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빼니 오롯이 생김새가 드러난다. 올해 출시한 자동차 중 가장 아름답거나 의미 있는 디자인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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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UGEOT 408
전통적으로 푸조는 자동차 이름 가운데에 ‘0’을 하나 넣으면 세단, ‘0’을 2개 넣으면 SUV라는 작명법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올해 출시한 408은 조금 색다르다. 세단이라기엔 지상고가 높고, SUV에서나 봤음 직한 플라스틱 클래딩이 차체 하단을 감싸고 있다. 게다가 지붕은 쿠페처럼 극적으로 떨어진다. 한마디로 세단과 SUV, 쿠페와 해치백을 한데 섞은 디자인이다. 매력이 집중되는 건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새로운 엠블럼을 중심으로 폭이 좁아지며 빗살처럼 내려오는 무늬가 공격적이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자아낸다. 예리한 조각도로 깊게 파낸 듯 힘이 느껴진달까. 한껏 치켜뜬 헤드램프 아래로 송곳니처럼 길게 빠져나온 주간 주행등은 브랜드의 상징인 사자와 절묘하게 부합한다. 뒷모습에도 사자 발톱을 연상시키는 헤드램프를 심는 등 여지없이 사자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사자가 고양잇과여서인지 고양이 귀 모양의 루프 스포일러를 달았다. 디자인적 요소로만 생각했는데, 0.28Cd의 낮은 공기저항 계수를 달성하는 데 일조하는 ‘장치’라는 것이 푸조의 설명이다. 이런 대범함을 스스럼 없이 디자인하는 브랜드는 푸조말고 또 있을까. 자동차 역사상 유사한 디자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낯설지만, 이 낯섦이 멋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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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OTA Crown
크라운은 토요타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이다. 1955년 토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로 출시된 이후 16세대, 약 7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일본 직장인에게 ‘성공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그랜저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잘 알고 있듯,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신형 그랜저를 선보이며 1세대 그랜저, 그러니까 일명 각 그랜저의 디자인 전통을 계승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토요타는 정반대 길을 선택했다. 대표적 플래그십 모델로 세단과 SUV를 결합한 크로스오버 모델을 만들었다(정확히는 세단과 에스테이트, 크로스오버, 스포츠의 네 가지 라인업을 선보였고, 그중 크로스오버 모델이 한국 땅을 밟았다). 전통적 세단에 대한 재해석을 거쳐 ‘젊고’, ‘미래지향적’인 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브랜드의 설명이다. 고민의 흔적은 옆면 디자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급스러움과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여느 플래그십 모델과 달리 역동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트렁크 리드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루프 라인과 짧은 후면부 실루엣을 통해 차가 멈춘 상태에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다란 프런트 오버행 등 전형적인 전륜 기반 실루엣이지만, 속도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21인치 대구경 휠을 장착해 세단과 SUV 사이의 파워풀한 스타일을 완성한 점도 눈에 띈다. 앞모습에서는 귀상어(망치상어)의 머리 부분에서 영감받은 슬림한 헤드램프와 유광 검정으로 마감한 그릴 디자인이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날카로워 보이는 디자인이지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쿼드 빔 헤드램프’를 적용해 플래그십 모델다운 웅장함을 뽐낸다. 이런 디자인의 플래그십 모델이라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타도 어색하지 않을 듯. 다만 각종 물리 버튼과 12.3인치 터치 디스플레이가 조화를 이룬 실내는 여전히 중후하고 단정한 느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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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ES-BENZ EQE SUV
내연기관 시절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은 확실히 ‘최고’였다. 늘 유행을 선도할 정도였다. 그런데 전기차로 넘어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전 디자인이 워낙 멋있었던 탓일 수도, 아니면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익숙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반면 EQE SUV는 확실히 좀 괜찮다. EQS SUV와 거의 비슷하지만, 비율이 훨씬 좋다. 옹골차고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다. 곡선을 잘 쓰는 메르세데스-벤츠답게 전반적 디자인은 둥글게 완성했다. 전기차를 만드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공기역학 효율을 내세우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그것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EQE SUV에서도 이런 고심이 엿보인다. 립 스포일러에 ‘바람길’을 내고, 사이드미러는 빗물의 간섭을 최소화하도록 디자인했다. 뒷바퀴 앞에는 작은 파츠를 덧대고, 차량 손잡이 역시 전기차답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달릴 때는 숨어 있다가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 겉면을 터치하면 밖으로 드러나는 식이다. 그 결과 EQE SUV는 큰 부피와 짧은 리어 오버행에도 불구하고 세단에 버금가는 0.25Cd의 공기저항 계수를 자랑한다. 덕분에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갈 수도 있지만, 공기를 잘 가르기 때문에 고속 주행에서도 바람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실내는 이전에 선보인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따른다. EQE 세단 모델과 마찬가지로 12.3인치 운전석 계기반과 12.8인치 OLED 센트럴 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했다. 세단 모델과 차이점이 있다면 거주성이다. 1열과 2열의 시트 헤드룸 모두 1000mm 이상으로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 적재 공간도 여유로운 편. 520L 기본 용량과 함께 2열 폴딩 시 최대 1675L까지 확장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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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SCHE Cayenne
카이엔은 지난 2002년 첫선을 보인 이후 총 100만 대 이상 판매를 기록한 포르쉐의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하다. 지난해 판매된 8963대의 포르쉐 중 50%에 육박하는 4102대가 카이엔 차지였을 정도다. 대기 수요도 높아 카이엔을 사려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난 8월 포르쉐는 3세대 카이엔의 부분 변경 모델을 국내 출시했다. 포르쉐코리아 측에 따르면, ‘브랜드 사상 가장 광범위한 업그레이드’를 거친 모델이다. 외관 디자인의 변화는 크지 않다. 이전 제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은 그대로 두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데 신경을 쓴 정도. 강렬한 아치형 윙과 보닛을 다듬고, 이전에는 옵션으로 제공하던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를 기본 사양으로 적용했다. 하지만 차 문을 여는 순간 ‘같은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큰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포르쉐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디지털화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설계한 디스플레이와 작동 방식이 특히 그렇다. 신형 카이엔에 최초로 적용한 ‘포르쉐 드라이버 익스피리언스’ 시스템이 핵심이다. 운전석에는 독립형 디자인과 가변형 디스플레이 옵션을 갖춘 12.6인치 풀 디지털 계기반을 적용하고, 운전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스티어링 휠 주변에 배치했다. 자동변속기 셀렉터 레버는 대시보드에 자리한다. 덕분에 물건을 보관하는 센터 콘솔도 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기어노브가 있던 자리에 공조기 버튼을 넣은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사용도 편리하다.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디지털 콕핏 경험을 할 수 있는 점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 조수석에 10.9인치 디스플레이를 옵션으로 제공해 조수석에서도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특수 필름을 부착해 운전석에서는 조수석 디스플레이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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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Santa Fe
지난 8월 싼타페가 다섯 번째 탈바꿈을 했다.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눈길을 끄는 건 디자인이다. 혁신적이다 못해 파격적이다. 그동안 볼륨감을 살려 둥글게 디자인해 오던 것과 달리 직선을 강조했다. 그 결과 오프로더의 인상이 짙어졌다. 특히 앞모습에 대한 반응이 좋다. 현대차를 상징하는 알파벳 ‘H’를 형상화한 디자인 패턴을 곳곳에 적용했다. 이전 모델보다 젊어진 느낌이 물씬 난다. 실제 현대차 연구원들은 젊은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싼타페에 레트로와 미래적인 디테일을 고루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레트로는 커다란 차체, 미래적인 디테일은 ‘H’ 라이트가 담당한다.
반면 뒷모습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뉜다. 후면 유리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박스형 디자인을 채택하고 테일램프를 하단으로 내렸다. 그 덕에 테일게이트 양 끝 길이를 최대로 뽑아내, 차 안에 웬만한 캠핑용 매트리스 설치도 거뜬하다. 널찍한 테일게이트는 햇빛이나 비를 막아주는 역할도 겸한다. 현대차에 따르면 뒷좌석을 다 접고 실내에 앉아 트렁크 밖 풍경을 즐기는 가족을 상상하며 후면부를 디자인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테일게이트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마디로 공간을 최우선으로 두고 디자인을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신형 싼타페는 이전 모델과 비교했을 때 트렁크 폭이 145mm, 높이는 49mm 늘었으며, 덕분에 약 15% 늘어난 기본 트렁크 용량을 확보했다. 싼타페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어느새 흔해진 도심형 SUV가 아니라 실용과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에 초첨을 맞춰 SUV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것. 각진 디자인을 가졌지만 단순한 면 처리와 리어 스포일러 각도 최적화, 상·하단 액티브 에어 플랩 적용 등을 통해 0.294Cd의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한 점도 괄목할 만한 부분이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원태, 이준형, 송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