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전에는 위탁자의 재산을 수탁자가 관리하도록 하고, 위탁자 사후에는 수탁자가 위탁자의 의사대로 재산을 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산 승계 방식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미성년자의 상속자산 안전망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 미성년자 상속자산 지킨다
우리 민법상 전통적인 재산 승계 방식으로 유언에 의한 상속이 있는데, 대부분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준비하는 편이다. 그런데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일지라도, 유언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되는 사항이 있다.

법으로 정한 사항에 대해서만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언자가 원하는 모든 내용을 유언의 내용으로 담기엔 곤란한 측면이 있다는 점과 본인이 유고 시, 유언자의 의사대로 상속재산의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성년자 자녀에게 물려주는 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을 실현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유언대용신탁이 활용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유언대용신탁의 효력
A씨는 오래전 이혼한 B씨와의 사이에 미성년 자녀 C가 있었는데, B씨와 성격 차이 등으로 이혼을 하게 됐다. A씨는 B씨와 이혼한 이후로 오랫동안 홀로 C를 양육해 왔다. A씨는 C가 성인이 되고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병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이다. A씨는 홀로 남겨지게 될 미성년자 C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A씨는 본인 사후에 유일한 상속인인 C가 상속재산인 부동산을 처분하고 그 매각대금으로 사치를 부리지 않을지, 이 부동산에는 현재 임차인이 거주 중에 있어서 A씨가 사망한 이후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경우, 임대차보증금을 문제 없이 반환하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지, 이혼한 전 남편 B씨가 C를 위해서 상속재산을 잘 관리해줄 수 있을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이 됐다.

A씨는 C에게 반드시 물려주고 싶은 주거용 부동산(이하 신탁부동산)만큼은 C가 만 30세가 되는 해에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내용으로 하는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은행(이하 수탁자)과 체결하면서, A씨가 사망한 이후에 임대차 계약에 관련된 내용 등 신탁 계약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신탁관리인을 A씨가 평소에 믿고 의지한 형제자매 D씨를 지정했다. 아울러 상속세 납부 및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위한 금전은 신탁과는 별도의 계좌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A씨가 사망한 이후, A씨가 생전에 은행과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C가 만 30세가 되는 해가 아니라 당장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해지하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줄 것을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신탁부동산에 거주 중인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C에게 임대차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A씨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이었다.

우선 수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임대차 계약 등의 관리를 위해 A씨가 지정한 신탁관리인 D씨와 임대차보증금 반환 문제를 논의해보았다. 그런데 신탁관리인 D씨는 A씨의 바람과 다르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위해 별도로 남겨 둔 계좌에서 지급하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B씨의 주장대로 C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넘겨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냐고 제안했다.
수탁자는 A씨의 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B씨와 D씨의 주장대로 유언대용신탁 계약 내용에 따라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줄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위해 신규 임차인 알선 또는 A씨의 상속재산을 통해 지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자 B씨는 미성년자 C를 대리해 법원에 수탁자를 상대로 신탁의 종료를 청구했다.

B씨는 신탁부동산에 살고 있던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해 이를 반환해야 하며, 향후 부동산의 시가가 하락이 될 수 있어 언제든 매각할 수 있게 은행과 A씨의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종료해야 하는 것이 C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신탁관리인 D씨도 A씨의 뜻과는 다르게 B씨의 주장에 동의했다.

수탁자는 A씨가 C를 위해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위한 재산을 신탁과는 별도로 마련했다는 점, 신규 임차인을 알선 등의 방법으로 임대차보증금 반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점, 향후 부동산의 시가 하락에 관한 부분은 단순히 우려에 불가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신탁이 종료될 수 없고, 망인 A씨의 유지는 존중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결과 법원은 이 사건 유언대용신탁 계약의 내용이 C의 이익을 명백히 해치는 경우가 아닌 한, 망인 A씨의 유지는 존중돼야 한다며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의의
이번 결정은 유언대용신탁이 종료돼야 할 특별한 사정에 대한 기준을 판단한 최초의 사례로 법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먼저, 미성년자의 보호 측면에서, 그들이 사회적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상속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유언대용신탁이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위탁자의 생전 의사가 명백하게 미성년자 또는 수익자의 이익에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명백히 존재하지 않는 한 존중돼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사건은 수탁자가 위탁자의 생전 의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고, 그 결과 유언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탁자의 생전 의사의 실현과 미성년자의 상속재산 보호라는 2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글 권남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