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프로깅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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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가 코앞이다. 연말과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모습을 다짐하며 새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리프프로깅 법칙이다. 인류가 달에 첫 발자국을 새긴 지 50년이 훌쩍 지난 후인 지난 8월, 인도가 무인 달 착륙에 성공했다. 놀라운 성과를 올린 인도 역시 ‘리프프로깅’을 한 것이다.


추격의 시대에서 도약의 시대로
개구리는 최대 1m 이상을 점프한다. 이런 개구리의 생태를 은유적으로 가져와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점프하는 것을 ‘리프프로깅Leapfrogging’이라고 표현한다. ‘도약, 추월’을 의미하는 리프프로깅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실 리프프로깅은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과거에 후발 주자는 선발 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기술 등의 모방을 바탕으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돼야 했다. 선도 기업의 시장 지배력, 진입 장벽을 뚫고 후발 업체가 자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나 신흥국이 국가 기간산업 인프라 구축, 산업 기술 고도화 등을 통해 선진국을 추격하는 것 모두 기존 주류 기술을 완벽히 따라 배우고 원가를 최대한 절감해 경쟁력을 쌓는 게 정답이었다.

그러나 추격만 해서는 성공을 이어갈 수 없었다. 단순한 따라하기 같은 전략으로는 결코 추격할 수 없다는 ‘추격의 역설Catch-up Paradox’이란 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배경에서 중간 단계나 성장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바이패스Bypass’, ‘스테이지 스키핑Stage Skipping’ 전략이 관심을 모았다. 리프프로깅 전략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주 대항해시대의 리프프로깅
지난 8월 30일 인도우주연구기구가 달 남극 표면에 안착한 비크람 착륙선의 모습을 엑스(X, 옛 트위터)에 공개했다.
지난 8월 30일 인도우주연구기구가 달 남극 표면에 안착한 비크람 착륙선의 모습을 엑스(X, 옛 트위터)에 공개했다.
최근 리프프로깅 사례가 두드러진 분야가 있다. 바로 우주 기술 분야로,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인도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점프로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적 우주 기술을 뽐냈다. 이미 2000년대 초 달 탐사를 위한 ‘찬드라얀(달로 가는 수레) 프로그램’을 가동했던 인도는 1990년대만 해도 예산 부족으로 통신위성을 소달구지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1인당 GDP가 2,200달러에 머물러 있는 인도는 러시아와 달 남극 착륙 경쟁을 벌이더니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결과는 리프프로깅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도는 우주개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1969년에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라는 정부 전담 조직을 일찌감치 꾸렸다. 한국보다 20년 빨리 움직인 것이다. 정부 주도로 우주산업 생태계를 갖춘 뒤에는 2020년 모든 우주산업을 개방하며 우주개발을 민간 주도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의 우주 스타트업이 140여 개나 생겨났고, 이들을 통해 주요 부품과 인력을 자국 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가성비를 창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미국 NASA(항공우주국)는 2021년 달 탐사에 8억5,000만 달러(약 1조 1,454억 원)를 썼지만, 인도는 이번 달 남극에 착륙한 ‘찬드라얀 3호’를 7,500만 달러(약 1,010억 원)의 비용으로 개발해냈다. ‘못 살기 때문에 우주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감이 전통적 우주 강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주개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호가 2022년 8월 4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국의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호가 2022년 8월 4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2025년 유인 우주선을 달에 다시 착륙시키겠다는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가 미·중 패권 다툼, 공급망 분리 속 희귀 자원 확보전 등과 맞물리며 우주개발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일본 등도 가세하며 세계의 우주 산업 및 경제 규모가 4,000억 달러(약 539조 원)를 넘어섰다.

서양 물질문명이 동양을 압도하는 계기가 된 15세기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의 개막과 경쟁이 이번엔 마치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듯하다. 누리호 3차 발사까지 성공한 한국도 2032년 달 착륙, 2045년까지 화성 착륙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려면 인도 우주개발의 리프프로깅을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파괴적 혁신을 넘어 성공 전략으로
리프프로깅 전략은 개도국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선진 경제권 추격에 일단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후 유지하는 효과는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선발 기업이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더욱 강하게 압박해올 수도 있다. ‘삼성 반도체’, ‘초고속 인터넷 신화’ 이후 새로운 산업 신화를 못 쓰고 있는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선도 기업 또는 선발 주자가 제시한 게임의 법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칙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고 한 게 벌써 10년 전이다. 리프프로깅 사고와 도전 속에서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먼저 새로운 기술의 등장, 그에 따라 열리는 ‘기회의 창’을 잡아야 한다. 이미 한국의 산업사 속에 사례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새로운 기술로 떠오르던 전자제어 연료 분사 엔진에 투자를 집중하고 기존 기화기Carburetter 엔진 개발을 중단했다. 신기술의 성능 우위가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고객이 신기술 제품으로 대체하는 데 생기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을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창기 니켈-카드뮴 배터리 생산에 집중한 중국 BYD비야디는 2000년대 초반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대중 전기차 개발이라는 리프프로깅을 추구해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리프프로깅 과정에서 선발 주자와의 치열한 경쟁과 적지 않은 리스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후발 주자가 기술적 우위와 관련한 공격적 판단과 선택 없이 선발주자를 압도하기는 어렵다. 파괴적 기술의 등장이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여는 순간을 놓치면 후발 주자에게 다음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다. 주저해선 안 된다. 미지의 우주를 처음 항해하는 우주선처럼 ‘경로 탐색Path Finding’, ‘경로 창조Path Creation’에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어른을 위한 아이스크림 ‘매그넘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 고객 가치를 발굴해냈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어른을 위한 아이스크림 ‘매그넘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 고객 가치를 발굴해냈다.
프랑스의 최대 문구 기업 BiC는 문구와 같은 친숙한 디자인으로 일회용 면도기라는 신시장을 개척했다.
프랑스의 최대 문구 기업 BiC는 문구와 같은 친숙한 디자인으로 일회용 면도기라는 신시장을 개척했다.
사회경제적 통념의 파괴도 중요하다. 어른은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높은 가격대의 성인 시장을 겨냥해 매그넘 아이스크림으로 성공을 거둔 유니레버 사례가 대표적이다. 면도기 하면 카트리지 탈착 방식의 고급 질레트 면도기를 떠올릴테지만, 일회용 면도기라는 신시장을 연 프랑스 문구 종합 기업 BiC의 도전도 잊고 있던 고객 가치를 발굴한 사례다. 기업의 법적 쟁송을 돕는 로펌들이 ‘투입 시간 비즈니스’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소송에 소송을 이어가는 관행에서 탈피하게 한 석유화학 기업 듀퐁도 눈여겨볼 만하다. 로펌들이 승산 높은 소송에 집중하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착시킨 성공 사례다. 중고품 가게로 시작했지만 유명인 옷 경매, 패션쇼 개최, 고급 제품 취급으로 뉴욕의 패셔니스타들이 들르게 만든 하우징 워크스Housing Works의 성공 비결도 통념 탈피에 있었다.

리프프로깅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자신만이 확보한 자원, 경영상 여러 어려움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업 역량도 중요하다. 테슬라를 보면 알 수 있다. 거대 자동차 기업들이 포진한 자동차 산업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기존 전기차 성능을 뛰어넘는 공격적 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다. 추격에 머물지 말고 압축 성장을 위해 ‘도약’하고 뛰어넘으라는 리프프로깅의 메시지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글. 장규호(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미래에셋세이지클럽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