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에 대해서도 본사가 해외 자회사(생산공장 등)로부터 수입하는 가격을 이전가격 관점에서 조사해 추징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는 추세다. ‘이전가격’이란 특수관계자 간 거래하는 원재료, 제품, 용역의 거래 가격을 의미한다.
특히, 다국적기업들은 본지사 간 거래가 빈번하므로 이전가격 결정에 있어 국제 거래에 대한 이전가격 과세를 방지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한다. 이전가격은 관세 측면에서 수입신고가격이 되기 때문에 내국세 및 관세와 모두 연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다국적기업은 관계회사 간에 합리적으로 과세소득이 배분될 수 있도록 내국세에 초점을 두어 이전가격을 설정한다.
이전가격에 대한 내국세 관점은 영업이익률과 같은 다양한 이익지표를 고려함으로써 이전가격이 정상가격 범위 내에 포함되는지에 초점을 둔다. 특정 사업 기간이 종료되면 특수관계자 간의 소득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이전가격이 정상가격 범위 내에 포함될 수 있도록 사후 조정을 거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렇게 합리적으로 조정된 이전가격이 정상가격 범위 내에 포함된다면, 국세당국은 이전가격에 대해 큰 문제를 삼지 않는다.
반면 이전가격에 대한 관세 관점은 정상가격 범위 내에 이전가격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매 수입신고 건마다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이 적정한지 여부에 초점을 둔다. 관세당국은 국세당국과 다르게 이전가격이 정상가격 범위 내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개별 수입물품가격이 적정하지 않다면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국세와 달리 관세는 대물세로서 물품에 부과되고, 각 물품별로 적용되는 관세율이 상이하기 때문에 각 개별 물품의 가격을 심사하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세무 조사에서는 이전가격이 문제없었다 하더라도, 관세 조사에서는 물품별 가격 적정성을 검토해 부분적으로 관세 추징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를 들면 세관당국은 유세율 품목(물품 B 및 C)에 대해 이전가격을 의도적으로 낮게 설정해 총 납부 관세를 줄이고자 한 것은 아닌지 접근할 수 있다.
즉, 다국적기업이 내국세 과세 목적 또는 이전가격 결정 방침에 따라 계산된 가격을 그대로 수입물품 가격으로 신고할 경우 세관당국은 관세 평가 원칙에 따른 수입물품 가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납세의무자 입장에서는 오래전부터 국세와 관세 사이에서 이전가격의 합리적 산출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APA와 ACVA란
이런 상황에서 과세당국은 납세의무자에게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한 제도가 바로 정상가격 사전합의제도(Advance Pricing Arrangement·APA)와 특수관계자 간 과세가격 결정방법 사전심사제도(Advance Customs Valuation Arrangement·ACVA)다. 두 제도는 다국적기업의 과세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주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ACVA는 해외 모회사와 국내 지사 등 특수관계자 간에 거래된 수입물품의 과세 가격을 납세의무자의 신청에 따라 과세당국과 납세의무자의 상호 합의를 통해 사전에 결정해주는 제도다. APA에 비해 늦게 입법된 ACVA는 2017년도를 기점으로 신청 건수가 급증했다. 관세당국에서 ACVA를 장려하고, ACVA 승인 업체에 대해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면서, ACVA 심사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개편한 결과, 우리 기업들이 ACVA를 신청해 관세당국의 납세 협력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ACVA는 신청부터 승인까지의 절차가 비교적 복잡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수적이다.
ACVA 신청 절차와 소요 기간
ACVA는 사전 상담부터 최종 승인까지 대략적으로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ACVA 컨설팅을 진행하는 전문가들은 최대한 신청 기업들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과세표준이 계산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들을 취합하고 분석한다. ACVA 신청 시에 구비해야 하는 주요 서류로는 수입물품의 거래도, 특수관계자 간 거래 현황, 최근 3년간의 사업보고서, 물품별 구분 손익계산서 등이 있다.
서류가 구비되면 선택적으로 사전 상담을 신청할 수 있고, 약 1개월의 기간 동안 배정된 본부세관 심사팀과 사전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사전 상담이 종료된 이후에는 본 신청을 위한 서류들을 구비해 ACVA 신청을 하게 되며, 신청일로부터 약 1년의 심사 기간을 거치게 된다. 다만, ACVA 승인을 위한 충분한 자료가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서류 보완이 필요하며, 보완 기간이 길어질 경우 예정된 1년보다 더 길게 소요될 수 있다. 물론, 보완 요구에 제때 맞추어 대응하는 경우 1년보다 짧은 기간 내에 최종 승인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심사가 종결되면 ACVA 결정 내용을 신청인에게 통지하게 되며, 신청인이 이를 동의하면 최종적으로 ACVA 승인이 이루어진다. 결정서 교부일로부터 3년 동안 ACVA 효력이 유지되며, 2년 연장 적용 신청을 통해 최대 5년 동안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
ACVA 결정서가 교부된 이후부터 신청 기업들에 어떠한 종류의 혜택들이 부여되는지가 가장 궁금한 사항일 것이다. 먼저, 신청인이 결정서 내용대로 신고 납부하는 경우, 과세당국은 그 내용에 따라 계산된 관세를 신뢰하며 ACVA 승인 기간 동안 별도로 과세표준의 적정성을 심사하지 않는다. 수입물품에 적용되는 관세율의 적정성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나, 적어도 과세표준의 계산만큼은 납세의무자가 계산한 대로 관세액을 산출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ACVA 결과 통보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통보된 내용에 따라 잘못 신고 납부된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 가산세가 일부 면제된다. ACVA 신청 시점부터 잠정가격신고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해당 시점부터 잠정가격신고 분에 대한 수정신고 시 가산세 전액이 면제된다는 점도 큰 혜택이다. ACVA 결과에 따라 향후 최대 5년간 납부 관세를 가늠해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관세 조사를 받아 이전가격에 대한 추징을 받게 되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세액적인 혜택이 크기 때문에 이는 ACVA를 활용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고 있다.
관세청에서는 최근 관세 조사 시 과세자료 확보에 관한 훈령을 제정해 특수관계자 간 과세자료 미제출 시에 과태료 부과, 물품 검사율 상향 조정, 관세 월별납부 배제 등 통관 절차상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조치해 성실히 납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에서 관세 조사 시 자료 제출 협조가 필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바, 사전에 ACVA를 활용한다면 정성적인 효과까지 기대해볼 만하다.
글 유정곤 딜로이트 관세법인 파트너(대표 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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