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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디지털 골드’의 귀환
[한경 머니 기고=허성필 트리니토 투자책임] 비트코인이 올해 들어 연일 사상 신고가를 경신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지난 2021년 폭등장의 광풍이나 2022년 폭락장의 난리통 이후 꾸준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다시 한번 컴백한 것에 놀라워하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에서 새롭게 도입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막대한 신규 자금을 끌어들이며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금융 상품으로 볼 수 있는 미국 현물 ETF가 도입되면서 이전에는 비트코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막대한 자금에 넓은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다.

비트코인은 흔히 ‘디지털 골드’라는 명칭으로 불리곤 한다. 이미 금융 자산의 한 자산군으로 자리 잡은 금의 특성에 빗대어 비트코인이 가진 유사한 특성을 한 단어로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더불어 금 역시 지난 2004년 미국 현물 ETF가 출시된 이후 약 8년에 걸쳐 대세 상승장을 기록한 바 있기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도입된 현시점에 비트코인과 금을 다시 비교해보는 것은 새로운 의미가 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로 불리는 이유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로 곧잘 불리는 이유는 금과 유사한 비트코인의 통화 상품적 특성(monetary goods) 때문이다. 통화 상품이란 통화로 쓰일 수 있는 상품을 일컫는 말로, 인류 역사에서는 곡식, 가축, 광물 등 다양한 통화 상품이 있었다. 다만 오랜 역사에 걸쳐 꾸준히 통화 상품의 지위를 유지해 온 것은 금이 단연 독보적이다.

금이 이런 지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금의 특성 때문이다. 금은 어느 특정 집단이 독점하고 있지 않으며, 채굴량이 들쑥날쑥 하지 않고, 품질을 균일하게 관리하고 검증하기 쉬우며, 썩거나 변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추면서 보관과 전송이 훨씬 더 편리한 디지털의 특성을 갖춘 것이 비트코인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제도가 잘 갖추어진 금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비트코인은 이해의 문턱이 높고 제도화가 부족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비트코인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단 이를 둘러싼 환경의 차이다.

돈의 흐름: 비트코인 유입, 금 유출
올해 미국 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함에 따라 금과 비트코인을 가르던 가장 큰 금융 환경의 차이가 사라졌다. 미국 금융제도권 내 막대한 자금이 주식, 채권을 매매하듯 간단히 비트코인을 매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좌를 개설하며 비트코인을 매매하는 절차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기관의 입장에서 내부 기안을 작성하고 심의를 거쳐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좌를 개설하고 비트코인을 거래한다는 것은 회계, 세무, 각종 규제, 위험분석, 의사결정 과정 등 여간 높은 문턱을 거쳐야 하는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401(k)’로 대표되는 미국의 발달된 연금 시장 자금의 비트코인 접근성이 눈부시게 개선된 것 역시 ETF가 가져온 커다란 차이다. 드디어 비트코인과 금, 두 자산을 같은 위치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투자자에게 가장 흥미로울 정보는 역시 자금의 흐름이다. 올해 1월 11일 출시일부터 3월 11일까지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11종은 총 95억 달러의 자금 순유입을 기록했다. 특히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ETF(iShares Bitcoin ETF·IBIT) 상품은 3월 6일, 운용 자산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ETF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다.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북미 지역에서 47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한 금과 정반대 결과를 고려하면 비트코인의 기록은 더 두드러진다. 두 자산 사이 어떤 단정적 결과를 도출하기에 2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짧다. 다만 시장 트렌드 형성에 단서를 찾는 투자자라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디지털 골드’의 귀환
메가 트렌드: 디지털 전환과 경제 세대 교체
투자 자산의 가격 흐름은 멀리서 보았을 때 항상 시대를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와 함께한다. 수년에 걸쳐 신고가를 경신하며 돌아오는 비트코인 역시 이런 메가 트렌드 관점에 생각해볼 만하다.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로 이어지는 디지털 전환은 이미 그 모습을 바꿔 가며 수십 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과 연산능력의 비약적 발전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를 점치게 한다. 생산, 유통, 보관, 사용이 모두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비트코인은 디지털 시대에 발명된 독특한 상품이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로 대변되는 경제 주력의 세대교체는 역사상 가장 큰 세대 간 부의 이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디지털 경제 활동에 더 익숙한 것은 복잡한 통계나 설문 결과를 찾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 가운데 금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반면 비트코인은 이들에게 이미 친숙한 대상이다. 디지털 전환과 경제 세대 교체라는 메가 트렌드는 모두 ‘디지털 골드’에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자금이 유입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비트코인은 미국 현물 ETF의 출시를 통해 비로소 금과 유사한 수준의 금융 환경을 누리게 ㅈ됐다. 현재까지 비트코인 현물 ETF에 몰린 자금과 같은 기간 금 ETF의 현금 유출은 그간 비트코인이 가진 ‘디지털 골드’의 가능성을 피력해 온 사람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듯 보인다. 짧은 비교 기간을 감안하면 아직 단정적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디지털 전환과 경제 세대 교체에 따른 시대적 트렌드를 감안하면 비트코인은 투자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군의 하나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글 허성필 트리니토 투자책임

허성필 투자책임은…
가상자산 전문 기업 트리니토(Trinito)에서 투자책임을 맡고 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감사본부를 거쳐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 다올자산운용 해외대체투자본부 팀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