 실수요가 유입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은 더뎠지만, 꾸준했던 기축 아파트 시장의 회복은 고행길을 동고동락하던 분양 시장에 점차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동산 규제 완화…분양 시장 다시 활기?

2023년 새해 벽두부터 발표된 1·3 부동산대책을 계기로 분양 시장의 본격적인 열기가 시작됐다. 비규제 지역으로의 전환(대출·세금·청약자격 조건 완화), 분양권 전매제한 기한 완화,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 기준 폐지, 무순위 청약자격 요건 완화 등을 골자로 한 1·3 부동산대책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의 강력한 규제 완화 정책이었다.

수도권 주요 인기 지역은 지방과 동일한 규제 청정 지역이 됐으며, 실수요뿐만 아니라 분양 예비 당첨을 노리는 지방 투자 수요의 유입을 촉진시켰다. 높은 대출한도를 활용해 적은 초기 자본금으로 신축 아파트를 취득할 수 있는 분양 시장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수도권의 국민 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 분양가가 10억 원이었던 때보다 높아진 분양 가격은 시장에 찬물을 끼얹기는커녕 매수 심리를 자극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잇따른 분양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인근 신축 아파트보다 비싼 분양 단지가 흥행하는 등 잠재 수요자들의 조급한 마음에 불을 지르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을 크게 하회하는 공급 절벽 현상도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결국 고분양가에 적응한 청약 대기 수요는 급증했고, 분양 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분양가가 비싸지 않냐던 회의적인 시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수요자들은 분양권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뉴노멀 시대, 고분양가 이어지나

‘인플레이션’의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하는 높은 분양가는 분양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가격 동향 자료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 분양가가 3.3㎡당 1625만 원으로 전년 동월 1453만 원 대비 11.8% 상승했다.

공사비, 인건비 등 원가 상승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사업자가 주택사업 이익률 개선을 위해 분양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양가상한제 미적용 지역, 분양가에서 건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수도권 외곽 및 지방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곽은 이제 3.3㎡당 최소 3000만 원 이상(경기도 2500만 원 이상)으로 높아진 분양가의 단지도 분양에 성공하며, 새로운 가격의 기준을 형성했다. 입지에 따라 최소 10억 원에서 13억5000만 원(전용면적 84㎡ 기준) 분양 가격은 더 이상 시장참여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가격이 된 것이다.

원가가 상승했다고 마냥 분양가를 올라갈 수도 없기에 원가 상승은 신규 아파트 공급에 악재로 작용하게 됐다. 줄어드는 공급량으로 인해 최근 신축했거나 분양하는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몸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의 높아진 분양가와 공급 부족은 수요자들로 하여금 나중엔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 또한 지역 내 신축 아파트 하한가 상승에 영향을 주고, 분양권에는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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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시장, 규제 완화 법안 계류 등 리스크 상존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분양 시장에 무턱대고 참여하는 것이 정답일까. 모든 일이 그렇듯 기회가 있는 만큼 시장이 간과하고 있는 잠재적 위험 역시 상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규제 완화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염두해야 한다. 1·3 부동산대책 때 발표됐던 분양가상한제 지역 실거주 의무 폐지는 아직 법안이 개정되지 않았다. 투기 수요 양성이라는 야당의 반대로 정책적으로 표류 중이다.

해당 법안(주택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시기가 도래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매가 불가능해 분양 시장에 혼선을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분양권 1년 미만·이상 보유 여부에 따라 적용되는 단기 양도세율 인하 안건 역시 시행 시기가 불투명하다. 해당 법안의 경우 지난 7월 세제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단기 양도세율이 적용될 경우 높은 세율로 인해 분양권 거래가 침체할 수 있다.

둘째, 지역별 규제 차등화 리스크다. 수도권 기축 시장이 향후 과열된다면 수도권에 대한 핀셋 규제가 재도입될 수 있다. 반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지방의 경우 미분양 양도소득세 감면과 같은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 수요가 지방으로 이탈하고, 실수요자들이 매매가 아닌 임차를 선택함에 따라 수도권 부동산 경기가 악화될 수 있다. 이후 수도권 기축 아파트 시장이 침체된다면 미분양 발생 및 매도 재고 물량 증가의 악순환으로 분양 시장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변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다. 분양권의 특성상 당장의 사용 가치 없이 10~20%의 계약금만 가지고 프리미엄(웃돈)을 거래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사실상 파생상품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시장 상황이 침체되면 공포 심리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고, 미분양 등의 사유로 가격 하락에 취약한 변동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버블 세븐 지역 중 대표적인 고분양가 지역이었던 경기도 용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10년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침체되자 용인 대형 평형 분양 아파트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발생했고, 분양 가격은 결국 급락했다. 2020년이 돼서야 당시 분양가 수준의 시세를 회복했다. 원가 상승과 청약 열기로 형성된 고분양가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한순간에 시한폭탄으로 돌변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분양 시장 옥석 가리기, 신중함 필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분양 시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이미 준공된 대단지 또는 고급화(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를 눈여겨보자. 공사비 상승으로 동일한 상품성을 지닌 아파트를 신축할 경우 공급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따라서 고급화된 대단지 아파트는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비교적 가격 방어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실수요가 탄탄한 입지를 우선적으로 선별할 필요가 있다. 1순위 청약 경쟁률 및 평균 가점을 맹신해 조급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비규제 지역의 경우 세대원 청약 또는 추첨제로 인해 가수요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분양단지의 초기 분양률이나 정당 계약률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또한 미분양 이후 선착순 분양에 돌입한 사업장의 경우 계약금 정액제, 이자 지원 등 단순 조건 변경으로 높은 계약률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실수요층이 선호하는 입지로 섣불리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넓은 시야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분양 예정 단지의 분양가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입지가 양호한 신축 아파트도 함께 비교해봐야 한다. 향후 해당 지역의 분양 및 입주 예정 물량이 적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글 남혁우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동산자문팀 과장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