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늦추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은 어느 시대에나 관심을 끄는 주제다. 미국 항노화 보드 전문의인 크리스티 김 박사를 만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현대판 진시황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인터뷰] 크리스티 김 전 재미한인의사협회장
사진=서범세 기자
사진=서범세 기자
“보통 대중들이 생각하는 항노화는 외모적 측면의 안티에이징일 겁니다. 처음에는 코스메틱 차원에서 항노화를 연구했지만, 최근에는 연구의 속도가 아주 빨라지고 있어요. 이제 항노화, 노화 지연을 넘어 역노화(reverse aging)를 말하는 단계까지 왔죠.”

크리스티 김 박사는 1970년대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재미 한인 1세대 의사다. UC버클리대와 UC데이비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 박사는 미국 항노화 보드 전문의이자 일반내과·호흡기내과 보드 전문의다. 지난 2013년에는 재미한인의사협회장(KAMA)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이음병원 국제진료원장, 오브이메디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 박사는 “불로장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진시황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이제는 현대판 진시황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설립한 ‘헤볼루션 재단(Hevolution Foundation)’은 연간 10억 달러(1조3600억 원)를 노화 치료 연구에 투자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영생을 연구하는 항노화 바이오 기술 개발 기업인 알토스 랩스에 수천억 원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현대판 진시황 시대가 펼쳐지며 본격적인 항노화 경제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김 박사는 항노화 치료제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지난해 6억8000달러(8200억 원) 규모에서 2031년 24억7000달러(3조2700억 원)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치료제를 넘어 전 세계 항노화 시장을 포괄적으로 추산하면 시장 규모는 더 커진다.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항노화 시장 규모는 올해 753억7000달러(102조63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김 박사는 “헬스와 파이낸스는 언제나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자본을 가진 이들이 이 시장에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늙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인 만큼, 앞으로 고령화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박사는 노화를 부르는 원인으로 산화현상, 만성염증, 유전자 손상, 근력 감소, 면역력 저하, 미토콘드리아 노화, 텔로미어, 세포 노화 등 여덟 가지를 꼽았다. 이 가운데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연구가 최근 유의미하게 발전하는 추세다.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세놀리시스’ 연구가 대표적이다. 또 세포가 젊게 유지되려면 미토콘드리아 에너지가 잘 형성돼야 하는데, 미토콘드리아가 늙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연구에 대한 관심도 항노화 시장에서 늘어나고 있다.

노화 원인 파악해야…유전자 가위에 주목

특히 김 박사가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항노화 분야의 연구 주제는 유전자다. 그는 “인간이 오래 살다 보면 유전자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 햇빛, 담배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매일 몸 안에서 유전자가 데미지를 입는다”며 “나이가 들면 암이 생기는 것도 유전자 손상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유전자 가위’에 주목한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다른 유전자로 교체해주는 기술이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가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세균에서 발견해 지난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바 있다. 김 박사는 “우리 유전자 중에는 장수 유전자라는 게 따로 있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오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했다. 또 염색체 끝에는 유전자의 손상을 막기 위한 보호캡을 형성하는 텔로미어가 있는데, 이 분야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것도 항노화 시장의 이슈다.

아울러 김 박사는 대중에게 알려진 노화의 원인인 산화현상, 만성염증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세포 안에서 산화가 일어나면 노화가 일어나는데, 그 원인이 활성산소다. 항산화제를 통해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색깔 있는 야채나 과일이 몸에 좋다는 이유도 그 색이 항산화제의 컬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만성염증은 발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예를 들어 만성 위염이 계속되다 보면 나중에 위암으로 발전할 수 있고, 만성 간염이 계속해서 염증 상태로 이어지면 간암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지중해식 식단을 섭취하면 염증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팬데믹 이후 대중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면역력 관리도 염증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다. 그는 “사실 암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이 폐렴, 즉 염증”이라며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몸이 염증과 싸울 수가 없다. 면역력이 높은 사람은 노화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살 수 있는 길로 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항노화의 비결로 운동, 수면, 식단이 가장 많이 꼽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이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여러 가지 편리한 항노화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나중에는 간단히 치료제를 먹거나 유전자 치료를 받는 방법을 통해 인류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미래가 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미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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