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투자 원칙을 갖고 철저히 검증하는 자세. 임동욱 신영증권 WM사업본부장 겸 APEX패밀리오피스본부장이 말하는 우리나라 부자의 특징이다. 수백억 원대 자산을 지키는 부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 본부장에게 자산가의 투자 철학을 들어본다.

[커버스토리] 임동욱 신영증권 WM사업본부장 겸 APEX패밀리오피스본부장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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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부를 지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 자산에만 투자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관심은 항상 열려 있지만, 스스로 그 분야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모험을 하면서까지 투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임동욱 신영증권 WM사업본부장 겸 APEX패밀리오피스본부장은 자신이 만나본 수백 명의 자산가들에게서 발견한 공통된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1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후 23년에 걸쳐 수많은 유형의 자산가를 만나 온 그는 부자의 고민을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밀접하게 접해 온 장본인이다. 임 본부장이 고객으로 연을 맺었던 부자는 약 300명. 꾸준히 교류하며 투자 조언을 건넸다고 말할 수 있는 부자만 따졌을 때의 숫자다.

임 본부장이 만난 부자들은 자신이 세운 투자의 기본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되, 전문가들의 조언을 최대한 넓게 수용하려는 이들이었다. 새로운 투자에 임할 때는 사전에 철저한 정보 수집을 선행하는 게 초고액자산가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성향이다. 임 본부장은 “부자들은 새로운 조언에 굉장히 열려 있다. 아집이나 고집이 강하지도 않다”며 “상당수의 부자들이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충분히 검증하고 크로스 체크를 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되도록 여러 전문가를 부지런히 만나려 하고, 투자와 관련된 조언이나 상담이라면 언제나 환영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 한 명의 프라이빗뱅커(PB)와만 거래하는 자산가는 많지 않다.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임 본부장은 “재벌가 등 자산 규모가 아주 큰 자산가의 경우 인하우스 전문가를 따로 둔다. 그럼에도 PB를 통해 추가 검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투자라는 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부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기꺼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경향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과 만나 우리나라 부자들의 특징과 투자 원칙을 들어봤다. 다음은 임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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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투자 원칙을 소개해준다면.
“좋은 투자 기회가 와도 절대로 올인하지 않아요. 결국에는 분산투자가 자산가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흔히 ‘이거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진짜 좋은 투자 정보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진 돈을 다 쏟아 붓는 사례가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부자들은 아무리 좋은 투자처라는 확신이 들더라도 결코 올인은 하지 않아요. 사실 부자들이 돈을 잘 잃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놨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시장이 폭락해 자산 가격이 반토막이 난다고 해보죠. 일반적인 투자자는 그 상황을 못 견디고 100원에 샀던 자산을 50~60원에 팔 수 있겠죠. 하지만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극히 일부만을 투자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어요. 좋은 자산이라는 확신이 여전히 든다면 오히려 그 시기에 더 투자할 수도 있고요. 이 지점이 일반인과 부자 간의 큰 차이점일 겁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원칙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당연한 얘기 같지만, 정작 일반인들은 잘 지키지 않는 투자법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유지하기 힘든 원칙이죠.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들고 가기 편해요. 하지만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리면 다 깨져 버리는 거죠. 부자들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와 변수가 발생할 것을 감안해, 절대로 한 방향으로 투자하지 않아요.”

전통적인 부자와 최근 떠오르는 신흥 부자의 차이점도 있을까요.
“우선 전통적인 부자들은 정보의 크로스 체크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 정보가 진짜 맞는지 여러 전문가에게 확인하고 투자하는 성향이 확실히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 충분히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이 될 때 의사결정을 하죠. 잭팟을 바라는 투자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반면 신흥 부자들은 주로 자신의 판단을 굉장히 신뢰하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단기간에 큰 부를 이뤄봤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전통 부자보다는 확실히 더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가상자산 등으로 큰 자산을 쌓은 분들도 생겼잖아요. 전통적인 부자와는 투자 운용의 관점 자체가 다른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공격적인 성향이 있죠. 예를 들어 바이오 분야에서 큰돈을 벌게 된 신흥 부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분야에서 큰 부를 이뤘기 때문에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감이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분야에서 만큼은 또다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아요.”

자산 규모에 따라서도 투자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자산 규모별로는 성향이 어떻게 다른가요.
“아무래도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금융 자산 30억~50억 원 정도의 부자들은 국채나 통화에 투자하는 비중이 비교적 낮고, 100억~300억 원 이상으로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국채, 금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또 기관투자가급의 개인은 공모펀드보다 사모펀드를 더 선호합니다. 유통 시장보다는 발행 시장, 즉 비상장 시장이라고 표현되는 영역에서의 투자에 관심이 많아요. 기관투자가들의 영역이라고 부르는 구조화금융, 인수금융에도 관심을 갖죠. 이런 경향은 정보의 불균형 문제와도 연관돼 있어요. 예전에는 주식 투자를 하더라도 자산가가 갖게 되는 정보가 훨씬 많았습니다. 일반인보다 압도적인 정보력을 바탕으로 선투자·선실현이 가능했죠. 이제는 정보의 평등이 커지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투자 시장에 더 관심을 갖는 부자들이 많아요. 비상장 시장 투자는 일반인들에게 기회 자체가 잘 오지 않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산가들이 모든 투자를 그런 영역에서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안전자산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상당 부분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두고, 정보의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시장에서 추가적인 투자 기회를 잡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해외 부자와 비교했을 때 한국 자산가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을까요.
“우선 한국과 일본의 부자는 비슷합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현금화되지 않은 부동산과 본인 사업체 주식이에요. 가끔 드라마에서 자산가들이 ‘우리가 부자 같지만 갖고 있는 현금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실제로 우리나라 자산가의 수익은 대부분 부동산 임대수익이나 사업체 배당수익이에요. 그런데 유럽·미국 자산가들은 좀 달라요. 자산 비중부터 한국 부자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에쿼티 투자나 리츠, 인프라 등 대체투자의 비중이 높은데요. 여러 투자를 섞는 멀티 투자가 특히 선호되죠. 주식, 채권, 금, 인프라, 유가, 원자재 등 방향성이 다른 자산을 섞어서 일정한 수익을 유지하는 투자 패턴을 추구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전략이 점차 늘고는 있지만 미국에 비해서는 그 비중이 낮죠. 또 한국 자산가는 글로벌 시장보다 국내 시장에 집중하는 성향이 짙습니다. 물론 점차 글로벌 투자가 늘어나고 있고, 투자를 리딩하는 자산가들은 글로벌 자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긴 하지만요.”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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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산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자산관리 분야는 무엇인가요.
“절세죠. 아마 100년 후에도 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절세일 거예요. 세금을 빼고는 자산관리를 논할 수 없어요. 그중에서도 상속·증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잖아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녀에게 자신의 자산이 잘 전달되길 바라죠. 특히 큰 재산을 갖고 있는 자산가들은 당장 세금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후손들이 이 자산을 받아 제대로 운용하고 관리하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부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산을 대물림하는지 궁금합니다.
“탈세를 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가 만나본 자산가의 대부분은 의외로 편법하지 않는 것을 선호했어요. 초고액자산가일수록 명성, 사회적 지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떄문에 합법적인 선에서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증여를 하고요. 자산을 대물림하는 것 못지않게 인성, 소비 습관, 부를 지킬 수 있는 철학을 교육하는 것도 철저하게 합니다. 묻지마 투자, 유행을 좇는 투자를 지양하는 태도를 자녀와 손자들에게 교육하죠. 저희 같은 PB를 통해서도 교육하길 원하세요.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투자를 할 것인지, 언제 엑시트를 할 건지 알려주길 원하시더라고요.”

승계와 관련된 부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과거에는 1세대가 했던 사업을 2세대가 당연히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산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1세대들의 제일 큰 고민은 ‘내 자녀가 사업체를 물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젊은 2세들은 해외에서 교육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세상을 보고 자라거든요. 2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급변하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죠. 새로운 분야의 비즈니스에 뛰어들거나 투자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1세대들이 자녀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에요. 강제로 경영 수업을 시키지도 않습니다. 자녀가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경험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곧바로 가업을 잇도록 강요하지도 않고요. 자녀가 다른 길로 간다면 사업체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방향도 고민하죠.”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데요. 올해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도 신중해졌나요.
“확실히 많이 신중해졌습니다. 최근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졌어요. 시장의 기대감이 소멸하면 억눌렸던 금리가 점핑할 수밖에 없잖아요. 일각에서는 ‘이러다 금리가 다시 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는 것 같아요. 금리가 오르면 채권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 시장에는 안 좋거든요. 최근에는 많은 자산가들이 국채와 통화, 금에 투자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달러를 사서 보유한 자산가들이 많았고, 미국 국채,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등 달러에 노출된 자산에도 투자해 왔죠. 지금은 달러화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생각해, 엔화를 많이 사는 추세인 것 같아요. 자산가들은 통화, 국채 등에 투자한다고 해도 단타를 목적으로 하진 않아요. 시장이 불안정한 만큼 위험 헤지 수단으로 일정 비율을 계속 가져가려는 목적이죠.”

올해 남은 기간 자산가들의 관점에서 투자 전략을 조언한다면.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명확하지 않을 때는 ‘중간 리스크’ 성격의 투자가 많이 늘어나요. 저는 올해 공모주 시장을 눈여겨볼 만할 것 같아요. 공모주가 2년 정도는 상당히 안 좋았어요. 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대형 공모주가 없어서 수익의 기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HD현대마린솔루션의 공모가 잘 됐기 때문에 시가총액 대형사들이 공모주 시장에 많이 등판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둘째는 배당 투자입니다. 특히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테마로 한 배당은 굉장히 큰 테마예요. 사실 ESG는 지난해부터 많이 했던 투자지만, 배당주는 상당 기간 소외됐잖아요. 그런데 최근 구체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안이 나오고 있어요. 시장에 굉장한 순풍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큰 투자를 선호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캐시 플로가 있는 배당주에 성장성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가치주·배당주는 올해 하반기 시장 방향성과 상관없이 주목할 만한 투자가 될 것 같아요. 더불어 채권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고요. 또 앞서 말씀드린 것만큼 큰 테마는 아니지만 부동산 리츠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상장되는 리츠들은 상업용 부동산이 많아서, 주거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큰 연관성이 없거든요. 리츠 시장이 최근에 안 좋았는데요. 시기의 문제일 뿐 금리가 언젠가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리츠의 주가차익도 기대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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