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립스틱 같은 저가 화장품 매출이 늘어나는 ‘립스틱 효과’가 현실이 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시대, 화장품은 최저비용으로 품위 유지가 가능하고 사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마켓 이슈]
고객들로 붐비는 서울 시내 한 올리브영 매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고객들로 붐비는 서울 시내 한 올리브영 매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국내 화장품주 실적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실적 훈풍을 타고 주가가 연일 상승세다. ‘K-뷰티’ 열풍은 미국, 동남아시아에서 인디 브랜드로 확산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비중국 수출이 중심이 된 업체들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지난 5월 화장품 기업들은 줄줄이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 코스맥스는 17만 원을 돌파하며 52주 신고가를 썼다. 5월 들어 3일을 제외하고 주가가 계속 올랐다. 증권가 예상을 웃돈 호실적을 발표한 것이 주가가 강세를 보인 배경이다.

화장품 업체들 줄줄이 52주 신고가

코스맥스는 1분기 매출이 5268억 원, 영업이익이 454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증권가 컨센서스(예상치 평균)인 385억 원을 17.9% 웃돌았다. 국내 매출은 물론 중국, 미국 등 해외 법인 매출까지 고르게 성장하면서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냈다는 분석이다. 코스맥스의 중국 법인 매출은 1분기 15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5% 늘었다. 미국과 인도네시아 법인 매출도 전년 대비 각각 43.2%, 25.8% 증가했다.

실적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코스맥스 주가는 5월 들어서만 30% 이상 급등했다. 지난해 8월 말 15만3500원으로 고점을 찍은 후 주가가 하락세를 그렸지만 올 3월부터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다른 중소형 화장품주들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며 주가가 상승세다. 색조 전문 화장품 기업 클리오와 화장품 ODM 업체 코스메카코리아는 최근 한 달 새 30%가량 올랐다. 클리오의 1분기 영업이익은 85억 원으로 컨센서스인 79억 원을 소폭 웃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 보면 영업이익은 62.5% 급증했다. 코스메카코리아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8.3% 늘어나 137억 원을 기록했다.

코스맥스와 함께 국내 양대 화장품 ODM 기업인 한국콜마도 상승세다. 5월 주가는 15% 이상 뛰었다. 1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367억 원)에 못 미치는 324억 원에 그쳤지만 전년 대비로 보면 168.9%나 급증했다. 증권가에선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면 대체로 컨센서스에 부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누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콜마의 베이징공장 생산 중단과 연우의 중국 영업사무소 전환 등과 관련한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K-뷰티 열풍이 올해도 이어진 것이 중소형 화장품주들이 강세를 보인 배경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해외 화장품 수출액은 약 23억 달러로 지난해 1분기(18억9000만 달러)에 비해 21.6% 증가했다. 비중국 지역 수출액은 지난해 1분기 12억5000만 달러에서 올 1분기 16억9000만 달러로 35.1% 증가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수출이 중심이 된 한국 화장품 산업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비중국 중심으로 옮겨 가면서 비중국 수출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중소 브랜드 화장품 인기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는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장품 유통업체도 고공행진

화장품 유통업체 실리콘투도 중소형 화장주 열풍에 합류했다. 5월 연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고 5월 들어 주가가 2배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 화장품 유통망 시장 진출 전략이 적중하며 1분기 증권가 예상을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실리콘투는 온라인 플랫폼 스타일코리안닷컴을 통해 400개에 육박하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100개 이상의 국가에 도소매로 판매하고 있다. 이 온라인 플랫폼은 일본, 러시아 등 각 나라에 맞는 스핀오프 사이트를 개설하며 현지 맞춤형 전략을 구사한다.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폴란드에 물류 창고를 보유하고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립스틱 효과 현실로?…중소 화장품주 전성시대
립스틱 효과 현실로?…중소 화장품주 전성시대
실리콘투는 중소 화장품 기업 중에서도 압도적인 실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7.1% 증가한 294억 원, 같은 기간 매출은 158.4% 늘어난 1499억 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추정한 매출액(1100억 원)과 영업이익(130억 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북미 지역에 한국 화장품 브랜드 수출이 급증하며 수혜를 봤다.

올 1분기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은 93%에 달한다. 미국이 35.7%로 가장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 외 국가는 네덜란드 8.8%, 한국 6.5%, 인도네시아 5.9%, 말레이시아 4.8% 순이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소형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의 미국 수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미국 유통 인프라를 가진 실리콘투가 최대 수혜를 볼 것”이라면서 “2024~2025년 추정 순이익이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실리콘투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서 집계한 증권사들의 올해 실리콘투 매출 추정치는 7075억 원. 추정 영업이익은 1367억 원이다. 매출은 지난해보다 2배, 영업이익은 3배 가까이 늘었다. 내년엔 매출 1조97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코스닥 상장 당시 기록했던 연간 매출액(994억 원)의 11배에 달한다. 증권가는 내년 영업이익도 22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실리콘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실리콘투는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인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대형 브랜드가 주도하던 시장에서 유통망이 없는 중소형 브랜드들과 손잡으며 영향력을 키운 것도 성공 요인이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소비 성수기가 하반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한국 화장품의 인기 상승과 함께 실리콘투는 양호한 주가 흐름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장품주의 인기가 올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김성혁 더블유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화장품주는 성수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며 “1분기 주가 상승 폭이 컸지만, 2분기 실적이 확인될 여름까지는 여력이 남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골디락스(물가 안정 속 경제 성장) 구간엔 상승하는 업종이 더 오른다”며 “1분기 실적이 견조한 화장품주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표가 좋은 식음료 관련주는 올해 구조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최근 주가 상승이 가팔랐던 ‘대장주’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 대해선 “아직 중국 쪽 매출액 비중이 작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선 한국산 화장품이 프랑스산을 제치고 수입액 1위를 달성했고, 미국에서도 월별로 1, 2위를 다투는 상황”이라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ODM 업체를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개별 화장품 브랜드는 분기마다 성과가 달라지지만, 이들 업체는 꾸준한 실적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