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게 사과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꽤 자주 찾아온다. 이때 상대방이 잘 받아주지 않으면 난감해진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면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과거 이야기를 꺼내며 화를 내는 경우에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다.
이런 고민에는 “용서란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면 10만큼 잘못했으니 10만큼만 사과하면 상대방이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보통은 그 이상 사과해야 상대방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찾아오고 다음에 용서가 일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답변한다. 여기서 상대방의 미안한 마음은 ‘저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는데 내가 너무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있나’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사과했는데도 너무한 것 아니야’라고 느끼는 시점이 역설적으로 화해에 가까워진 시점이라 조언한다. 이때 너무하다 싶은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짜증을 낼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앞선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억울한 감정이 들 때
‘이제 곧 화해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버티며 더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라고 이야기한다.
가끔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건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다. 상대방은 더 힘들겠지만 그만큼 용서를 구하는 쪽도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가 많다.
자기 실수로 부부 갈등이 심했던 남편이 앞의 조언대로 하니 아내와 관계가 안정됐다고 고마워한다. 훈수는 쉽다. 실제 적용하기가 어렵기에 어떤 마음으로 소통했는지 궁금해 질문했다. “연애 시절에 짝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니 훨씬 편하게 실천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세상에 짝사랑이 아닌 관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 의미처럼 일방적 짝사랑은 아니더라도 딱 반반으로 오고 가는 관계는 없는 듯하다. 더 좋아하는 쪽이 있기 마련이다. 또 시간 흐름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섭섭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원인이든 관계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짝사랑의 문제’라고 하면 “그건 어렸을 때나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 “그렇네요. 내가 자식을, 배우자를, 애인 또는 친구를 조금이라도 더 짝사랑해서 섭섭한 거였네요”라고 수긍한다.
‘짝사랑 연습’이 필요하다. 짝사랑에 섭섭하다고 불평하면 상대방은 보통 더 멀리 간다. 짝사랑 연습의 핵심은 상대방 처지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상대방이 소중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처지의 부딪침이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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