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한 술들.
2023 주류 트렌드 보고서
뉴월드 위스키의 등장
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위스키 열풍은 올해도 이어졌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위스키 수입량은 2만4968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6% 증가했다. 2002년에 기록한 연간 최대 수입량 2만7379톤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위스키 애호가가 많아지면서 특별한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것. 수천만 원대 초고연산 위스키가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가 하면 스코틀랜드·미국·일본 등 전통적 위스키 생산지에서 벗어난, 이른바 ‘뉴월드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대만·인도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실제 대만산 싱글 몰트위스키 ‘카발란’을 수입·유통하는 골든블루인터내셔널은 카발란의 면세점 판매량이 전년 대비 약 7배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멕시코 등 제3세계 위스키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왼쪽부터) 내추럴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쥐라 지역에서 와인처럼 테루아를 강조해 생산한 ‘브루노 망쟝 12년’, ‘스타워드 포티스 싱글 몰트위스키’를 만드는 호주의 스타워드 증류소는 202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릿 대회에서 무려 27관왕을 차지했다. 곡물과 피트, 헤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원료를 덴마크산만 고집하는 ‘스터닝 엘클라시코 라이 위스키’. 덴마크의 주식인 호밀빵을 위스키로 재해석했다.
2023 주류 트렌드 보고서
하이볼 열풍
2023년 주류 시장의 ‘대세’는 하이볼이었다. 서울 강남이나 홍대, 이태원 등 소위 MZ세대가 즐겨 찾는 상권에 하이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bar)들이 오픈했을 정도다. 하이볼이 대세로 떠오른 건 알코올 도수가 낮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데다 취향에 맞게 만들기가 쉽기 때문. 특히 TV나 유튜브에서 유명 연예인이 자신만의 하이볼 레시피를 소개하며 SNS를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한국화된 하이볼 문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는 것이 기본이지만,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술이 좀 더 다양해져 증류주에 탄산수나 소다수를 섞은 술로 개념이 확대됐다. 전통주 하이볼이나 고량주 하이볼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이볼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편의점 등을 중심으로 RTD(Ready to Drink) 제품 출시가 줄을 이었는데, ‘처음처럼 솔의눈 하이볼’이나 ‘레모나 하이볼’ 등 친숙한 상품을 위트 있게 풀어낸 제품도 눈에 띈다.

(왼쪽부터) GS25가 일본식 튀김 오마카세로 유명한 식당 쿠시마사와 손잡고 출시한 ‘쿠시마사 원모어 유자소다’, 일본 정통 하이볼 레시피를 그대로 담은 ‘로얄 오크 프리미엄 하이볼’. CU에서 선보인 ‘안동 하이볼’. 전통 안동 소주 양조법과 냉동 여과 신기술로 원액을 만들어 특유의 깊고 담백한 풍미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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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도 샴페인
와인 시장은 어땠을까. 좋지 못했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와인 수입 규모는 2억7389만 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7.9% 감소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입액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고가 와인이 많이 수입됐다는 얘기다. 시장을 이끈 건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2020년 4643만 달러 수준이던 국내 스파클링 와인 수입액은 지난해 9844만 달러로 증가하며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1억 달러를 무난하게 돌파할 전망이다. 수입국별로는 샴페인을 생산하는 프랑스가 올 상반기 기준 3221만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77%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와인 소비자의 기호가 테이블 와인에서 고가 프리미엄 와인으로 바뀌며 고급 와인의 대표 격인 샴페인 소비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샴페인의 럭셔리한 이미지와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려는 트렌드가 맞물리며, 기왕이면 샴페인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것. 실제 샴페인은 전 세계 와인 중 평균 가격이 가장 높은 술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연말연시를 맞아 선보인 ‘모엣&샹동 2023 엔드 오브 이어’ 리미티드 에디션, ‘샴페인의 왕’이라 불리는 크루그에서 195종의 와인을 블렌딩해 만든 ‘크루그 그랑 퀴베 170 에디션’, 프랑스샴페인협회에서 공식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 브랜드가 만든 ‘골든 블랑’. ‘2023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 금상을 받은 것은 물론, 올해 처음 수출길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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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테킬라 시대 개막
2023년 글로벌 주류 시장의 라이징 스타는 테킬라였다. IWSR(국제주류연구기관)에 따르면, 테킬라는 최대 주류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 보드카와 위스키를 제치고 올해 증류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어떨까. 미미하지만 조금씩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평이다. 실제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테킬라 수입액은 2021년 299만 달러에서 지난해 586만 달러로 약 95% 증가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최상위 제품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칵테일 베이스 혹은 클럽 등에서 취하기 위해 값싼 테킬라를 마시던 과거와 달리, 테킬라 자체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하듯 ‘1800 크리스탈리노’와 ‘돈훌리오 1942’, ‘볼칸 X.A’ 등 이른바 울트라 프리미엄 테킬라가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왼쪽부터) 레포사도와 아네호, 엑스트라 아네호 등 다양한 에이징의 테킬라를 최적의 비율로 블렌딩해 만든 ‘볼칸 X.A’, 수확과 증류, 숙성, 제품 포장은 물론 병의 리본 장식까지 100% 수작업으로 만드는 ‘페트론 실버’.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이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