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무결점의 AI와 실수의 인간
“검은 가죽재킷과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간판 가득한 도쿄 거리를 유유히 걷고 있습니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아스팔트에는 빗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고, 그 위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사됩니다. 미소를 숨긴 여성의 선글라스에도 도쿄의 밤이 투영됩니다.”

이는 챗GPT(ChatGPT)개발사인 미국 오픈AI가 지난 2월 15일 공개한 인공지능(AI) 서비스 ‘소라(Sora)’의 구현 영상입니다. ‘소라’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영상을 제작해주는데 “멋진 여성이 네온사인과 간판으로 가득한 도쿄 거리를 걷고 있다”와 같은 간단한 문장으로 생성해낸 영상이었습니다.

마치 인간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1패를 허용한 AI(알파고)가 이제는 더 이상 실수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제대로 작심을 한 모습이었죠. 무결점을 향해 진격하는 AI,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예산에 맞춘 여행 일정을 생성하고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해주는 AI 개인비서(오픈AI), 귀가한 주인의 일상에 맞춰 홈 트레이닝 영상을 틀어주고 실내조명을 조절해주는 한편 운동 중 걸려 왔던 전화를 다시 연결해주는 AI 집사(삼성전자 로봇집사 볼리), “운동화 판매 사업을 도와줘”라고 입력하면 스스로 다중 단계의 솔루션을 생성하고 운동화 제조업체 사이트를 찾아내 리스트업을 하고 시장 분석과 광고 전략까지 세워주는 AI(시그니피컨트그래비타스 오토GPT) 등 AI의 거침없는 행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올해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의 주인공도 당연히 AI였습니다. 가전은 물론 인프라, 자동차, 스마트홈, 모빌리티 등 주요 산업에서 핵심 키워드로 언급됐죠.

마츠나미 야 일본 니세이지자산운용 수석 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에 “올해는 AI의 보급이 시작되는 해로 과거 주요 기술들처럼 5년 안에 보급률이 3배로 늘어난다면 AI 관련주의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전했습니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생성형 AI 시장은 2020년 140억 달러(약 18조7250억 원)에서 2032년 1조3040억 달러(약 1744조1000억 원)로 성장하고, 연평균 성장률은 45.9%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실제 AI 관련 주식은 자산을 불려주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2월 15일 발표한 ‘블룸버그 AI 지수’에 따르면 세계 최고 부호 500명 가운데 30명이 AI 지수 추적 대상 기업들에 재산 일부를 투자했고, 이들이 증식시킨 순자산 가치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총 1240억 달러(약 165조8500억 원)로 집계됐습니다.

이쯤 되면 AI의 기세가 좀 무섭기도 합니다. 무결점의 AI에 비해 실수투성이 인간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죠. 문득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간 전설적인 디바 4명의 골든걸스 콘서트(인순이·신효범·박미경·이은미)가 생각났습니다. 데뷔 합산 150년이 훌쩍 넘는 그들의 공연은 완벽함과는 다른 허점을 보였지만 그들이 밟아 온 고단한 시간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겁니다.

언젠가 AI의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이 결국은 오겠지만 우리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또한 각자의 빛나는 역사일 테죠. 여전히 인간의 잦은 실수에 울고 웃는 우리이지만 AI와 함께 세상을 계속 진보시켜 나갈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