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가상자산 투자, 판이 바뀐다
[big story]가상자산, 투자 시장·정치권 함께 달궜다
지난 3월 14일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사상 최고점인 7만3750달러를 기록한 이래 15일부터 급락해 6만7000달러(3월 20일 기준) 선으로 주저앉으며 투자자들의 심리를 연일 자극하고 있다.
글 정유진 기자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은 2021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고조된 바 있다. 2021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약 3조 달러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에 육박하는 수준에 달했다. 고액자산가 및 기관투자가의 가상자산 투자도 크게 증가하면서 글로벌 금융 회사는 주요 고객층의 유지 및 유치 차원에서 가상자산 관련 상품 및 서비스 제공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 4월 10일 치러지는 제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시기에 맞물려 제도 개선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 잠시 주춤했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치권 가상자산 공약 봇물, 실현 가능성은 ‘글쎄’
가상자산이 총선에서 주요 의제가 된 시점은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한 이후 비트코인이 급등하면서부터다. 미국에 앞서 2020년 독일, 2021년 캐나다도 현물 ETF를 출시한 바 있다.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허용된 사례들이다. 특히 5월에는 미 SEC가 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승인 결정을 앞두고 있어 시장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과세 시행 시기 유예 △제22대 국회에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발의 및 본회의 통과 추진 △건전한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가상자산 전담위원회 설치 추진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코인 백지신탁 도입 △거래소 간 정보 비대칭 문제 완화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소 표준 공시제도 추진 △투자자 보호 장치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코인 발행 단계적 허용 등을 골자로 한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 발행·상장·거래를 허용해 투자 접근성 개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코인 ETF 편입을 통한 비과세 혜택 강화 △매매수익의 금융투자소득 분류 및 과세 △현행 가상자산 매매수익 공제 한도를 250만 원에서 5000만 원까지 증대 △손익통산 및 손실 이월공제 5년간 도입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 △통합 감시 시스템 설치 및 개별 거래소 오더북 통합 △블루리스트 제도 도입과 증권형 토큰 법제화 추진 등을 약속했다.
거대 양당의 공약만 놓고 보면 가상자산 시장이 당장이라도 제도권에 안착해 성장가도를 달릴 것 같지만 산적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대선 때도 관련 공약이 줄지어 나왔지만 정작 시행된 것은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뿐이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투자수익 비과세 한도 5000만 원 상향,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 및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등의 공약이 제기됐으나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실제로 임기를 다해가는 21대 국회에서도 가상자산 입법이 지연되거나 가로막힌 바 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에 초점을 맞춘 1단계 입법으로 첫걸음을 뗀데 불과하고 이마저도 2020년 법안 발의 이래 본회의 통과에 3년이라는 시간을 끌었다. 실질적은 기본법은 가상자산 발행 등을 규정하는 2단계인데 이는 21대 국회에서 추진되지 못했다.
[big story]가상자산, 투자 시장·정치권 함께 달궜다
가상자산 시장 특성을 고려한 규제 모델 마련 중요
2단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관련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병연 교수는 한국금융법학회를 통해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 발전을 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여러 가지 부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효과적인 규제를 위해서는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규제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자본시장 규제 모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실물을 기반으로 한 자본시장법과 가상자산 시장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러한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상자산 운용자의 업무를 구체적인 업무 관행에 따라 세분화하고 규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인가 또는 등록제도를 매매, 중개, 자문, 재량, 보관, 평가 등에 따라 개편하고, 각 사업 활동에 대한 사업자의 의무에 대해 구체적인 원칙을 정하고 자율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증권법학회의 원대성 박사는 논문을 통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1단계가 시행될 2024년 7월까지 미공개 중요 정보 금지 행위 관련 적용 대상자를 규정하는 대통령령의 제정, 시세 조종 관련 시장 조성 및 안정 조작 등 예외의 규정, 탈중앙화된 가상자산 사업자 및 영세한 가상자산 사업자, 해외의 가상자산 사업자 등에 대한 규제의 적용 여부 등에 대해 방향을 명확하게 해 가상자산 사업자 및 이용자 등에 혼란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액 17조 돌파
가상자산의 모태는 2008년 공개된 비트코인이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익명의 저자가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을 가진 논문을 통해 이를 소개했다. 논문 외에도 P2P재단(Foundation), 개인 이메일 등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비트코인이 공개된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시기였다. 백서와 P2P재단 등을 을 살펴보면, 사토시는 비트코인 개발의 이유로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언급했으며 비트코인을 기존의 화폐와 전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거래가 발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 당사자 간 신뢰인 만큼 은행 등 제3의 신뢰기관이 이를 보장해 왔으나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통해 제3의 신뢰기관 없이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2023년 국가별 가상자산 순위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93억6000만 달러(약 12조3224억 원)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영국은 13억9000만 달러(약 1조8302억 원), 3위 베트남은 11억8000만 달러(약 1조5537억 원)를 기록했다. 한국은 10억4000만 달러(약 1조3693억 원)로 8위에 자리매김했다.
정부는 2023년 7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6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매일 3조 원 넘게 거래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가상자산 시황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3월 14일 기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총 거래대금은 17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같은 날 코스피 거래대금의 2배에 육박한다.
[big story]가상자산, 투자 시장·정치권 함께 달궜다
해외 가상자산 제도권 안착...한국, 과잉 투자 열기 우려도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상자산이 제도권 시장에 안착하는 시그널이 감지됨에 따라 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신중한 투자를 권한다.
최공필 디지털금융센터 대표는 “디지털 자산(가상자산)의 가치와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신중함은 필요하다”면서도 “투자 수단이 다양하지 않으며 외환 관리가 엄밀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수연계 상품 등의 거듭된 불완전판매 사태가 겹쳐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과열 상태가 연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 시장은 과잉 투자 열기로 인해 '김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소가 상장 폐지되거나 하면 투자자들의 피해는 그야말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3월 초 기준 김치 프리미엄은 4.58%를 기록했고 비트코인이 급락한 3월 15일 기준 11%까지 치솟았다.
다른 사람은 모두 누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을 일컫는 이른바 ‘포모(FOMO) 증후군’도 경계의 대상이다. 가상자산뿐만 아니라 일반 증권 투자에서도 통용되는 이 현상은 과거에도 상투잡이 피해를 낳았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디지털 자산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 없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고 현재 산업이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유망해 보이는 프로젝트들이 계속 남아 있을지 미지수”라며 “디지털 자산은 변동성이 높고 밸류에이션이 어려워 만약에 어떤 자산이든 투자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발생 가능한 최대 손실을 고려하고 손실 규모가 일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가상자산 관련 투자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해 7월 검찰, 금융감독원, 금융정보분석원(FIU), 국세청, 관세청,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등 7개 국가기관 등에 소속된 조사·수사 전문인력 30여 명으로 구성된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을 출범했다. 합수단은 “가상자산은 이미 주식에 버금가는 투자 상품임에도 법령과 제도가 완비되지 않아 시장참여자들이 사실상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합수단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후속 법령 정비 등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공백의 틈을 탄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가상자산 시장참여자의 피해 방지와 회복이 시급히 요구된다”며 “초기 가상자산 시장이 위축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제자리를 잡아 건전한 가상자산 생태계가 조성되고, 시장참여자들을 두텁게 보호하고자 한다”며 범정부 합수단 출범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국처럼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은 디지털 산업의 발전과 새로운 경제적 효과 창출에 기여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미국, EU 등은 관련 입법 등을 통해 제도권에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은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과 환경에 대응하고 새로운 미래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경주할 것이며 디지털 경제 패권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